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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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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472g | 130*195*30mm
ISBN13 9791190234078
ISBN10 1190234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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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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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걱정 하지 마. 진짜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니까. 곧 자기도 알게 될 거야.”
이렇게 주삿바늘이 뭉툭하면 정맥을 파고들면서 통증이 조금 더해진다. 그래서 힘을 주어 정맥에 꽂아야 한다. 그런데도 별문제 없이 주삿바늘이 정맥에 정확히 꽂혔고, 이건 분명히 좋은 징조였다. 오늘은 정말 운 좋은 날이 될 것이다.
--- p.14

우리는 열여덟 살 때 대학에서 만났다. 에밀리는 돈 때문에 걱정이 많았고 나는 매일 7달러짜리 담배를 사서 피웠다. 그녀는 내가 입은 스웨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며, 그래서 나랑 따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단추가 세 개 달린 갭의 회색 울 카디건. 에밀리는 나이 들고 우울해 보이는 악당이나 입을 법한 스웨터라고 말했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에밀리는 모디스트 마우스의 음악을 좋아했고, 나를 위해서 〈태양의 밤〉을 연주해 주었다.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도 두 편이나 읽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비는 변태 새끼 같았다. 더불어 에밀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밝고 자애롭고 때로는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정직해 보이지도 않는 초록색 눈동자. 그리고 그녀가 자란 동네의 공동묘지와 방치된 공장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에밀리의 목소리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 pp.28~29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지만, 이제 더는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 에밀리를 보고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녀와 침대에서 뒹굴고 싶다는 거였다. 난 쓰레기였다. 하지만 그건 운명의 문제이거나 운명의 효과였다. 에밀리를 얻을 자격이 있든 없든 그런 생각으로 인해 우리가 함께 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내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해도 에밀리의 잘못은 아니다. 이쯤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해 둬야겠다.
--- p. .32

이라크에 다녀온 교관들도 거짓말이 습관이었다. 거기서 어린아이도 죽였다고 했다. 미군에게 몰래 접근하려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수류탄을 던져야 했다나. 그런 상황이 되면 어린아이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죽여야 했다는 것이다. 교관 하나는 88M, 트럭 운전사였다. 그는 수류탄을 맞아 바닥에 쓰러진 어린아이를 트럭으로 밟고 지나가야 했단다. 그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 p.85

몇 달간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었다. 중대가 탄약을 가지고 훈련하다가 예광탄 탄환 때문에 순식간에 잔디에 불이 붙었다. 나는 사각형 고무 매트가 끝에 달린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불꽃을 미친 듯이 내리쳐서 겨우 불씨를 껐다. 가끔은 불씨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나무가 성냥처럼 타오르기도 했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 p.135

에밀리와 나는 재향 군인의 날이 지나고 그다음 화요일에 엘바의 치안판사 앞에서 혼인서약을 했다. …… 에밀리는 이름표에 마리오라고 적힌 청색 정비공 재킷을 입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 모습마저 천사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순간에 우리 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알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몇 분간은 정말로 그랬다. 세계 60억 인구 중 아무도 우리보다 행복하지 못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에밀리가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앉아서 비행기가 떠날 시간이 올 때까지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 p.137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서 조약돌 소녀에게 전투식량을 주었다. 아이는 가슴에 식량을 꼭 쥐고 달려갔다. 그런데 맨발의 사내아이에게 붙잡히더니 머리를 흠씬 두들겨 맞고 급기야 식량까지 빼앗겨 버렸다. 우리가 차를 몰고 떠날 때 조약돌 소녀는 흙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 p.165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하나씩 둘씩.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보조이고 허울만 좋은 허수아비였다. 도로를 오가고 바쁜 척을 하면서 돈만 펑펑 쓰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 p.235

“그래도 이쯤에서 멈춰야 해.”
“알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앞으로 그럴 수 있겠지. 조금만 더 버텨 보자. 그러고 나서 함께 끊는 거야.”
“그럴 마음도 없잖아.”
“아니야, 진심이야. 그보다 더 바라는 게 어디 있겠어. 진짜야. 어차피 평생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그건 분명해. 그러니까 뭔가 변화의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 그때까지 우리 둘이서 죽어라 버티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하는 거야. 제발 이리 와.”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새빨간 거짓말쟁이.”
“제기랄.”
“미안해. 하지만 사실이잖아.”
“너무 겁이 난다.”
“나도. 이 생활이 진저리가 나.”
우리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남은 약을 더 맞기로 했다.
--- p.320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잠만 들면 폭력의 현장이 펼쳐졌다. 이라크의 모습이었다. 예전에 본 영화를 꿈에서 볼 때도 있었다. 꿈에서 죽어 깨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 번 죽고 또다시 몇 번이고 죽는 통에 겨우 눈을 뜨고 나서도 온몸이 녹초가 되곤 했다. 그 외의 모든 것으로 인해 나는 무척이나 불행했다.
--- p.350

엄청난 양을 몸속에 찔러 넣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양 날개를 천천히 펼쳤다. 우리는 구원받았다. 천사가 느낄 법한 기분을 만끽했다.
--- p.374

나에게는 한 가지 이론이 있었다. 바로 내가 쓰레기만도 못한 개자식이고, 만약 나쁜 일이 벌어진다면 나쁜 짓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 p.380

오랫동안 겁에 질려 살다 보면 두려움이 어떻게 왔다가 사라지는지 알게 된다.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장악할지도. 두려움이 어떻게 누그러지는지까지. 두려움이 내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도. 그리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오기 전까지, 희망이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는지도 말이다. 다시 희망이 오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온다. 나는 인생에서 오직 한 가지 빼고는 두려울 게 없었다. 바로 헤로인이었다.
--- p.41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에밀리를 만난 건 2003년, 클리블랜드의 대학에 들어갔을 때다. 좀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그녀를 본 순간 단번에 이끌렸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할 운명으로 엮인다. 나는 마약에 취해 에밀리와 사랑을 나누며 현실에서 도피하다 의료 특기병으로 군대에 입대한다. 하지만 나와 에밀리 그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에밀리와 결혼하고 이라크에 파병되어 갔지만 의료 특기병으로서 준비되지 않았고, 하나씩 둘씩 죽어 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에밀리와 함께 헤로인에 중독된 채 서서히 삶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나날이 이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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