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를 되뇌곤 했다.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상의 후렴구 같은 것이었는데, 마침내 그것을 멈추게 되었을 때, 사병으로 남겠다는 소싯적 의지가 오롯이 되살아났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한다. 하지만 거의 모두 사병으로 남지 않고 장교가 되려고 한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젊은 시절에 호기롭게 가졌던 생각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뒤에도 떠나지 않았다.
--- p.12
오늘처럼 권력과 물질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에 지배와 복종에 맞서겠다는 자유인은 모순적 존재일 수 있다. 자유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세속 사회에서 패배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사에서 반지배주의자(아나키스트)는 자유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거의 숙명처럼 패배자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가령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이념 이전에 정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총을 들었지만, 그것은 폭정에 저항하기 위해서였지 권력을 장악하여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반지배주의자들이므로.
--- p.16
나는 나를 짓는 주체이면서 내가 짓는 객체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서 하나인 나, 인간이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외로운 존재인 것은 이 점에서 비롯된다. 자유롭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다. 어느 고즈넉한 황혼 녘에 초승달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가슴 저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근거 없는 슬픔에 겨워하거나, 아직 살아 있음에 가없이 기뻐하는 인간의 모습은 자유로우면서 외로운, 외로우면서 자유로운 존재의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를 짓는 자유, 자기 형성의 자유를 누리는 외로운 존재다.
--- p.24
우리는 국가 폭력에 맞서 “아니오!” “멈춰!”를 말하지 못했듯이, 지배 세력이 앞장선 경쟁지상주의, 물신숭배에 대해서도 “아니오!” “멈춰!”를 말하는 대신 열심히 뒤따랐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수가 자발적으로 이에 복종하며 문제의식 없이 살아갈 때, 소수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향해 간혹 냉소적 발언을 하는 것으로 물신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일상을 위무하고 있을 뿐이다. 물신 지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독재 권력의 물리력에 복종해야 했던 우리는 욕망을 매개로 한 물신 지배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 p.49
친절과 배려, 환대와 겸손은 손해 보는 일이 되었고, 스스로 나약한 자, 패배자, 낮은 자임을 인정하는 표시가 되었다. 양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나고 마주하는 곳곳이 기 싸움의 현장이다. “직장에서 당할 만큼 당하고 있는데 왜 또 내가 당해야 돼?” 이런 심리와 심리가 맞부딪친다. 길거리나 택시 승강장 등에서 일어나는 돌발적 폭력이나 보복 운전은 대부분 양보를 패배나 손해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 p.58
한국 사회는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들로 북적인다. 거의 모두 회의하는 자아로 살고 있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 희귀종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물적 조건의 결핍에 대한 불안보다 ‘회의하는 자아’로 살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나를 짓는 자유는 회의하는 자아만이 누릴 수 있다. 나의 사유세계를 반성적으로 들여다보고 좀 더 정확한 진리에 다가서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도록 나의 사유세계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 p.68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은 계급 모순, 분단 모순, 지역 모순, 젠더, 생태 문제 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다. 모순이 워낙 첨예한 탓도 있겠지만, 활동 양태나 주장들도 온유하지 못하고 거칠다. 각자가 자기만의 래디컬을 주장하게 되면 결국 모두 극단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겸손함이 필요하다. 의지로 회의하는 자아가 되어 나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자. 나도 수시로 설득된다는 조건 아래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설득해야 한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일거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묘책은 없다.
--- p.113
내가 이처럼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이 땅의 지배 세력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무시하면서도 계 속 지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묻고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강정과 밀양의 분통함, 세월 호와 가습기 참사의 참담함, 굴종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불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장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삶도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54
우리에게 자유의 반대는 억압이 아니라 불안이다. 지배 세력은 자유 진영, 자유세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몸의 자유를 비롯하여 인간의 기본권을 짓밟았는데, 이를 관철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공포’와 ‘불안’ 의식을 주입 했다. 자유를 지키는 게 안보이니, 자유의 반대는 억압이 아니라 불안이 된 것이다. 수구 언론이 대란 선동을 벌이는 목적은 사회 구성원들의 DNA가 된 안보·질서의식을 건드려 파업노동자들을 반대하고 비난하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 p.162
한 인간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물며 이 방인의 사연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든 인간 은 사회적 존재, 역사적 존재이므로 그가 속한 사회, 그가 속한 사회의 역사, 그가 살았던 땅의 지정학까지 알아야 그 사람을 겨우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박해받을 위험, 생명을 빼 앗길 위험 때문에 피난처를 구하는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 p.200
한시도 결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장발장들의 생존 조건은 늘 한계 상황에 직면하게 하고 준법과 위법의 경계에 머물게 한다. ‘생계형 범죄’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주 말하곤 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 의 뜻은 꾈 유(誘) 자를 써서 확장되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죄 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짓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 p.210
인정,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 그 출발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공감 능력이고 측은지심일 것이다. 아무리 제도를 촘촘히 만들어놓는다 해도 틈은 있기 마련이다. 여전히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들여다보고 성기기 짝이 없는 사회안전망의 틈을 메우는 아교 역할을 해내는 것이 인정이다. 그런 인정이 피해의식과 이해타산으로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각박해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메마른 인간관계는, 손해 볼 일만 없앤 게 아니라 가슴 따뜻하게 하는 삶도 함께 사라지게 했다.
--- p.222
불안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 때문에 각자가 나를 어떤 존재로 지을 것인가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결국 인간성을 훼손하는 불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적 분배를 통한 보편복지의 확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사회,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 모두가 소박하게 살지언정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만큼은 지켜주는 사회로 가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연대의 정신과 성숙한 정치다.
--- p.22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