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내는 인공지능이 현재처럼 어마어마한 자본을 빨아들이며 범용화할 때 인간이 처하게 될 미래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이 대결에서 우리가 목격한 인간의 미래는 알파고도 이세돌도 아니다. 우리가 목격한 건 알파고의 지시에 따라 바둑돌을 놓던 구글 딥마인드의 ‘아자 황’ 박사다. 아자 황은 이번 대결에서 인간으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오로지 알파고의 아바타로만 존재했다. 한때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 [아바타]에서 보듯, 미래에는 우리 아바타를 만들어 사이버 세계나 실재 세계에 내세우고 나를 대신해 운용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미래는 정반대의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자 황의 존재가 보여주었다. --- p.24, 「인간의 삶과 미래 기술」중에서
드림 소사이어티는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주장한 것으로, 그는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부가가치의 기반이 다르게 변화해왔다고 정의했다. 고대의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짐승과 열매가 인류를 먹여 살렸다. 중세 농업사회에서는 토지와 가축이,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석유와 석탄 및 철광석이, 현대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고급 지식과 정보가 각각 인류의 생산 토대이자 부의 원천이었다. 그럼 미래 사회의 원천 자원은 과연 무엇일까? 롤프 옌센은 그것이 ‘이야기’일 거라고 예언했다. 21세기는 꿈의 사회이자 감성사회인데, 그런 감성을 가장 잘 자극하는 이야기가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뜻이다. --- p.57, 「이야기는 어떻게 산업이 되었나」중에서
MS는 윈도 운영체제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뭔가 다른 조건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즉 컴퓨터에서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작해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에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MS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소비자들에게도 윈도 운영체제를 구입할 경우 필요한 응용프로그램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다른 사용자와의 호환성도 높다는 믿음을 제공했다. MS는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윈도’라는 시장을 형성한 것이다. --- p.107, 「성공하는 마케팅에 숨은 인문학」중에서
소설 『안나 카레니나』처럼 거듭해서 영화로 제작된 소재도 드물다. 러시아 외의 지역에서 제작된 유명한 버전만 얼른 꼽아보아도 그레타 가르보(1935), 비비언 리(1948), 소피 마르소(1997), 키이라 나이틀리(2012)의 안나 카레니나를 떠올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이름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에는 타이틀 롤의 존재감이 우선인 셈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작가의 사상과 생애를 공유한 분신인 레빈의 이야기와 안나의 이야기가 대등한 비중으로 병렬되며 ‘가정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전체 주제를 엮어나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는 안나의 연애와 파멸을 중심에 두고 안나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 p.159~160, 「러시아 문학의 생명력」중에서
세종은 톰 피터스가 가리킨 경청하는 리더의 표준이었다. 몸은 비록 600년 전의 인물이지만,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덕목을 제대로 갖춘 리더였다. 세종은 어전회의(오늘날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뿐만 아니라 경연에서도 신하들의 말을 경청했다. 경연은 어전회의에 비해 분위기가 덜 딱딱했기 때문에 신하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발제를 맡은 언관이 강독하는 정도로 진행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토론이 점차 활성화되었다. 임금의 귀가 열려 있음을 알게 된 신하들은 다소 껄끄러운 발언도 서슴지 않았으며, 경연에서 나온 직언들은 조정의 검토를 거쳐 정책에 반영되었다. --- p.178, 「세종의 원칙」중에서
쿠아론 감독은 시각적 공간 연출뿐 아니라 청각 연출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음향팀에게 ‘그 동네(로마)에 사는 새소리’와 ‘그 동네의 칼갈이 아저씨 소리’를 녹음해 오라는 미션을 내렸을 정도였다. 화면 안팎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에 쓰려고 멕시코 현지인 350여 명을 섭외하기도 하는 등 사운드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 이처럼 시청각적으로 촘촘하고 세밀한 연출은, 스크린에 재현되는 공간이 단순히 인물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작용하게 한다. 이로써 관객은 화면 속 공간을 다층적인 소리로 느끼면서 스크린에 보이는 스토리 이상의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받는다. --- p.231~232, 「다섯 명의 영화감독, 다섯 개의 세계」중에서
천장화 가운데 가장 커다란 감동을 주는 장면으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순간을 꼽을 수 있다. 천사들과 함께 수염을 휘날리며 날아오는 하나님은 오른손을 힘껏 뻗고 있다. 하나님의 왼쪽 팔 아래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브가 금발머리를 내밀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아담을 바라본다.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아담은 하나님을 향해 왼팔을 들고 있는데, 힘없이 늘어진 손목은 그가 아직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은 진흙임을 알려준다. 하나님과 아담의 손은 서로를 향해 있지만 아직 닿지 않았다. 두 손가락 사이의 작은 틈은 우리가 신이 될 수 없음을, 지상의 인간이 결코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 p.285, 「르네상스 미술의 한 장면」중에서
제환공은 관중의 그늘 아래, 진문공은 호언의 가르침 아래, 초장왕은 손숙오의 보좌 덕에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패자는 힘으로 남을 제어하되 상대로부터 바람직한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동의를 얻어내는 사람이다. 패자가 사상가의 보좌를 받으면 동의라는 수단을 폭력의 위에 둔다. 그들은 사상가의 반열에 오를 수 없으나 사상가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진시황 다음으로 언급할 한고조 유방은 선배 묵가와 도가 등 여러 사상가들의 영향을 체현한 인물이다. 그는 여러 사조를 받아들이면서 나름대로의 사상을 만들어냈으니, 일종의 공리주의다. 효과가 명확하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한 통치는 목적보다 수단이 먼저다. --- p.297, 「인물로 이해하는 춘추전국시대」중에서
중국인의 꽌시 문화는 집단으로 뭉치는 한국식 집단주의와도 다르고 서구의 개인주의와도 다르다. 중국 학자들은 이런 꽌시 문화를 ‘자아주의’라고 부른다. 나를 중심에 두고 인맥 집단을 형성하는 점이 독특하다. 그러니 중국에 출장을 가서 파트너를 몇 번 만났다고 해서 꽌시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굳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의미를 두자면 그저 일면식이 있는 정도일 뿐, 아직 중국적 의미의 꽌시가 맺어졌다고 볼 수 없다. 어느 회사에 속해 있는 ‘어떤’ 사람으로 만나는 차원에 머무를 뿐, 개인적 관계로 발전하는 중국인의 꽌시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 p.337, 「키워드로 보는 중국 비즈니스 문화」중에서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두드려 만들던 실물이 명품이 되던 시대는 지나고, 자본주의의 흐름에 맞추어 명품도 주식처럼 진화했다. 대기업이 뛰어든 명품 시장에서는 실물이 아닌 ‘브랜드’라는 상징적 가치를 소비한다. 부동산처럼 말이다. 시골의 수만 평 임야보다 강남에 있는 100제곱미터짜리 아파트가 더 비싸다. 이 사실이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상업과 자본으로 이루어진 도시화가 현대까지 내려오며 만들어낸 신기루다. 과거에는 땅에서 얼마나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가 하는 실물적 가치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제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 환경 요인 등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고 사회 구성원끼리 그 가격을 인정하기로 약속한다. 문제는 약속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가치란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 p.368, 「시간이 만든 명품의 비밀」중에서
춘추전국시대에서 진한을 거치는 동안 다른 사상과 마찬가지로 의학도 취사선택을 거치면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대표적인 책이 바로 『황제내경』이다. 학자들은 이 책이 황제라는 상고시대의 인물을 빌려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의학 지식을 편집해 수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화타는 아마도 이런 의학 지식을 접하고 익혔을 확률이 높다. 전기에 수록된 화타의 치료 기록을 보더라도 편작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정밀한 측면이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병을 진단·치료하고 예후를 예측하는 측면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했음을 의미한다. --- p.413~414, 「명의열전」중에서
볼라르는 1901년에 피카소의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년 사이 마티스, 세잔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잇달아 열었다. 당시 대중은 전위적인 작품 경향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볼라르는 작가들의 소질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사주며 후원했다. 재정적 지원을 위해 그림을 팔아주는 것은 물론, 작가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작가에게는 생존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볼라르는 잘 알고 있었다. 볼라르가 판화집(작품집)을 출간해주며 예술혼을 북돋아준 당대의 화가들은 르동, 드가, 루오, 보나르, 피카소 등 수없이 많다. 세잔과 드가, 르누아르의 전기를 쓴 사람도 볼라르다.
--- p.477, 「알고 보면 재미있는 미술 시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