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육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흔히 어떤 과제의 목적은 결국 좋은 결과를 내는 것에 있다. 그러니 양육의 일차 목적은 자녀를 잘 키워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녀가 나중에 어떠한 사람이 되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녀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양육에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양육이 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 단순한 사실에 동의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다른 집 이야기를 들어 봐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나와 같이 직업상 힘든 아이와 부모를 매일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하기 어렵다. 좋은 양육자와 양육을 잘 받은 좋은 자녀, 즉 잘 자란 아이로 연결되지 않을 때가 너무도 많으며, 나쁜 토양에서도 드물지 않게 좋은 사람이 자라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 나와 생김새는 물론 하는 짓까지 똑 닮아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 때로는 나와 너무도 달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자녀는 부모 자신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비쳐지기도 하고, 자신의 부모와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나의 부모, 과거의 나, 그 사이에 일어났던 좋았거나 혹은 아팠던 많은 상호작용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나와 내 앞에 서 있는 자녀, 우리 간의 주고받음들, 그리고 미래에 부모가 될 자녀…. 그 긴 연속선상에 우리는 모두 나란히 도열해 있다.
-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주변으로부터 계속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잘 사는 삶이란 변화하는 삶이며, 무언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삶이다. 당연히 자녀를 키우는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도 바라보고 지향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길이 어둡고 시야가 흐려질 때마다 영점을 재조정할 목표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인생을 알고, 우리 자신보다 나와 자녀를 더 잘 알고 사랑하는 분,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존재를 바라봐야 한다. 그분은 결국 우리가 헤매고 있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설명해 주실 것이다. 우리와 자녀가 어떤 존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오직 한 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부모로서의 자신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부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내 부모의 삶을 잘 관찰하고 그분들을 이해해야만 내 양육 행동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는 양육 방식이나 패턴들은 부모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연계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육 과정에서 마음먹은 대로 잘 실천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부모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정리해 보기를 권고한다.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여정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써 내려가 보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된다. 그분들의 장점과 단점, 특징과 중요한 사건들을 살피다 보면 오늘날의 나에 대한 많은 것이 이해된다. 그 흐름 속에 부모가 된 지금의 내가 있고, 나의 자녀가 그 연속 선상에 같이 놓여 있다. 그 흐름을 알면 우리 안에 행동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 부모보다 한 걸음 더 나은 양육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된다.
- 양육에는 비방(秘方)이나 특별한 묘책이 없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결국 아이에게는 특별한 노하우나 지식이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상호작용들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관계는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소중하고 강력하다는 실제 경험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다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가 더 중요하며,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힘든 일들이 견고한 관계 앞에서는 결코 결정타가 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늘 오리무중인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잘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
- 양육은 아이에게 가치관을 심어 주는 과정이다. 아이는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계속해서 선택해야만 한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이 가치관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말이다. 당연하게도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지금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부모의 태도와 행동, 즉 양육에 대한 부모의 가치관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진다.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선택 과정을 통해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하는 기준과 비법을 전수한다. 아이는 이런 선택의 기준과 기술을 배우고 익힌 다음, 여기에 따라 자발적인 결정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우리 자녀들은 지금 여기에서 나름의 한계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며 현재 자신과 비슷한 형편의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며 어울리고 있지, 부모가 지난날에 함께했던 부모의 옛 동료들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녀를 설득하려고 한다. 물론 더 열심히 잘 살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부모의 욕망(desire)일 뿐, 성숙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걸림돌이요, 쓴 뿌리다. 자신의 분노와 희망, 콤플렉스 등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 나를 찾아와 ‘자녀를 미워하는 자신이 실망스럽다’고 고백하는 부모들의 십중팔구는 실제로 그 자녀에게 가장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지극히 사랑하기에 때로는 밉다. 부모 마음을 모두 아는 자녀는 없고, 그 마음을 몰라주기에 부모의 짝사랑은 때로 꽤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짝사랑의 운명이다. 진정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미운 자녀를 위해 오늘도 몸과 마음을 다해 그들을 돌보고 있는 당신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사랑의 ‘화신’ 아닌가? 사랑은 벅차오르는 행복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고 실천이며 삶 자체이니 말이다.
- 어떤 부모들은 실패가 아이들의 자신감을 꺾는다고 걱정한다. 이 말이야말로 두려움이 만든 대표적인 허상이다. 아이들의 자신감을 꺾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비난과 무지다. 그것도 부모와 같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비난! 실패해도 소중한 사람들이 괜찮다고 보듬어 주면 인간은 잘 쓰러지지 않는다. 만약 쓰러진다고 해도 함께 일어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