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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관음의 탄생

여성관음의 탄생

: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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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80g | 140*220*30mm
ISBN13 9791190390019
ISBN10 119039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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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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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관음의 성을 물으면 대개는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한국사회에서 관음의 성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멈칫대다가 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아니에요? 그런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가끔씩 절을 방문해온 나도 관음을 여자로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런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사람일수록 “여자”라는 답은 하지 않는다. 관음 같은 보살은 성을 초월하므로 그런 질문은 부적절하다는 태도가 가장 흔하고, 경전에 근거해 남자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수월관음도] 를 예로 들며 양성적이거나 중성적인 보살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관음을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래 남성이었다가 중국에서 여성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성적 정체성이 분명한 다른 신이나 신격들과 달리 관음의 성은 이처럼 문제적이다. 모호하고 미끄러지며 경계를 가로지른다. 남성인가 하면 여성이고 중성적인가 하면 다젠더 multi -gender 적이다.
그런데 관음이 보여주는 이 특유의 성격에 ‘신의 성별’이라는 고질적 난제에 대한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이 관음의 여성화 과정을 탐구하며 젠더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다.
--- 「여는 글 ‘관음은 여자? 남자? 트랜스젠더?’」중에서

『삼국유사』에서 관음보살이 여성으로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문무왕대다.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 조와 광덕엄장 조에 등장하는 관음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설화 모두에 원효가 등장한다. 먼저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 조에 실린 내용을 보자.
그 뒤(의상대사가 낙산 해변의 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창건한 후)에 원효법사가 와서 예를 올리려고 했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렀는 데, 논 가운데서 흰옷을 입은 여자가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희롱삼아 그벼를 달라고 하자, 여자도 희롱조로 벼가 영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법사가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자 한 여인이 월경수건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자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법사는 그 물을 엎질러버 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때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靑鳥)한 마리가 말했다.
“불성을 깨닫지 못한 중!”
그리고는 홀연히 숨어서 보이지 않았고, 다만 그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러 보니 관음보살상의 자리 밑에 또 아까 보았던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야 원효법사는 전에 만났던 성녀 聖女가 관음의 진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 觀音松이라고 했다. 법사가 신성한 굴로 들어가 다시 관음의 진신을 보려고 했지만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 못하고 떠났다.
간단히 말하자면 원효가 여성으로 나타난 관음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의상이 친견했던 관음진신을 보기는 커녕 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관음보살의 놀라운 영험을 말해주는 전형적인 관음설화와는 다른 종류다.
그런 점에서 이 설화는 매우 독특할 뿐 아니라 내용 역시 불교적 관점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한국 불교사의 최고봉으로 존숭되는 원효를 조롱 내지 비판하는 내용부터가 그렇다.
위 설화의 이해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신신앙의 코드로 서사가 직조돼 있기 때문이다. 이 설화의 출처는 고본 古本이라고 돼 있는데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정통 불교전적이 아닐 것이다.
--- 「제2부 4장. 여성관음의 등장과 원효 중에서」중에서

사라수왕처럼 본존불 역시 원효와 관련돼 있을까?
이 새로운 질문을 갖고 다시 석굴암을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여러 연관성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본존불이 무덤 형태의 석굴에 좌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했듯 석굴암은 횡혈식 석실분 형태의 감실에 봉토를 쌓아 무덤처럼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무덤 속에서 성도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효가 무덤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송고승전』 의상전에 전한다.(---)
석굴암이 원효의 오도처인 무덤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추정은 ??송고승전??에 실린 원효의 게송과도 공명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에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감(龕)과 분(墳)이 둘이 아니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며, 모든 현상은 의식의 전변이라.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달리 구하겠는가?"

“감과 분이 둘이 아니”라는 위 구절은 신성한 감실이면서 무덤이기도 한 석굴암과 그대로 통한다. 감은 원효가 머물렀던 토감, 즉 토굴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감(佛龕), 즉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공간도 의미할 것이다. 감분불이(龕墳不二)는 곧 원효가 주창했던 진속불이(眞俗不二)와 통하기 때문이다. 원효는 게송을 통해 부처를 모신 감실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노래했고, 석굴암을 만든 사람들은 그것을 구상화한 것같다.
--- 「제3부 7장. 본존불과 원효: 본존불은 원효불」중에서

원효와 김춘추는 신라사회에 유교적 부계혈통을 새롭게 세우는 데 서로 합의했던 것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효에게 관리를 보내 요석궁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부계혈통은 남성계보를 중심으로 하는 승가와도 어긋나지 않는다. 역시 남성중심적인 불교의 질서를 세우려 했던 원효와 태종무열왕은 젠더권력 관계의 변화라는 과업에서 이해를 공유했던 것같다. 당시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을 여신신앙과 여성권력에 대해 둘은 동맹관계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적 부계혈통은 당시 신라사회에 익숙한 문화가 아니었다.
왕실부터가 그랬다. 알다시피 바로 전의 두 왕이 여성이었다. 원칙적으로 여왕은 부계혈통중심 사상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모순적 존재다. 때문에 원효-김춘추 동맹이 추구한 부계혈통의 확립은 신라사회에 새로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자루 없는 도끼” 노래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이유다. 그 노래는 원효 개인의 기이한 행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 「제3부 10장. 혜공왕 설화 다시 읽기;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 동맹」중에서

원효와 요석공주의 결합에는 신라 여신전통을 모르면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숨겨져 있다. 요석공주는 왕실여사제 전통에 속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왕실여사제였다면 그녀를 아내로 맞는 일은 불교와 여신신앙의 융섭을 의미한다. 물론 평등한 융섭이 아니라 여신신앙이 불교에 복속되는 방식이다. 요석공주와 원효의 만남이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적 공모라는 맥락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요석공주가 여사제였다면 원효로서는 그녀만큼 효과적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까지도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했던 토착신앙을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포섭하고 순치시킬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효가 무애박을 들고 다니며 대중포교에 나선 것이 “설총을 낳은 후”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의미가 크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결합은 오래된 여신이 새롭게 등장한 남신으로 대체되는 과도기에 여신이 남신의 아내로 포섭되곤 했던 여신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홀로 숭배됐던 중국의 창조여신 여와가 복희의 아내로 격하되고, 가나안의 여신 아세라가 야훼의 아내로 짝지워졌던 경우같은 것들이다.
--- 「제2부 6장. 원효의 파계행 다시 보기」중에서

서구에서 등장한 여신관음이 현대여성들, 더 넓게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우처가 여신관음에 대해 밝힌 아래의 견해부터 보자.
여성으로 태어난 우리는 여성 몸을 한 영적 안내자를 보고 싶어 한다. 불교는 깨달음이 젠더를 초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물론 누구든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들은 일상생활과 영적 공동체에서 작동하는 젠더 차이와 불평등을 겪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들이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걸 너무나 보고 싶다. 만약 내가 부처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내가 여성의 몸으로 매일 경험하는 의식과 반응들을 같이 나누는 부처의 모델을 갖는 것이 나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더 좋을 것인가.
내가 남자라 하더라도 여성부처를 보면 안도할 것이다. 보다 통합적인 불교의 길을 보게 돼서 감사할 것이다.
바우처가 말한대로 불교에서는 깨달음 혹은 불성이 젠더와 무관하다고 가르친다. 성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실체 없이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에서 성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에 나오듯 성별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색즉시공만 있는 게 아니라 공즉시색도 있다. 없음(공)과 있음(연기)이 공존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젠더가 인정되지 않았다면 불교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가르침과 달리 불보살의 몸은 남성으로 표상된다. 정토 역시 남성들의 땅이다.
--- 「제4부 4장. 여성부처가 필요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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