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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사과에 대한 고집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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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24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96g | 140*195*15mm
ISBN13 9791185014821
ISBN10 118501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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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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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요시카와 나기
오사카 출생.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신문사에 삼 년 근무했다. 퇴사 후 한국으로 유학,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朝鮮最初のモダニスト鄭芝溶》이 한일 양국에서 출간되었고, 《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京城のダダ、東京のダダ》도 한국에 곧 소개될 예정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괭이부리말 아이들》 등의 소설, 신경림의 시선집 《낙타를 타고》를 비롯해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외 다수의 문학작품의 번역을 맡아 한일 양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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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색이 아니라 사과다. 동그라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양이 아니라 사과다. 신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맛이 아니라 사과다. 비싼 가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값이 아니라 사과다.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가 아니라 사과다. 분류할 수는 없다, 식물이 아니라, 사과니까.
꽃피는 사과다. 열리는 사과, 가지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사과다. 비를 맞는 사과, 쪼아먹히는 사과, 잡아떼이는 사과, 땅에 떨어지는 사과다. 썩는 사과다. 씨앗의 사과, 싹트는 사과. 사과라 부를 필요도 없는 사과다. 사과가 아니어도 되는 사과, 사과이어도 되는 사과, 사과이어도 사과가 아니어도 상관없이 단 하나의 사과는 모든 사과.
--- p.34

2페이지 둘째 줄부터 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먼저 고유명사가 물에 잠기고
형용사가 썩고
조사가 흐슬부슬 떨어지고
접속사에는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

사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시인에게까지 미쳤다
느닷없이 의자 다리가 부러졌으며
이어서 키보드가 녹아버린 데다
머리칼도 타올랐다

아내는 그것을 보자마자 집을 나가고
맏아들의 야뇨증이 재발했다
맏딸은 입을 다물고
이름이 다로太郞인 개가 에스페란토로 짖기 시작했다
애마 ‘라이프’의 내비게이션도 고장났다
--- p.90

이십일 세기 첫번째 날 아침, 하늘을 나는 소리개를 향해 소뼈를 던져주었다. 뼈는 헛되이 떨어져 내 왼쪽 발등을 때렸다. 아팠다. 푸른 하늘에 태양이 눈부셨다.
과학자는 진공도 비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동시에 시간도 공간도 없는 ‘무’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런 것에 신경을 써봤자 소용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게 재미있어죽겠다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 있어 이십 세기 최대의 사건은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이십일 세기 최대의 사건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되지 않을까.
밤에 해양심층수로 잘못 알고 냉장고에 있던 워커를 병째 마셔버렸다. 덕택에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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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의 시세계는 한두마디로는 말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폭이 넓다. 순진무구한 생각에서 나온 듯 느껴지는 시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깊은 시가 있고, 말의 재미에 흠뻑 빠진 시가 있으며 조금은 장난스러운 시도 있다. 또한 유연하고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없으며, 잘난 체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읽으면서 더없이 편하고 재미있다. 말이 다른 나라의 시가 이토록 재미있고 친근하게 읽히는 경우는 여간해 없을 것이다. 시인의 순수한 삶과 거짓 없는 글쓰기를 엿보게 하는 산문들도 감동적이다.
- 신경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를 더 넓은 공간으로 해방시키려는 노력도 꾸준히 해왔다. 티셔츠에 프린트하기 위해 쓴 시도 있는데, 그 상품설명에는 ‘시는 몸에 걸치는 것으로 더 가까운 존재가 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2010년에는 프레파라트에 문자를 인쇄해서 현미경으로 읽는 시를 간행(?)했다. 2011년에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다니카와谷川’를 출시했는데, 이것은 계곡에 흐르는 강물(즉 다니카와)에 낚싯대를 넣고 시를 낚는 게임이다. 이것들은 다 죽어가는 시를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지만, 도대체 여든을 넘은 노인의 발상이 아니다.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마치 끝없이 새로운 장난거리를 탐하는 어린아이처럼 유연하다. 그런데 장난도 참 진지하게 친다.
그럼, 다니카와 상, 앞으로도 지구 곳곳을 다니면서 시를 퍼뜨려주세요.
-요시카와 나기

대개 사람들은 자기 소유를 누구에게 내어줄 때 떠들썩하게 광고하며 줍니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에게 돌아올 보상을 따져보지요. 어떤 이는 받는 사람이 자기가 주는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헤아려보고 줍니다. 반면 사과나무나 우주나 신은 늘 아무 조건 없이 줍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도 생명의 본성을 깊이 이해한다면 나무나 신처럼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우주만물의 사랑에 감전된 듯 시인은 자신이 선물로 받은 기쁨과 환희를, 실제로 자기 삶 속에서 나누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일본의 한 양로원에서 그는 치매 걸린 노인들을 섬기는 생활을 한다는군요. 치매노인들을 위해, 그들이 먹고 싶어하는 요리를 주문받아 만들기도 한답니다. 이런 요리 체험에서 영혼의 ‘맛있는’ 부분이라는 아름다운 시구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영혼의 요리사’란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시인이 아닐까 합니다.
고진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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