윌리는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착각이나 망상은 그의 마음 속, 아무도 모르는 그 은밀한 곳에도 없었다. 스스로가 혼란스러운 영혼을 지닌 인물이고, 이 세상에 적합치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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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빵을 굽는 과정은 볼 수 없는 걸까? 허연 빵이 황갈색으로 바귀는 그 변화의 과정을 왜 직접 우리 두 눈으로 지켜 볼수 없는 것일까? 빵을 그 흉물스러운 스테인레스 철통속에 가둬 놓고 문을 닫아 버리면 무슨 이득이라도 있는 걸까?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안에 오렌지 빛을 발하는 코일이 다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라네. 누구 집 부엌에서든 그 물건은 아름다운 물건이고 예술품도 될수 있는 거야. 아침을 차리거나 하루일을 대비해 든든한 끼니라도 챙기는 소박한 일상사 가운데 잠시 눈여겨 감상할수 있는 빛나는 조각품이 될수있어. 속이 다 내비치는 아주 맑은 열 저항유리. 물론 거기에다 우리가 좋아하는 아무색이나. 푸른 색이든 초록색이든 칠할 수도 있을 꺼야. 그리고 그 속에서 반사되는 오렌지색 코일을 설치하는 거지. 그 조화를 한 번 상상해 봐. 우리 두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경이로운 과정을. 그러면 토스트를 굽는 일이 종교적인 행위가 되고, 속세가 아닌 세상의 빛의 발산이고, 또 다른 형식의 기도가 될 수 있어.예수님이시여. 내가 지금 그걸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앉아서 설계도를 그리고 물건을 완성해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켜볼수만 있다면 말야. 본즈, 그게 바로 내가 꿈꾸던 일이야.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 우리 영혼의 우중충하고 단조로운 구석구석마다 아름다움을 깃들게 하는 것. 토스터 기계 하나로 그렇게 할 수 있고, 시 한 편으로도 그렇게 할수 있고, 또 낯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로도 그렇게 할 수 있어. 어떤 형식이 되든 상관이 없는 거야.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떠나는 일 . 그게 이 세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일 거야.
--- p.86-87
버지니아 주의 바로 그 겨울날 아침,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 시인 윌리 G. 크리스마스의 오랜 친구이자 별칭으로 스파르카투스라 불리는 미스터 본즈가 자신이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고 나와 고속 도로의 동쪽 갓길로 들어선 그는 차의 행렬이 잠깐 끊어질 때를 기다렸다. 그런 다음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허약한 몸이었지만 그의 다리에는 아직 약간의 힘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자 그는 지난 몇 달 동안의 그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하고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사방에서 자신에게 몰려오는 자동차의 소음을 향해 그 불빛을 향해, 그 눈부신 광채와 우렁찬 소리를 향해 무작정 내달렸다. 행운이 따른다면 날이 저물기 전에 본즈는 윌리와 함께 <팀벅투>에 있으리라.
--- p.225
마침내 윌리가 입을 열었다.
"귀 좀 빌려주게, 견공, 드디어 시작이야.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네. 남아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묘한 물건들뿐. 먼 옛날의 작은 물건들. 내가 바라던 것이 전혀 아닌 것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성스러운 존재라는 말은 아니네. 속옷에다 똥 싸는 일이야 아무렴 어때, 단지 내가 이렇게 일찍 무대에서 퇴장한다는 것이 유감이고 속이 쓰릴 뿐일세. 짐을 챙기게나, 친구. 우린 이제 스플리츠빌로 가야 하네. 돌아오기 힘들 거야. 따라오겠나, 미스터 본즈? 거기까지 나와 함께 갈 텐가?"
본즈는 지금까지도 따라왔다. 앞으로도 계속 윌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자네한테 잘 다듬은 금쪽 같은 말을 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뭔가 유익하고 힘찬 금언이나 삶의 지혜가 담긴 짤막하면서도 주옥같은 말 말일세. 폴로니어스의 고별사와 같은 멋있는 말.... 근데 나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어. 그렇다고 표절자가 되거나 남이 한 말에 몇 마디 덧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고. <제 때의 바늘은 나중의 아홉 바늘을 던다>라는 말이 있지.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할텐데. 이봐, 뼈다귀 좋아하는 친구. 내 머릿속이 엉망이야. 그러니 내가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더라도, 이 말 하다 저 말 하더라도, 잘 좀 참아야 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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