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을 지는 쪽은 언제나 환자다. '의사는 실패를 관 속에 묻는다'는 낡은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흔히 의사를 비행기 조종사와 비교하곤 하는데,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떨어지면 조종사는 승객과 함께 죽지만, 환자가 죽어도 의사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 p.210 본문 중에서
의사는 과도한 진료를 매일같이 행하고 있다. 일단 말기 환자의 치료가 시작되면 계속되는 검사, 불필요한 투약과 수술, 인공 호흡기의 접속 등 의식처럼 보이는 온갖 처치가 차례로 진행된다. 그리고 의식이 거의 끝날 때까지 의사의 손놀림은 절대로 늦춰지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전개되는 것은, 사실을 은폐하고 빠져나가기 위한 속임수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환자에게 죄를 전가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할 때 의사는 이런 말을 곧잘 한다. "당신의 병은 생활 습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원인은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철저히 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병원에 너무 늦게 왔습니다." 때로는 의사의 예상보다 환자가 빨리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의사는 자신의 탓으로 환자가 죽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난해한 의학 용어를 구사하여 입장을 역전시키고, 희생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예의 틀에 박힌 문구를 토해낸다.
"때를 놓쳤습니다."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신자들은 자신의 건강에 자신이 없다. 병이 언제쯤 자기에게 닥쳐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긴장이나 불안, 죄의식으로 번민하게 되어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한채 하루하루의 생활에 쫓긴다. 건강에 관한 자기 책임과 자기 관리 능력은 마비되어 있으므로, 자기보다 강한 의사라는 존재에게 자신을 맡겨버린다.
의사는 자신이 처방한 약을 환자가 잠자코 복용하지 않으면 즉시 화를 낸다. '어떻게 하면 환자를 의사의 지시에 따르도록 할까' 하는 것은 현대의학에 있어서도 골치 아픈 문제인 것이다.
현대의학의 이상은 모니터로 감시하여 환자가 약을 먹지 않으면 '버저'가 울린다든지, 전기 쇼크를 주어서 무리하게라도 먹이는 기계를 실용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약 복용 지도 시스템'은 아무래도 인정될 것 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따져물어 취조하는 이제까지의 방법으로 병든 양 떼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에 냉담한 신자들이 늘어나면 종교는 수비 태세로 전환하여 신학을 만들어낸다. 조금씩 쌓아올린 지위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 들의 신학의 위대함을 한층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다.
--- pp.228-229
새로운 의사가 목표하는 것은, 최후에는 자신의 일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의사에게 의존하는 것을 하루하루 줄여나가도록 지도한다. 사람들은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의 중심은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축복하는 개인, 가족, 지역 사회이고, 그것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비로소 생명, 사랑, 용기라는 건강의 샘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마음과 몸의 관리는 개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그 중에서도 식생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식물성 섬유, 비타민 등 영양의 문제만을 따질 게 아니라 순수한 자연의 음식을 먹고, 순수한 자연의 물을 마시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p. 239)
--- p.
만일 병원이 외관대로 효율성 있게 운영되는 곳이라면, 비록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그나마 안심하고 입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원은 비효율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단순한 판단을 잘못 내려 발생하는 사고도 많은데, 고도의 판단력을 요하는 의료 행위에서 실수를 범해 일어날 복잡한 사고들을 생각하면 공포스러울 정도다.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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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현대의학에 반대하는, 현대의학의 이단자이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현대의학의 주술에서 해방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현대의학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