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쪽 중에서
우리는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때가 많다. 돈 문제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돈도 본래 창조된 목적대로 쓰여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 화폐는 조선 시대의 상평통보(常平通寶)인데, ‘평등하게 널리 쓰이는 보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돈은 물물교환과 거래에 사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탄생했다. 저장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돈은 물처럼 돌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썩고 만다.
그런데 지금 돈은 본래의 목적에서 확대되어 훨씬 다양한 기능을 하는 동시에 많은 악을 파생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면서도 많이 가진 사람을 시기하거나 우상시하기 시작했고, 돈 많은 부자는 탐욕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벌기만 했지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모으고 잘 쓰는 것일까?
37쪽 중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 어떻게 돈을 많이 벌고 많이 모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규칙을 마련해 돈을 모으려고 애쓴다. 책을 사 보며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장 무지할 수 있다.
경제 공부를 하는 목적은 돈을 버는 것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바로 인생의 광야가 찾아올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돈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가? 바로 인생의 광야를 지날 때다. 고난의 비바람이 몰아칠 때다. 그러나 은행은 우리 인생에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아 간다. 실직을 했거나 사업 자금이 필요할 때, 경제 위기가 찾아와 점포 운영이 어려워질 때, 정작 돈이 필요해 대출을 필요로 할 때 은행은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투자 시장도 개인 투자자들한테는 광야와 같다. 이런 광야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를 알아야 한다.
91-92쪽 중에서
‘투자가 성경적인가?’하는 문제는 대답하기가 참 어려운 분야다. 돈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돈을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자를 받는 것이 거룩한 돈일까? 주식 투자는 거룩한 돈일까? 주식 투자는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과연 주식 투자가 비성경적이라면 전 세계 금융업 종사자들은 비성경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주식을 무조건 ‘투기’로 생각하고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식은 ‘돈 놓고 돈 먹는’ 부정한 행위이며 주식 투자는 ‘쪽박 차는 지름길, 잘 돼 봐야 운이 좋은 것, 결과가 좋았다고 하는 건 사기’라는 투자 패배주의가 만연한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우선 생각해 볼 것이 ‘투자’와 ‘투기’의 차이다. 내가 생각하는 투자와 투기의 정의는 ‘알고 하면 투자, 모르고 하면 투기’이다. 투기가 되지 않으려면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의 범위를 넓히든지, 아니면 좁게라도 내가 아는 것에만 집중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
124-125쪽 중에서
생각보다 많은 가정의 통장의 성벽이 무너져 있다. 그러니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아무리 아껴 써도 저축보다는 빚이 생기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쓰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항상 빚의 위험보다 돈을 쓰는 재미가 우선하므로 빚을 내서 소비를 한다. 돈 쓰는 재미는 지금 당장 맛볼 수 있는 반면 빚은 나중에 문제가 터지므로 시간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당장 쓰고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면서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돈 쓰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서, 과소비, 빚, 술, 담배 등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어려운 일들이 있다.
이것을 도와주는 방법은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과소비로 인한 빚을 없애려면 소비를 어렵게 하면 된다. 가령 카드를 과감히 잘라 버리고 현금을 찾아서 쓰는 것이다.
이밖에도 돈 관리 시스템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통장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다.
173-174쪽 중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의 빚을 지고 있다. 복음의 빚도 지고, 은혜의 빚도 지고 사랑의 빚도 걸머졌다. 우리는 이러한 빚진 자라고 하는 의무와 책임을 깨닫게 될 때에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갖고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약속은 신용이므로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따른다. 이것은 부채의 속성과 일치한다. 그런데 쉽게 빌린 돈일수록 갚기가 어렵다. 갚을 방법을 신중하게 따져 보지 않고 무작정 빌렸기 때문이다. 반면 어렵게 빌리는 사람은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가 갚을 가능성을 계속 따지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빌리는 과정부터 얼마나 갚을 방법을 고민하느냐에 따라 빚을 갚을 가능성이 달라진다.
복음도 빚도 은행의 빚도 우리는 모두 갚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빚인지 알 때 하나님의 은혜라는 빚을 갚을 수 있다.
224-225쪽 중에서
사람들은 가끔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남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을 알면 시각이 확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과 진실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남에게 속는 것보다 더 힘들고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무지에 속는 것이다. 자신의 눈에 속지 말고, 귀에 속지 말며,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지식과 학식도, 사람 사는 이치도, 사리 판단도, 예의범절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투자를 잘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은 내가 얄팍한 경제 지식으로 기업과 주가의 관계를 풀어내는 것을 부러워하며, 그런 경제나 회계 지식이 투자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제 지식, 회계 지식, 기업 분석, 경험, 돈 등도 모두 주식 투자에 필요한 공부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인문학 공부, 즉 사람 공부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투자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이므로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투자는 지식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시장에서 시장 참여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여 투자의 흐름을 통찰하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인문학적 사고가 기본 체력으로 다져져 있어야 한다. 사업이나 직장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나는 문학, 역사, 철학 책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을 읽기 시작한 후로는 세상의 책 대신 성경만 읽는다. 세상의 모든 책을 한 권으로 엮으면 그것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연간 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고전을 보니 베스트셀러가 가벼워졌다. 그래서 고전만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고전이 가벼워졌다. 성경은 인문학의 최고봉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