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톡톡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제서야 소리짱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 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았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 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 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 p.157, 「이두호, '폭력'」 중에서
그런데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딴 게 아니라, 사슴이 나무꾼에게 귀띔했던 알쏭달쏭한 조언이었다. 아이 셋을 낳기 전까지는 절대로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말, 사슴은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애가 둘이건 셋이건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집사 9년차, 나는 이제 그 사슴 녀석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애가 둘일 때와 셋일 때는 거동에 하늘과 땅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 대신 고양이를 키워 보고서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녹록지 않은 삶에서 생명을 셋 이상 거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손'의 부족이 큰 문제였다. 동물병원에 고양이들을 데려갈 때도, 이사를 할 때도, 간식을 입에 넣어 줄 때도, 셋이 궁디팡팡을 요구하며 한꺼번에 모여들 때도, 나는 팔이 두 개여서 슬픈 짐승임을 자각해야만 했다.
--- p.193, 「김영글, '정신을 차려 보니 고양이굴'」 중에서
그 고양이는 다음 날로 비슷한 시간에 찾아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틀 후엔 딱 봐도 형제일 것 같은 어린 고양이 둘을 데리고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맛있는 밥 먹을 수 있는 곳 안다며 앞장서 데려온 것인지, 겁먹은 형제 고양이들은 화단 뒤에 숨어 있고 밥 좀 몇 번 먹어본 대표가 앞으로 나와 나를 불렀다. 광경이 귀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세 배의 사료를 듬뿍 주고 들어와 또 탐정처럼 숨을 죽이고 창 너머로 몰래 지켜보았다. 인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사이좋게 셋이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용기 있는 대장이 앞장서고 두 소심한 형제가 뒤따르는 삼각 편대는 매일 놀러왔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주 무더운 8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뒷문을 열고 나가 줄어든 사료량을 살핀 후 화단을 둘러보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구더기가 가득 생겨 형체조차 자세히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영 고양이의 사체였고, 대장이라는 걸 직감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에 사로잡혔다. 동물들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 p.121, 「김화용, '방구석과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양이'」 중에서
전화할 때마다 엄마가 고양이를 산에 갖다 버리면 안 되냐고 물었다.
"고양이는 버렸니?"
"아니."
어느덧 카카오톡 대화 화면이 '고양이는?'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고양이가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고양이를 괴롭히는 일이자 고양이가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인 듯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동물은 밖에서 살아야지. 그게 순리다. 야생으로 살아야 할 동물을 길들이고 식성을 바꾸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야." 어느 날 그녀는 미국 어딘가에서 죽은 아이를 부검했더니 폐에 애완동물의 털이 가득 차 있었다는 해외 뉴스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내 폐에 털이 쌓이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톡에 도심 골목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져 총각무를 물고 가는 고양이 사진으로 답신했다. 모든 고양이가 시골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거의 모든 곳이 도시화되는 세계에서 이제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이 순리라고 써 보내고 싶었지만, 그런 설명은 쓰다가 지웠다. 그건 그녀에게 너무 복잡할 것 같았다.
--- p.43, 「차재민, '어쩌다 고양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