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는 서쪽의 카스피해와 이란, 남쪽의 인도와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중국 그리고 북으로는 유목 세력과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충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이점으로 인하여 이 지역은 고래로 동서의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핵심지역으로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으며, 교역 활동의 부수적인 현상으로서 동서의 문화가 교차하는 중추적 존재로서 세계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중앙아시아는 9세기 중엽 이후 몽골고원에서 이주해 온 위구르인의 정착을 계기로 투르크화가 진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 지역을 ‘투르키스탄’ 또는 ‘투르케스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투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투르키스탄은 다시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과 서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동쪽의 동투르키스탄은 현재의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며, 서쪽의 서투르키스탄은 카자흐스탄의 남부,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북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서투르키스탄의 경우 실크로드 국제교역의 센터에 해당하는 소그디아나와 박트리아를 중 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시대부터 알렉산더 제국을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 문화의 토대 위에 소위 고대 페르시아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곳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교는 쿠샨왕조 시대에 이 지역에서 이미 기층문화로 자리 잡은 조로아스터교와 헬레니즘 문화의 세례를 받은 후 커다란 문화변용을 거쳐 파미르 이동 지역으로 동점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동아시아의 불교문화를 고찰함에 있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 곳이다.
한편 동투르키스탄 지역은 고래로 ‘서역’이라 불려왔다. 서역이란 명칭은 한 무제의 적극적인 진출 결과 『한서』 「서역전」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으며, 「서역전」에는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으로 둘러싸인 타림분지 주변의 여러 오아시스의 지리적 개념과 각 오아시스 국가의 명칭, 영토의 구역, 인구, 관직,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 등 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는 타림분지 내부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천산산맥 남록을 따라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이은 서역북도와 곤륜산맥 북쪽의 서역남도로 나누어진다. 이 지역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을 이용하여 농경생활을 영위하다가,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형성에 따라 대상무역에 의한 중계교역의 활성화로 인하여 상업도시로서 변모하는 한편 동서의 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지역문화로 발전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끼치는 문화의 중 심지로서도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서역은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찍부터 동서의 문화가 만나 상호 습합과 변용을 통한 문화의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불교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이슬람화하는 14세기 후반까지 번영과 쇠퇴를 반복하였다. 이 지역의 불교미술은 중앙아시아에 전래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흡수하여 토착문화로서 뿌리를 내리는 한편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새로운 종교문화로서 인접 지역 및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서역 지방의 동측에 위치한 투르판(고창)은 불교가 번영했던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로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동서교통의 입구에 해당하는 요지이며, 천 산 북쪽의 모든 유목세력이 타림분지로 남하할 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군사적 요충이었다. 투르판은 일찍부터 고창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구가하였으며, 당의 지배가 서역에까지 미쳤을 때는 당의 직할시인 서주, 그리고 위구르 왕국 시대에는 고창고성을 왕성으로 삼아 수도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이와 같이 투르판은 사통팔달한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가 교류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문화적 발전은 투르판 지역에 거주하던 다양한 민족들이 각자 신앙하고 있던 종교 시설을 조영하고 그 내부를 장엄할 수 있는 배경과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투르판은 천산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분지로서, 분지 중앙에 화염산이 자리하고 있어 사 막의 열기가 쉽게 분출되지 않기 때문에, 하절기와 동절기의 혹한과 혹서가 반복되는 열악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고 보다 효율적인 불사 운영을 위하여, 계곡의 암벽에 석굴을 개착하여 사원을 운영하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투르판에는 4세기경부터 석굴사원이 조영되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불교미술 역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 지역의 불교미술은 9세기 중엽 위구르인들이 몽골초원에서 남하하여 투르판 지역에 위구르 왕국을 건설하고, 그들이 신봉하고 있었던 마니교로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이를 국교화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와 같이 투르판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던 위구르 왕국은 중국의 당, 오대, 북송, 남송, 원 그리고 주변 이민족 국가인 거란(요), 서하, 토번, 금 등과 약 9세기 중반부터 몽골에 의해 멸망하는 13세기 중반까지 서역의 정치·군사·경제·문화의 중심으로서 주변 국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이 시기는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발전기와 정립기에 해당하는 중요한 기간이어서, 동서의 문화를 아우른 위구르 왕국의 불교미술이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불교문화 발전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현재 투르판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종교유적과 그 내부를 장식하고 있었던 벽화 등 제반 문화유산은 천여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에 의한 훼손과 이종교도들에 의한 파괴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 탐험대들에 의한 약탈로 인하여 원형을 복원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현지의 석굴사원에 잔존하는 벽화와 새로운 발굴조사 성과 그리고 각국의 탐험대들이 본국으로 가져간 유물들에 대한 보고서와 근자에 계속 간행되고 있는 연구 성 과물을 통해서 위구르 왕국 불교미술의 진면목과 문화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본서는 9세기 중엽부터 13세기 말기까지 투르판의 고창고성을 중심으로 불교문화를 발전시킨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에 관한 것으로서, 지역적으로는 투르판을 포함하여 북정지역, 쿠차지역, 언기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기존의 연구는 막북초원의 위구르를 ‘동위구르’라 하고, 9세기 이후 천산산맥 이남으로 이동하여 투르 판을 중심으로 한 위구르 왕국을 ‘서위구르’ 혹은 ‘천산 위구르’라 칭하였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천산 위구르 왕국’이라 칭하고자 한다. 이 지역에서 전래된 다양한 불화 가운데 동아시아 불 교회화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변상도(불교 경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의 도상을 재해석하여 그 도상학적 기원과 위구르 왕국 불화가 주변 문화권에 끼친 영향력과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서역은 실크로드(오아시스 루트)의 쇠퇴와 함께 그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졌으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제국주의 열강들의 중앙아시아 탐험으로 인하여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10세기 이후 서서히 이슬람화화여 서구의 탐험대가 활동을 개시하였을 무렵에는 현지의 관헌이나 주민 모두가 이슬람교도로서 과거의 찬란했던 불교문화재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열강의 탐험대들은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야욕의 일환으로 탐험활동을 후원하는 한편, 석굴사원의 벽화를 비롯하여 고대 언어로 기록된 수많은 문서류 등을 앞다투어 반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석굴사원에서 절취해온 벽화와 수집한 불화, 고문서 등이 학계에 소개되며 중앙아시아의 역사 및 고고 미술 연구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탐험대가 발행한 보고서에 실려 있는 불교자료의 경우, 전공분야를 달리하는 탐험가들이 작성하였기 때문에 작성자에 따라 지역의 명칭, 석굴의 편호, 편년 등이 각기 다른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미술에 관한 연구는 이들 탐험대들이 초래한 혁혁한 성과와 방대한 신출 자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초 자료의 부족과 혼재로 역사학이나 언어학 등 여타 인문학 분야는 물론 유라시아 미술사 연구의 전반적인 발전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투르판 지역의 석굴사원에서 반출된 대량의 불교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독일과 러시아의 해당 박물관이 근자에 이들 자료에 대한 본격적인 보존처리에 착수하여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학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이들 미공개자료를 직접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어,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역의 불교회화 연구는 현재까지의 몇몇 연구 사례들을 통해서 볼 때 중앙아시아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회화 전반에 걸쳐서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 불화는 현재까지도 도상 및 도상학적 기원이 불명확한 중국, 한국, 일본 불교회화의 성립과 발전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본서는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미술의 중요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불교문화 동점 과정의 횡적 연계성을 밝히고 나아가 실크로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