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민거리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은 많아지고, 더 잘해내고 싶고, 가능하면 제일 좋은 결정을 하고 싶다. 이럴 때 각각의 고민마다 최적의 정답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언뜻 생각해보면 이상적인 것 같지만, 고민과 짝이 되는 답까지 외워야 하는 일이다. 오히려 두 배로 에너지를 쓰며 한정된 뇌의 용량이 꽉 차버린다. 내 경험상 사람들은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답을 못 찾아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문제를 마음 놓고 해결할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두려움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에 휘둘리거나, 가장 완벽한 해법을 원하기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고민의 공회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고기를 얻기 위해 낚시질을 익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인 것처럼, 고민을 잘하기 위해서는 고민을 잘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
아무쪼록 이 책이 일상의 수많은 고민을 위해 적절한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고, 뇌를 제풀에 지치지 않게 하며, 세련된 방식으로 고민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단단한 일상을 회복하며, 삶의 주도권을 쥐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pp.6~8
고민으로 최적의 답을 내리려는 노력보다는 고민을 잘하기 위한 방법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고민을 위해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과 고민의 문법을 깨닫고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민을 잘한다는 것은 효율적이고 빠르게 생각해서 판단을 내리고, 고민에 방해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00퍼센트 완벽한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pp.25~26
감정적 기억이 올라오면 감정을 처리하는 시스템인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그때까지 뇌를 움직이던 이성적 논리와 체계성은 일거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과거의 감정적 상황이 눈앞에 떠올라 지금까지 쌓아왔던 생각의 틀을 한 번에 무너뜨린다. 공든 고민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셈이다. 특히 과거에 있었던 창피했던 일, 충격을 준 사건,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 마치 영화의 회상 장면같이 떠오른다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된다. 이를 ‘플래시백’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은 외상이 될 만한 감정적 기억에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벌어지는 것이다. --- p.65
뇌는 고민하기를 싫어한다. 직관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은 일단 생긴 신념에 반하는 정보가 나타나도 자기가 믿어온 신념이 옳다고 여긴다. 이는 편견으로 이어지기 쉽다. 인간은 ‘믿음 체계’를 만든다. 그리고 한번 만들면 그것을 쉽사리 없애지 않는 경향이 있다. ‘A형 성격은 소심해’라는 걸 믿게 되면, 아무리 그 사람이 대범한 행동을 해도 그럴 리가 없다 여기고 그 정보는 무시해버린다. 도리어 그 행동이 일회적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믿음은 점점 비타협적으로 변한다. 그래야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고, 믿음이 주는 안전감과 확신이 유쾌한 심리 상태를 만들어주며, 뇌의 에너지 소모량도 최소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를 ‘믿음 보존 편향’이라 부른다. 지나치게 강한 신념 체계는 어떤 방향이든 보수화, ‘꼰대’가 되는 급행열차의 티켓이다.
--- p. 134
우리 뇌는 ‘고통’과 ‘불편’을 한 가지로 묶어서 인식한다. 둘 다 피할 대상이고 없으면 더 좋다고 여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인식하면 우리 앞에 놓인 아주 많은 것들이 다 여기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특히 뇌의 변연계가 놀라서 예민해진 상태일 때는 위험한 정도와 해결의 시급성이 아주 높아진다.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하거나 성급한 판단을 하게 해서 생각을 합리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고통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이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신호다. 이에 반해 불편함은 견뎌내면 될 일이고, 불편이 지속된다고 해서 위험해지거나 생존에 위협을 줄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건강한 마음 상태란 고통이 전혀 없는 상태라기보다(이런 상태를 기대하면 영원히 건강해질 수 없다), 불편한 것을 안고 가지만 불편을 견뎌내며 편안과 안전을 찾고 일상의 기능을 하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 p. 177
개입할 수 없는 절대적 시간의 흐름에 개입하려고 애를 태우다가는 에너지만 소모된다. 시간을 분 단위, 초 단위로 쪼개려고 할수록 우리 뇌에서 시간은 늘어진다. 차라리 넓혀라. 시간 단위, 반나절, 일 단위, 아니 아예 주 단위로 생각해보자. 그러면 세상과 시간을 보는 스케일이 커지고 지금의 시간은 아주 짧고 간단한 단계로 여겨진다. 조바심은 가라앉고 비로소 진짜 내 고민을 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특히 상황이 안 좋을 때에는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애매한 상황을 견디고 그대로 두어보는 것이 좋다. 나는 그런 능력을 ‘마음의 내공’이라고 부른다. 종결심리와 조바심의 등 떠밀기를 참아내고 견뎌보자. 의외로 외부의 상황변수가 바뀌면서 고민이 쉽게 풀려버리기도 한다. --- p. 199
눈앞에 다가온 어떤 큰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적 조바심이 ‘치열한 고민’으로 합리화되고 있다면 나는 차라리, ‘고민 없는 나날’에 서 있다고 선언하고 싶다.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하느라 막상 아무것도 못하면서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다가온 작고 구체적인 일들, 고민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해나가면서 뚜벅뚜벅 내 길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말할 것이다. ‘전 별 고민이 없습니다’라고. 나는 평소에 덜 고민하고, 큰 화두에 덜 휘둘리고, 우직하게 내 갈 길을 가고 싶다. 그래야 큰 고민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여유 있는 에너지와 마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갑작스럽거나 압도되는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게 현명한 태도다. --- p. 267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큰 파도가 와서 나를 휩쓸어 가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큰 파도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파도들이다. 큰 파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영역이고, 다행스럽게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자잘한 파도에 넘어가지 않고 작은 물결을 큰 파도로 오해하지 않기만 해도, 사는 게 훨씬 편안해진다. 고민이 없어지기를 바라기보다, 우리의 삶이 고민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자. 불가피한 고민의 존재를 인정하고 내 마음의 코어 근육을 튼튼하게 키우면서 꼭 필요한 고민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이 책이 그 길을 가는 과정의 내비게이션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pp. 279-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