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의 지방자치가 아직도 제대로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첫째. 지방에 자치권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단순히 중앙의 결정과 지시를 이행하는 대리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지방에 돈이 없다는 점이다. 지방공무원의 급여마저도 중앙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방에는 내세울만한 산업이 없다. 쉽게 말해 돈벌이가 없는 것이다. 셋째. 지방분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지방에서 스스로 자치를 시행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중앙의 입법이나 정책의 결정에 대항할 수 있는 기구가 거의 없다.
지방자치제도가 지금보다 강화된다면 국회의원은 지역의 민원에 매달리지 않고, 국가적 과제의 해결에 매진하거나 중앙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데에 더욱 많은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또 독일처럼 지방정부(주정부)의 대표자로 연방상원을 구성하게 되면, 입법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중앙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것들을 실행하여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꽃피우고 있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정치권을 중심으로 학계, 시민단체 등 사회 전반에서 ‘독일모델’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에 대한 의원연구모임이 한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독일연수가 줄을 이었다. 이러한 열풍이 일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던 미국식 모델이 그 한계에 봉착한 까닭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정치시스템의 필요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고 있으며, 다당제 정당제도나 의회중심제 권력구조 또는 연립정부의 구성 등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변경하거나 지방분권의 강화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적합한 모델이 바로 독일이다.
지방분권의 핵심과제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광역단위 지방정부에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보장하여 지방의 자치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중앙집권에 의한 국가발전은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또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산하기 위해 현행보다 더 기초단위에서 직접 선거를 통해 자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방분권이 강화될 경우에는 일반 시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기초자치단체장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으며, 광역자치단체가 자치권을 갖게 되어 명실상부한 권력분산이 가능해지고, 사법농단 및 검찰이나 경찰의 권한독점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등의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인적, 물적 자원의 수도권 집중과 그에 따른 지방의 지속적 쇠퇴현상은 우리의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가 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의 지방자치와 비교하여 우리 지방자치의 가장 커다란 약점은 바로 광역단위의 자치권 부족과 기초단위의 선거 부재이다. 우리가 실제로 지방분권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이 두 가지 문제는 더 이상 미루거나 방치해서는 곤란한, 서둘러 바꿔야할 과제이다.
첫번째 과제는 광역 시·도가 스스로 자체 입법, 행정, 사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지방에 자율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광역단위에 일부 주권을 허용하여 ‘국가성’까지도 인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현행과 같은 무늬만의 지방정부가 아니라 실질적인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처럼 지방내각과 지방장관 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과제는 기초단위에서 선거 없이 단순히 임명하고 있는 읍/면장을 주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다. 또 읍/면의회를 부활하여 주민의 손으로 뽑게 하고, 이들에 의한 자치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최근의 세계적 추세와도 일맥상통한다.
지방분권의 장점
먼저 지방의 자치권이 확대되면, 일반 시민의 주변 생활조건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기존 기초자치단체장의 독단적 전횡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광역정부(자치단체)가 자체 헌법을 제정하고 입법/행정/사법권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면 중앙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폐단이 줄어들고 명실상부한 권력분산이 가능해진다. 넷째는 재판거래와 같은 사법농단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대법원이 5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법관의 숫자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검찰의 서열화와 권한독점 등에 따른 부작용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광역자치단체(지방정부)별로 검찰과 경찰조직을 설치하여 검찰권과 경찰권을 분산함으로써 단일조직에서 발생하는 외압과 비리 등의 문제점을 방지하고 상호 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제의 특징
독일 연방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는 ‘협력적 연방주의Kooperativer Foderalismus’로 연방이 법을 제정하면 지방인 란트는 그것을 집행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교육/경제 분야 등에서는 단일한 기준을 통해 서로 정책을 연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민족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없는 단일화된 연방체제이다. 동시에 16개 주가 주어진 조건에 따라 동일한 권한을 갖는 수평적 분권체계이며, 서로 극심하게 경쟁을 하기보다는 서로 돕는 협력체이다. 그래서 독일 연방제를 ‘준 연방주의’라고도 한다.
둘째는 ‘행정연방주의Exekutivfoderalismus’로 지방정부 대표(주총리 및 주장관 일부)가 파견되는 분데스랏Bundesrat(연방상원)을 통해 연방과 소통하고 협력한다. 또 독일 연방제는 ‘정당연방주의’라고 할 정도로 지역 중심의 정당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와 동시에 부유한 주에서 가난한 주로 이전하는 재정지원을 통해 국가통합을 지향하는 연방국가적 재정질서를 가지고 있다. 유럽통합과 관련해서도 지역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구심점에는 연방상원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분데스랏은 독일 연방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독일 연방제 구조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근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존재한다. 공동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 기여하는 사회국가, 조직적이고 기능적으로 권력을 분산하는 법치국가, 수직적으로 권력을 나누는 권력분립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