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슈테판 대성당의 뒤편을 돌아보면 ‘하스 운트 하스’라고 적힌 집이 있다. 큰 창문들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행복하고 따뜻한 집안을 들여다보는 성냥팔이가 된 기분이다. 들어가면 한편에는 오래된 차통茶筒을 가득히 진열해 놓은 거대한 선반이 연륜을 느끼게 한다. 맞은편에는 카페가 있다. 앉아서 차를 시켜보자. 빈은 커피가 유명하지만, 이곳만은 찻집으로 일가를 이룬 곳이다. 주문할 때는 스콘을 함께 시켜야 제맛이다. 하스 운트 하스의 따뜻한 홍차와 부드러운 스콘은 왜 겨울이 빈 여행의 적기인지를 속삭여준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 하스 운트 하스에서 차를 마시는 시간. 이것이 빈이 가진 매력의 핵심이 아닐까?
--- p.59~60
유덴플라츠Judenplatz 즉 ‘유대인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구조물을 보게 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빈 시내에 초우주 공간에서 내려온 듯한 비현실적인 구조물이 앉아있다. 많은 책을 쌓아놓은 모양의 건물, ‘이름 없는 도서관’이라고도 알려진 이 구조물은 영국의 설치예술가인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이다. 나치에 의해 살해당한 오스트리아 유대인 65,000명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홀로코스트 기념비는 가로 10미터에 세로 7미터, 높이 3.8미터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4면은 모두 도서관 서가처럼 책이 꽂혀있는 형태인데, 책의 등背이 바깥을 향하지 않고 책장 안으로 꽂힌 모양이다. 그래서 책 안쪽이 밖을 향하다 보니 책의 제목도 내용도 알 수 없어서 ‘이름 없는 도서관’라고 부른다. 서가書架 가운데에는 출입문이 있지만, 손잡이가 없어 들어갈 수 없다. 즉 책은 있지만 들어갈 수도 읽을 수도 없는 도서관이다. 이는 경전의 종교인 유대교와 그들에 대한 학살을 표현한다.
--- p.102~103
추운 겨울에 베토벤처럼 코트 깃을 올리고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쓸쓸한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장식 하나 없는 집의 문을 밀어본다. 밖은 춥지만 문을 열면 왁자지껄한 대화와 더운 열기가 밖으로 후끈 전해진다. 어김없이 맞이하는 짙은 커피 향. 여기가 빈 최고의 커피를 가장 싸게 제공하는 곳, 빈 보헤미안들의 아지트인 카페 하벨카다. 칙칙하고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는 마치 슈니츨러의 소설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빈 자리가 있다면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손님들이건 웨이터건, 누구든 당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면 여기가 하벨카가 맞다. 겨우 자리에 앉고 나니 테이블 사이로 다니는 웨이터들의 연세가 70세는 넘어 보인다. 이건 뭐 커피가 나오면 벌떡 일어나서 두 손으로 받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웨이터와 단골들은 격의 없는 친구처럼 대화하고 커피와 접시를 주고받는다. 나도 어서 짙은 향의 커피를 마셔 보고 싶지만, 웨이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 p.127
부르크 극장은 아름다운 건물이다. 내부 투어 프로그램이 있으므로 신청해서 구경해 보자. 여기서 문학, 연극, 회화, 건축이 결국 하나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명한 곳은 남쪽 계단실인데, 황제가 극장에 왔을 때에 마차에서 내려서 올라가던 통로다. 이 계단실에는 특히 유명한 천정화가 있다. 바로 인류 연극의 역사를 그린 「극장의 역사」 연작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동생 에른스트 그리고 프란츠 마취의 세 사람이 세운 ‘예술가 회사’가 제작한 작품으로, 세 사람이 나누어서 그렸다. 그중에서 클림트가 그린 「셰익스피어 극장」에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림 속의 극장 관객들 중에서 옆모습이 두드러지는 남자 관객이 바로 화가인 클림트 자신이다. 이것은 클림트가 남긴 유일한 자화상이다.
--- p.169
빈에 왈츠가 성행했던 시대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다. 사실상 혼자의 힘으로 왈츠를 당대 최고의 인기 장르로 만들었던 그는 또한 왈츠에서 가장 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 박물관은 슈트라우스 2세가 마지막에 생활했던 거처인데, 지금도 건물에는 다른 세입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평범한 아파트 같은 모습에 당황했다. 대체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이 건물 안의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라서, 승강기 앞에서 벨을 누르면 안에서 열어주는 방식이었다. 내가 요한 슈트라우스와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집의 열쇠도 없는데… 라고 고민하면서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가방에 신문까지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코트를 벗어든 채였다.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나에게 인사를 먼저 하기에, 나는 마치 주민을 찾듯이 “요한 슈트라우스가 몇 층이에요?”라고 물었다. 남자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 사는 사람을 일러주듯이 “그는 2층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와 함께 승강기를 타고 2층에 내렸다. 그리고 문을 밀었다.
--- p.224
아르누보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슈타인호프 교회는 물론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미학적인 면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위해서 바그너가 추구한 기능적인 면도 보아야 한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동작이 우둔했음을 생각하자. 실내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거의 없이 둥글게 마감돼 있다. 좌석은 당시의 의료규칙을 따라서 결핵환자용 좌석이 분리돼 있다. 또 환자를 신속하게 대피시켜야 할 경우에 대비해서 양측 벽에 비상구가 있다. 건물 설립 당시의 낡은 개념으로는 정신병동에서 남녀를 구분하여 수용하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교회에서도 남녀 자리는 구별되어 있으며 출입구 또한 다르다. 또한 자주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도 있다.
교회에 들어가면 거대한 공간의 힘이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넓고 쾌적하고 밝으며, 공간의 신선함이 두드러진다. 역시 건축의 힘은 끝이 없다.
--- 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