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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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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208g | 104*182*15mm
ISBN13 9788972751458
ISBN10 897275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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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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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를 졸업하고 1년 후, 대학원에 지원했다. 교수들은 학부 시절 반항을 일삼던 내가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별 이견 없이 합격시켜주었다. 적을 두기로 결심하고 나서도 차마 등록금을 현금으로 낼 수는 없어서 여기저기 자리를 얻어 근로장학생이 되었다. (……) 그러느라 선배들과의 세미나에 낄 수 없었고 소설을 쓸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구내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대학원생들을 보면 위화감이 들었다. 선배들은 근로장학생은 학교의 히스패닉이라며, 그들이 없으면 대학원 사회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위로와 놀림을 번갈아 입에 올렸다. 나는 살면서 가난이라는 것을 체감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순전히 대학원생이 되었다는 까닭만으로 가난해져야 했다.
--- pp. 14-15

이모처럼 독문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내내, 내가 만약 장편소설을 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클라우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입양된 한국계 독일인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동독, DDR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내고
통일 후 대학에 임용되었으며 한국인 유학생 출신인 이모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실종되었다. 그 인생 자체가 나에게는 드라마투르기로 느껴졌고, 또래들 중 이런 인생을 간접 경험한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pp. 34-35

내가 만약 등단한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최 교수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을까? 최 교수 자신이 한때 희곡을 습작하던 문청이 아니었다면 내게 관심이라도 가졌을까? 최 교수는 나를 연구자 제자로 인정한 게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저버린 문청의 환영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 p. 59

나도 아내와 독일 유학 중 만났단다. 내 아내는 유학생이 아니었고, 노동자였지. 내가 가장 비참하던 시절에 만났다. 나는 오랫동안 내 아내가 노동자였다는 사실에 나의 진정성을 투사하려 애썼단다. 그러니까 가장 비참한 시절에 만난 가난한 여성 노동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에. 그러나 살다 보니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단다. 아직 헤어지지 않은 우리 부부는 그래. 그렇지만 경희는 그 사람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금까지 영원히 사랑하고 있단다.
--- p. 63

도서관에 앉아 있다 불쑥불쑥 지난 논문심사 현장이 생각났다. 장 교수의 말이 떠오르면 펜을 부러질 듯 쥐었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 마치 키를 쓰고 있는 오줌싸개로 보였으리라는 사실을 덤덤히 인정해야 했다.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창작을 경멸하거나 창작을 궁정풍 사랑하듯 숭배하는 것일까, 란 새삼스러운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최 교수와 이모에게 창작이란 뭐였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 p. 71

내가 클라우스와 이모의 이야기를 비로소 완전히 그만두게 되었던 것은, 소설집 발간을 목전에 두었을 때였다. 오랫동안 써보고자 했던 클라우스의 이야기는 김도 쐬지 않은 단편소설들을 엮으면서 앞으로도 영영 그들의 이야기를 감히 소설로 쓸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러 버전의 클라우스 이야기를 외장하드에 저장해두었다. ‘세상이 모르는 소설들’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그런 행동이 겸연쩍어 나는 외장하드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고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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