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공존하는 사회, 미래 교육의 방향성을 찾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인재상은 ‘성실하고 정답을 잘 맞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창조적인 괴짜’에 더 가깝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아직도 정답을 신봉하며, 학생들에게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다.
아이들을 성적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이것은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정된 취직자리만을 숭배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연공서열화되어 있는 회사와 대학, 모든 것을 통제하고 획일화시키는 학교, 관용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의 상벌 문화가 모두 여기에 책임이 있다.
어차피 계산력과 암기력에서는 인간이 AI에 대항할 수 없다.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에게 특화된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비롯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소프트 스킬 같은 것들이다.
--- 감수의 글 중에서
독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닥쳐올 미래를 경고하다
AI 낙관론자들은 수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더라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노동 수요가 탄생해 잉여 노동력을 흡수하고 생산력이 향상되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제작한 시대에 화이트칼라가 탄생했듯이 그전까지는 없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리라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여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비관적이다. 나는 도로보군의 도전과 병행해서 일본인의 독해력에
관한 대략적인 조사와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일본의 중·고등학생 대부분이 주입식 교육의 성과로 영어 단어나 세계사 연표, 수학 공식 같은 표층적인 지식은 풍부할지 몰라도, 중학교 역사 교과서나 과학 교과서 수준의 문장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너무나도 심각한 일이다. (중략)
AI 낙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은 물론 있다. 그러나 설령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하더라도 그것이 AI에 떠밀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의 차지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날 일본인의 노동력이 AI의 노동력과 질적인 측면에서 비슷하다는 말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대부분의 인간에게도 난이도 높은 일자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된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시장은 심각한 일손 부족에 빠져 있는데 시중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일을 몇 가지씩 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그 결과 경제는 AI 공황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래 예상도이다.
--- 머리말 중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재가 될 수 있을까?
도로보군은 각각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전체 수험생의 상위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다. 특히 수학에서는 도쿄 대학 모의시험(이과 계열)에서 6문제 중 4문제를 정확히 맞힘으로써 편차치 76.2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기도 했다.
(중략) 그러나 무작정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도로보군 프로젝트가 거둔 이러한 성과는 2011년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AI가 수많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라는 나의 예상이 현실이 되리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한 학년에 다니는 학생의 수는 약 100만 명이며 그중 절반인 50만 명이 센터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도로보군은 이 가운데 상위 20퍼센트에 드는 성적을 냈다. AI의 성적이 화이트칼라를 지향하는 젊은이의 중앙값도 아니고 평균값을 크게 웃돈 것이다.
앞으로 이 나라의 노동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도로보군에게 뒤처진 80퍼센트의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안겨줄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1장 AI, 대학에 합격하다] 중에서
AI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에 노동자의 절반이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예측을 제일 먼저 한 것은 옥스퍼드 대학 연구 팀이 아니다. MIT에서 발표한 「기계와의 경쟁」도 아니다.
나는 2010년에 출판한 『컴퓨터가 일자리를 빼앗는다(コンピュ?タが仕事を奪う)』에서 이미 그와 같은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책이 출판된 직후 도쿄역 앞의 대형 서점에 가보았다. 그런데 경제·경영 서가를 아무리 뒤져도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SF 서가에 가서야 이 책을 발견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일본인들은 이 이야기를 SF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사실은 바로 이것이 [로봇은 도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최초의 동기였다. ‘나의 예측이 가까운 미래에 틀림없이 현실로 나타날 것임을 하루라도 빨리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싶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날을 대비해 준비하도록 만
들고 싶다.’ [로봇은 도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가?]는 그런 초조함의 발로였다.
- [1장 AI, 대학에 합격하다] 중에서
컴퓨터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AI가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도로보군이 도쿄 대학 합격권에 근접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AI 연구자들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AI가 의미를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의미를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애플의 시리(Siri)로 대표되는 음성 인식 응답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시리는 얼마나 영리할까? 가령 “이 근처에 있는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은?”이라고 시리에게 물어본다고 해보자. 그러면 시리는 GPS로 위치 정보를 판단한 다음 근처에 있는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을 추천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이번에는 “이 근처에 있는 맛없는 이탈리아 음식점은?”이라고 시리에게 물어보자. 그러면 아까와 비슷한 가게를 추천해 줄 것이다. 평판이 나쁜 가게부터 순서대로 표시하지는 않는다. 시리는 ‘맛없다’와 ‘맛있다’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근처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 이외의 음식점은?”이라고 질문해 보자. 또다시 처음과 비슷한 가게를 추천해 줄 것이다. 요컨대 시리는 ‘이외의’라는 말의 의미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2장 도로보군은 왜 도쿄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가?] 중에서
실제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확률과정만을 이용해서 문장을 생성하면 어떻게 될까? 이를 체험해 볼 방법이 있다. 스마트폰의 자동 완성 기능을 이용해 제일 먼저 표시된 단어만을 사용해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중략)
“그건 그렇고, 나는 후쿠시마가 되지 않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자. 어쨌든 기계는 “그전앋채브채지아, 마챠디으베묘패듀” 같은 외계어가 아니라, 의미 불명이기는 해도 “그건 그렇고, 나는 후쿠시마가 되지 않아”라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자력으로 생성해 낸 것이다. 구두점을 찍은 위치도 그렇고, ‘나’를 주어로 삼은 것도 그렇고, 부정 표현도 그렇고, 하나같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딥마인드사가 공개한 낭만주의 피아노 곡이, 그리고 구글 번역이 ‘자연스러운’ 만큼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확률과정과 통계에 입각한 언어 모형이다. 이는 매우 획기적이고 훌륭한 기술이다. “의도나 의미처럼 관측할 수 없는 것은 무시하고 확률과 통계를 의도적으로 혼동한다”라는, 수학자들은 좀처럼 선보일 수 없는 과감함이 있었기에 달성 가능한 기술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획기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 이 정도로 도쿄 대학에 합격하는 것은 무리다. - [2장 도로보군은 왜 도쿄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가?] 중에서
과거에 수학자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는 학교 교육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자 “첫째로 국어, 둘째로 국어, 셋째와 넷째는 없고 다섯째로 산수”라고 답했다. 나는 현재의 ‘국어’로 괜찮은지에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에 “첫째로 독해, 둘째로 독해, 셋째와 넷째는 놀이이고 다섯째로 산수”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놀이’는 손과 발, 몸을 움직이는, 기구에 의존하지 않는 놀이를 가리킨다. 그리고 일본의 학교가 자랑하는 급식 당번이나 청소 당번 등의 단체 활동도 이에 포함된다. 그 밖에는 필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3장 전국 독해력 조사를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현실] 중에서
나는 중등교육 전문가도 교육행정 전문가도 아니다. 수학자인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도로보군의 도전을 통해 명확해진 현재의 AI의 실상과, RST를 통해 판명된 일본(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 중·고등학생의 독해력 실태를 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로보군 프로젝트와 RST를 통한 독해력 조사 양쪽 모두에 깊이 관여한 사람으로서 이것만큼은 말해 두고 싶다. AI와 공존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한 교육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학생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정보가 넘쳐나므로 독해 능력과 의욕만 있으면 어지간한 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격차는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대졸인가 고졸인가 같은 것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교과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서 생겨난다. 현장의 교원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 [3장 전국 독해력 조사를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현실] 중에서
대학 졸업생을 받아들이는 쪽인 기업이 대학 측에 하는 요구는 해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좀 더 쓸 만한 인재를 키우시오”라는 요구다. 사실 과거의 일본 기업은 대학에 교육 따위를 기대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는 어차피 졸업 후에 우리 회사 방식으로 교육시킬 테니 대학 입시를 통해서 적성 심사만 제대로 해주고 쓸데없는 교육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서 대학의 인재 육성 방식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일까? 대학 입시라는 적성 심사만으로는 도저히 원하는 인재를 채용할 수 없음을 기업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란 어떤 인재일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든가 글로벌 인재라든가 창의성이라든가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섬기지만 결국은 IT나 AI로 대체할 수 없는 인재, 의미를 이해하고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이 있으며 스스로 생각해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를 뜻할 것이다.
- [4장 독해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닥쳐올 미래]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