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는 가족이야
--- 박효선 (pokopon@yes24.com)
2009-07-01
여름이면 더욱 찾게 되는 추리소설, 그 중 특히 일본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해 1순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재미와 분량에 있어서 절대적이다. 올 여름에도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번역물이 4권이나 쏟아졌다. 사실 번역물은 원서의 출간일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시간차가 있지만,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그 차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양쪽 모두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그럼 히가시노의 작품 중 이번 여름에는 무엇을 읽어볼까. 굳이 히가시노의 작품이 아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만 한정 짓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유성의 인연』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작가의 국내 팬카페에는 『유성의 인연』이 추천 목록이나 필독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오키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은 이미 유명한 작품이 되어버렸지만, 『유성의 인연』은 일본에서 2008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 하반기에 바로 드라마로 제작되어 ‘2008 최고의 드라마’로 인기를 누린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물론 드라마의 성공이 온전히 원작자의 힘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인기 캐스팅과 쿠도 칸쿠로라는 유명 각본가의 이름으로 일정 부분 보장되었었지만, 드라마와 원작 모두 본 상태에서는 역시 원작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저 별똥별 같다.
기약도 없이 날아갈 수밖에 없고 어디서 다 타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이어져 있어. 언제라도 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고.
그러니까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
약간 낯설기도 한 제목은 책의 표지에도 등장하는 그림자들(아마도 주인공들)의 연결 고리가 ‘유성’으로 이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중하고 판단력이 어른 못지않은 첫째 고이치와 마냥 철없어 보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둘째 다이스케, 그리고 이 형제의 여린 여동생 시즈나. 세 명의 주인공은 일 년에 한 번, 수십 개의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 부모님이 잠든 사이 집을 몰래 빠져나온다. 그리고 이 장면은 삼형제가 사건 이후 어떻게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지 인물의 특성을 특별한 묘사 없이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작가가 “이 소설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이 써낸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별똥별이 떨어지는 진경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집에는 살해당한 부모의 시체만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견디기 힘들지만 살아가야 하는 삶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사실 그렇게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 역시도 고이치가 무표정한 얼굴로 “어른이 되어 범인을 찾으면, 셋이서 죽여 버리자” 라고 낮은 목소리로 차가운 공기를 퍼뜨리며 시작하는데, 그에 반해 극의 중반은 마치 무슨 게임과도 같이 이들의 삶은 ‘행복한 범인 찾기(역자의 말)’ 그것이 아닌가! 그렇다. 충격과 슬픈 현실이 닥쳐도 그 후에 살아야 하는 것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 삶이다. 그 삶을 통째로 행복으로 도배할 수는 없지만, 검고 우울한 먹물을 칠해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비록 부모가 무참히 살해되어 ‘유족’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남은 것은 바로 또 가족, ‘유성’의 인연으로 맺어진 보통 이상의 가족이니까.
어른이 된 삼형제는 여동생 시즈나가 당한 사기 사건을 계기로 무정한 사회에 이것을 되돌려주자는 결의로 꾸민 일이 발전해서, 어느새 삼인조 사기단으로 변해있다. 사기단이라고 하기에 삼형제가 조직적인 구조가 아닌, 귀여운 수준이지만 ‘유성’의 인연으로 맺어진 탄탄한 구성이다. 한 번 당했던 자신들의 아픔을 통한 본능적인 방어, 그리고 ‘유족’이라는 삶을 짊어지게 한 세상을 향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와 사건 사고를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히가시노의 능력을 통해 가장 트렌드에 근접해 있는데, 책을 읽는 재미와 가속이 붙는 지점도 이 즈음이라고 봐도 좋겠다.
당하고 살 수만은 없는, 본능과도 같은 방어의 형태로 인한 사기 행각들이었다고는 하지만, 삼형제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 선택을 다시 한 번 자신들이 풀어가는 모습은 ‘가족’이라는 의미를 바로 잡고, 되새기는 형태로 감동을 준다. 보통의 추리 소설이 적당한 복선과, 드라마틱한 전개 그리고 놀라운 반전의 요소 정도를 가졌다면, 히가시노의 책이 가진 그 이상의 힘은 드라마가 있고, 반전을 통해 그려내는 감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과 달리 재미있다고 생각한 점은 책의 분량이 드라마로 제작하기에 알맞은 수량의 에피소드들과 강약조절이 적절하게 들어간 전개, 그리고 깔끔한 결말을 장식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수많은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작가이지만, 좀 의식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살짝 들 정도. 그리고 원서 1권의 분량이 2권의 번역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히가시노의 팬이 아닌 일반 독자로서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행히 2권이 1권으로 느껴질 만큼 속도감 있게 읽혀, 2권이라는 압박은 느껴지지 않으니 그 점은 안심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