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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서신

미아리 서신

: 미아리 텍사스 이미선 약사가 전하는 38통의 아프고도 따뜻한 삶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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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390g | 190*133*30mm
ISBN13 9788997299089
ISBN10 8997299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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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나눔을 실천하는 '약사 이모'의 간절한 기도.
도서2팀 이민정(ladyinred@yes24.com)
2012-12-12
어릴 적 동무와 놀러 갔다가 길을 잃어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는 곱고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화장으로 한껏 꾸민 예쁜 여인들이 길가에 난 전면 유리창을 향해 앉아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색적인 골목 풍경에 이게 마네킹인가 진짜 사람인가 어린 마음에 한참을 갸우뚱거리며 걷다가 서두르는 친구를 따라 나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서야 그 골목이 속칭 ‘텍사스’라 불리는 미아리 성 매매 집장촌이란 걸 알았었다. 조금 커서는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육점에서 쓸 법한 붉은 등의 이미지로 기억되었던 이 거리는 남자들은 괜한 오해를 받을 까봐, 여자들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서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거리이다.

이미선 저자는 이 집장촌 한복판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들어서기 꺼리는 이 거리를 저자는 ‘어린 시절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던 골목은 이제 성매매업소들이 늘어선 어두컴컴한 골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제겐 햇살 가득한 고향입니다’라고 밝힌다. 또한 ‘지금은 삭막한 콘크리트와 내부순환로의 두꺼운 교각으로 덮여 한 줌의 햇볕조차 들지 않는 죽어버린 정릉천이지만, 고운 물빛과 개구쟁이 웃음소리로 환히 빛나던 시절이 있었음을 저는 기억합니다.’라고 회상한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 좋은 고향도 먹고 살기 위해 떠나는 판국에 이미선 약사는 굳이 이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삼십대 중반의 가장이 되어 아들아이와 함께 돌아간다. 1994년부터 16년간 약국을 운영하며 보고 듣고 겪은 그 골목 사람들의 아프고도 따듯한 삶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국민일보에도 연재되었던 칼럼을 기반으로, 연재 이후의 이야기까지 총 38통의 사연이 담겨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피임이 뭔지도 모르는 채 이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 스무 살 아가씨. 전직 권투 선수지만 힘겨운 현실에 술만 먹으면 싸움을 하곤 하는 아저씨. 이혼 후 젖먹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가 화재로 생을 마감한 여인의 이야기 등 38통의 사연은 참으로 눈물 겹다. 저자는 이들의 사연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는다. 이 골목에는 몸 파는 여인들만 사는 게 아니라 주방 일을 하시는 이모도 있고, 폐지를 주우면서 한글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할머니도, 십대의 밝음이 환한 아이들도 있다고 전하면서 별난 거리가 아닌 사람 사는 거리, 우리가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이웃이 사는 거리임을 일깨운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거칠고 험한 삶들이 모여있는 집장촌만의 별난 사연을 담고 있어서도 아니고, 가슴 아픈 아가씨들의 사연이 뭉클해서도 아니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사랑을 전하려는 전도가 대단해서도 아니다. 자기가 배운 걸 토대로 고향에 돌아가 실천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미연 약사의 아름다운 모습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서이다.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탄식이나 단순히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말뿐인 공약을 내세우거나, 거창하게 봉사를 하니,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그런 생색내기가 아닌, 그 거리에서 함께 살고 아무도 듣지 않는 그들의 사연을 듣고, 따듯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참 지식인의 모습을 보아서이다. 푸근하고 넉넉한 미소의 약사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길.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채 스무 살도 안 된 이 꽃봉오리들을 어이 할까
한 아이가 머뭇거리면서 들어와 피임약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 이 약을 오늘 먹으면 오늘 피임이 되는 거예요?” 라고 묻는 아이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화장조차 깨끗이 지우지 못한 아이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고단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 친구 핸드폰이 부러워 엄마를 졸라 샀는데, 덜커덕 수십만 원의 요금이 나오자 엄마한테 혼나고 핸드폰 뺏길 생각에 겁도 나고 무서워서 집을 나와 버린 아이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친구 집에서 며칠 지내다가 엄마 화가 가라앉으면 들어가야지 했는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아이 나이가 겨우 스무 살이었습니다. ---p. 23~25

연보랏빛 들꽃을 닮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벼룩시장을 뒤적이던 그녀는 월수입 몇백 보장이라는 문구를 보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성매매 집창촌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너무 무서웠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노라고 했습니다.
“근데 있잖아요, 약사 이모. 내가 여기서 일을 하다 보니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엄마가 왜 그리 보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막 아이 낳고 그럴 때는 엄마가 참 미웠거든. 이렇게 이쁜 내 아이를 어떻게 버리고 살 수 있었을까 하고……. 근데 나도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아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울 엄마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자신의 탯줄을 끊고 나온 자식을 거두지 못하고 가야 하는 그 심정은…….”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그녀가 가장 험하고 거친 이곳에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변하였던 것입니다. 놓아버림으로, 낮아짐으로 그녀는 더욱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p. 50~51

스물다섯 현아 씨
한 번에 변비약을 열 알 이상씩 먹고, 두통약도 보통 네 알, 수면제도 매일 먹는데 다섯 알 이상씩 먹어야 잠들 수 있다고 합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싫다고 말하는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입니다.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영등포역 성매매 집창촌에서 일하다가 이리로 오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영등포 집창촌에서는 단속이 심해서 일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고 하면서…….
현아 씨는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이 모두 굳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뭉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온몸의 세포가 다 돌처럼 굳어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의 팔을 만지고 등을 만지면서 긴장한 그녀의 몸들을 조금씩 풀어주었습니다. 그녀가 속으로 흘려온 눈물이 제 혈관 속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 없음에 많이 미안했습니다. ---p. 88~89

우거지 할머니의 한글 공부
할머님은 당신 삶 속에 가장 큰 회한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글만 쓸 수 있었어도 아이들에게 편지도 보내고 쌀이라도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이 얼마나 구박을 받고 서러움 속에 살았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 번열증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쓰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님과 함께 한글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 몇 개월에 걸친 공부 끝에 할머님이 처음 쓰신 글자는 ‘하나님 고맙습니다’ 였습니다. 할머님이 가장 쓰시고 싶어하던 글자였습니다. ---p. 110~112쪽

반짝이 이모, 미안해요
“나도 교회라는 데를 가보고 싶어요. 하나님 만나고 싶어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 평안해지고, 교회 노래를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요. 근데 아무도 나에게 교회 가자고 한 사람이 없었어요. 머쓱하게 혼자 가기는 좀 그래서 여적 못 가고 있었어요. 약사 이모가 나 좀 교회로 데려가 줄래요? 그럼 정말 좋겠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이기심과 무심함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서도 반짝이 이모에게 하나님 말씀을 왜 나누지 못했을까요. 아직도 제 속에 선입견이 많이 남아 있었다는 고백을 부끄럽지만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늘 술 냄새를 풍기며 평범하지 않은 옷차림과 화장을 하고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반짝이 이모를 모시고 교회를 가는 일이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자신의 발로 교회를 가겠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p. 131~132

아버지……
아버지는 팔십 평생 목수로 살아오셨습니다. 대학 시절 학내 시위와 관련하여 구속된 저를 면회 오신 아버지의 흰 머리칼은 지금도 기억 속에 또렷합니다. 똑똑하다고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녔던 당신의 큰딸이 철창 안에 갇혀 파란 수의를 입은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제가 수용된 지 석 달 만에 면회 오셨습니다. 희뿌연 유리창 바깥으로 보이는 아버지는 한겨울인데 얇은 가을 잠바를 입고 계셨습니다. 석 달 사이에 아버지 머리칼은 당신의 시커멓게 타 버린 속만큼 그렇게 하얀 백발로 변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놀라고 너무 죄송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펑펑 흘렸습니다.
“배고프지? 네가 좋아하는 빵이랑 우유 몇 개 사서 넣었다. 방에 너만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여럿이 함께 있다면서? 나누어 먹으렴.”
“아버지 날씨가 추워요, 겨울 잠바 입고 다니세요. 감기 걸리시면 안 돼요.”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돌아온 저는 이틀을 꼬박 앓고 말았지요. 석 달 만에 백발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머리칼이 제 가슴에 박혀서 한동안 빠지질 않았습니다. ---p. 268~269

교회에서 만난 반가운 이웃
제 옆자리 건너에서 예배 드리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디서 봤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약국에 자주 오던, 성매매 집창촌에서 일하는 친구였습니다. (……) 순간 울컥하면서 왜 그리 눈물이 솟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이곳에서 겪고 있을 삶의 순
간들이 제 머릿속을 지나면서 가슴 한쪽이 무너져버렸던 것이지요. 특송이 끝나고 목사님의 설교시간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p. 3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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