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에로 그로 넌센스’가 대중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시대로 평가된다. ‘에로 그로 넌센스’는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의 줄임말로, 일반적으로 일본의 모더니즘 시대와 파시즘 시대 사이에 존재한 데카당트한 사조를 의미했다. 서구의 근대성과 소비문화가 근대화되는 일본에 정착하면서 나타난 ‘에로 그로 넌센스’의 유행은 식민지 조선에도 발 빠르게 수입되었다. 1931년 《조선일보》는 ‘에로 그로 넌센스’는 “현대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마국魔國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주문”이라고 썼으며, 같은 해 잡지 《동광》 역시 ‘모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팔바지를 입거나 단발양장은 하지 못하더라도 ‘에로 그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소개했다. ---p.25, 1장. 근대의 경성, ‘에로 그로’ 경성
1929년 《조선일보》는 또 한 건의 기이한 ‘그로 범죄’인 “여자의 묘를 파고 수의를 훔친 변태성욕자”의 사건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범행의 주인공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사는 지남성이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5년 전부터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20여 개의 여자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수의를 벗긴 후 자기 집에 보관해왔다. 그는 올해 1월 의복을 벗긴 시신의 국부를 돌로 찢어 산골짜기에 버렸다가, 범행이 발각되어 검사로부터 징역 15년을 구형받고 최종 판결 언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사는 그를 “극단의 변태성욕환자”로 명명하고 그가 상당한 재산가라고 소개했다. ---p.40~41, 1장. 근대의 경성, ‘에로 그로’ 경성
‘수동무’는 성인과 소년의 결합이라는 양식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는 아니었다. ‘수동무’ 관계를 형성한 성인 남성과 ‘미동’인 소년은 일련의 서로 다른 의무를 졌다. 어른 쪽에서는 자신의 ‘미동’에게 단오, 추석, 설날 같은 명절에 옷을 한 벌씩, 일 년에 총 세 벌의 옷을 지어주어야 하며 지속적인 경제적 후원을 제공해야 한다. 때로 ‘미동’이 나이에 비해 힘겨운 일을 할 때는 대신 일손을 거들어주어야 한다. 대신 ‘미동’은 상대의 말에 순종하며 성관계에서 수동적인 역할(삽입당하는 역할)을 수용하고 상대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행동”할 것이 기대된다. 이와 같은 기대는 이성애 혼인 관계 안에서의 성별화된 역할 구분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연구 참여자들은 ‘수동무’ 관계를 맺은 소년들이 주변인들로부터는 누군가의 ‘작은 마누라’로 불리고, 상대의 부인에게서는 ‘동서’로 호칭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어린 소년은 일종의 여성으로 유비되었던 셈이다. ---p.76~77, 2장. 변태성욕자의 시대
1933년 11월 22일, 신의주로 향하는 열차의 침대칸에서 공포심에 가득 찬 여성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명의 주인공은 시집을 가기 위해 신경으로 가고 있던 18세의 처녀로, 그녀는 잠든 사이에 누군가 자신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그와 같이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출동한 이동경찰반은 현장에서 막 도주하려던 청년을 발견하고 그를 체포했다. 문제의 ‘에로토마니아(색광)’ ‘변태성욕자’는 와다 헤이스케(가명)라는 이름의 19세 청년이었다. 이와 같은 범죄는 그 자체로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당시 와다 헤이스케는 여행 중이었으며 ‘키스 절취’는 그의 여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여흥이었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시즈오카 출신인 그는 이전에도 도쿄와 교토 같은 일본의 대도시를 여행하면서 여성들의 엉덩이를 칼로 찔러 체포된 전력을 여러 차례 가지고 있었다. 와다 헤이스케는 이번에는 평안도 안주를 목적지로 삼아 “변태성욕 행각을 떠나는 길”에 사건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p.84~85, 2장. 변태성욕자의 시대
‘남장’을 통해 공고한 성별 특권의 경계를 통과하려는 신여성들의 시도는 곧 저항에 부딪혔다. 《시대일보》는 1924년 경성 수송동의 중동학교에서 일어난 일대 소란에 대해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사건은 학교로 걸려온 한 통의 이상한 전화로 시작되었다. 전화를 건 익명의 인물은 “중동학교에서는 여자도 공부를 시키오?”라고 물은 뒤 어째서 여자를 가르치느냐고 다짜고짜 따져 묻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항의를 받은 학교 당국자들은 제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전교생을 집합시켜 일일이 검사를 한 결과 학생들 사이에서 “머리를 쌩뚱 깍고 고구라 양복에 학생 모자를 쓴 남학생 같은 여학생” 한 명을 발견했다. 이 여학생은 바로 정측강습소를 다니던 함경북도 출신의 17세 고학생 황육진이었다. 학교 당국자는 중동학교는 남학교이기 때문에 여성이 다닐 수 없으며 다른 여학교로 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황육진은 “나도 남자처럼 공부를 하겠소. 나는 죽으면 죽었지 다른 데로 갈 수는 없소”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p.124~125, 3장. 단속되는 몸
1921년 《동아일보》는 24세까지 “계집노릇”을 해오다 별안간에 남자가 되었다는 가메오라는 일본인의 사연을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가메오는 인터섹스(기사의 표현을 빌자면 “여자로는 병신인 것”)의 신체를 가진 인물로, 여성으로 키워졌으며 “계집종”으로 일하는 동안 한 남성과 연애를 하기도 했다. 연애가 파탄에 이른 후 비관자살에 실패하고 근심 속에 살던 가메오는 우연히 의사로부터 “남성가반음양男性假半陰陽”, 즉 ‘진정한 성별’이 남성에 가까운 “반음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남성이 되는 수술을 받은 가메오는 수술에 성공해 “훌륭하게 남자”가 되었다. ---p.155~156, 3장. 단속되는 몸
1934년 《조선일보》 상담코너 “엇지하리까?”란에는 ‘불순혈설’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연이 등장한다. 사연의 주인공은 본처와 이혼하고 “과부장가”를 든 29세의 남성으로, 그는 재혼한 아내가 이미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는 “과부”로 “정조를 파괴”한 일이 있다는 점 때문에 이것을 항상 “더럽게 생각”해 불만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고통은 최근 《조선일보》 학예면에 실린 ‘불순혈설’ 관련 기사를 읽은 후로 한층 더 심해졌고, 이에 대응책을 질문하기 위해 편집부로 사연을 보낸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당대의 신문·잡지가 통속화된 성과학 지식들을 독자들에게 보급하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식들이 때로는 독자들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계기가 될 만큼 진지한 주제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p.186~187, 4장. 욕망의 통치
의학상담란은 식민지 정부의 통제나 훈육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새로운 ‘자기관리’의 주체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학상담란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증상을 질병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진단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의학상담란은 직접 문진이 아니라 신문지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지면상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유용한 상담을 받기를 원하는 독자는 자신의 증상을 병명과의 연관 속에서 미리 예측하고 문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능력은 1933년 9월 이후 《동아일보》가 “지상병원”에 밀려드는 투고를 효율적으로 분류하기 위해 엽서를 보낼 때 반드시 병명을 쓰도록 규정하면서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병에 대한 문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증상들을 서양 의학의 프레임을 통해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p.191~192, 4장. 욕망의 통치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는 기사 기획에 맞추어 일관되게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명칭은 ‘S’(S언니/S동생)였다. 유사한 여학생 문화를 공유했을 뿐 아니라 명백히 조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일본에서 ‘S’는 자매들을 의미하는 ‘시스터Sisters’ 혹은 소녀를 의미하는 일본어 ‘쇼죠しょうじょ’, 때로는 ‘섹스Sex’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이해되었다. ---p.233~234, 5장. 경계를 위협하는 여성들의 욕망
여기서 주의해야 할 대목은 이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적 배경과 계층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방식의 죽음을 의식적으로 기획하고 연출했다는 데 있다. 가족과 일상적인 생활 반경으로부터의 탈출. 두 사람만의 특별한 시간. 내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신체의 일부를 함께 묶는 행위와 이어지는 투신. 이와 같은 일련의 의례는 이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의 죽음을 인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죽음을 고유한 방식으로 위치 짓고자 했던 욕망을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비관이 아닌, 사랑을 완성하는 정사라는 형식으로.
---p.263, 5장. 경계를 위협하는 여성들의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