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골이라고 말하자마자 그는 사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마을의 이름을 입밖에 내놓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찬샘골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무슨 향내나는 산열매 같은 맛으로 혀끝에 맴돌다가 발효시킨 생선의 썩은 냄새로 돌변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수채화로 연두색의 여린 잎사귀를 가득 차게 그린 화선지 위에 먹구름 같은 물감이 왈칵 덮치듯이 쏟아져 번져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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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이젠 돼서. 그만들 가자우. 순남이 아저씨의 헛것이 말했고 일랑이도 그 옆을 따른다. 그래, 가자우. 다른남녀 헛것들도 벽에서 스르르 일어나 바람에 너울대는 헝겊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득하게 먼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서로 죽이고 죽언것덜 세상 떠나문 다 모이게 돼 이서. 요한이 아우에게 말했다. 이제야 고향땅에 와서 원 풀고 한 풀고 동무들도 만나고 낯설고 어두운 데 떠돌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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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옮겨서 땅바닥의 흙을 파냈다. 두어 줌 파내니까 축축하고 나뭇잎 섞인 흙이 나오다가 한뼘쯤을 더 파내니 그제야 부드럽고 바알간 속흙이 나왔다. 그는 잔돌멩이들을 골라내고 손바닥으로 자리를 다진 다음에 간수했던 모피 주머니를 꺼냈다. 가죽끈을 풀고 안에서 작은 도장처럼 생긴 형의 뼛조각을 꺼내어 구멍 속에 놓았다. 요섭은 그 위에 흙을 덮는다. 그리고 아기를 잠재울 때처럼 손바닥으로 땅 위를 토닥이며 두드려주었다. 형님 이제야 고향에 돌아온 거요, 하고 요섭은 소리를 내어 말하고 싶었다.
--- p.254-255
요섭은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의 뒤통수를 지나 얼굴을 다시 돌아본다. 이쪽 통로에는 없는 것 같다. 그는 커튼을 젖히고 어둠속으로 들어선다. 화장실의 빈칸 표시등이 파랗게 반짝인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비행기의 굉음이 귓바퀴에 멍멍하게 가득 찬다. 거울 위에 피로한 초로의 얼굴이 떠 있다. 그는 손을 씻고 세수를 한다. 종이타월로 얼굴을 박박 문질러 닦고 맨손바닥으로 다시 얼굴을 쓸어내린다. 요섭이 문을 향하여 돌아서는데 갑자기 자신이 타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힐끗 본다. 형이 거기에 떠올라 있었다. 그는 쫓기듯이 문을 밀치고 나온다. 그리고 커튼을 젖히고 통로로 나오는 데 저어기, 자신의 자리에 요한 형이 앉아 있었다. 류요섭 목사는 잠깐 멈칫했다가 형을 향하여 눈길을 똑바로 맞추고 형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걸어나갔다. 가까이 다가서니 빈 좌석이다. 앉으려고 몸을 돌리는데 뒷전에 형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그대로 눌러앉는다. 요한 형의 환영을 등으로 깔아뭉개면서 요섭은 등받이에 푹 기대앉았다. 요섭아, 요섭아. 그는 깜짝 놀라서 궁둥이를 얼른 들었다가 다시 앉았다. 요섭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허튼 짓 하지 말라우요. 한번 갔으문 그만이지 왜 자꾸 나타나구 기래요? 난두 너하구 고향 가볼라구.
--- p.37
사랑할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251)
--- p.251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p.161
그러나 참극은 거의가 사실일 것이다. 악몽은 사실이지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생생함을 잃어버린 말은 또한 얼마나 가벼운가. 수십 수백번 거듭된 말은 마치 타버린 책의 종잇장처럼 검게 일그러져 허공에 떠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거기 찍혔던 활자와 의미는 재가 되고 먼지가 되어버렸으리라.
--- p.108
그때 우리는 양쪽이 모두 어렸다고 생각한다. 더 자라서 사람 사는 일은 좀더 복잡하고 서로 이해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어야만 했다. 지상의 일은 역시 물질에 근거하여 땀 흘려 근로하고 그것을 베풀고 남과 나누어 누리는 일이며, 그것이 정의로워야 하늘에 떳떳한 신앙을 되돌릴 수 있는 법이다. 야소교나 사회주의를 신학문이라고 받아 배운 지 한 세대도 못 되어 서로가 열심당만 되어 있었지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살이의 일은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