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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디의 아이들

: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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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8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88쪽 | 648g | 146*218*30mm
ISBN13 9788983716156
ISBN10 898371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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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텔의 맨 꼭대기 창문에서 안나와디와 인근의 다른 무단 점거촌을 내려다보면 우아한 현대식 시설들 틈바구니로 웬 마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압둘의 동생인 미르치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주변은 온통 장미 꽃밭이죠.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고.”--- p.12

고철은 못으로 두드릴 때 나는 소리로 성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플라스틱은 씹어서 등급을 나누되 그중 단단한 것은 쪼개서 냄새를 맡으라고 했다. 신선한 냄새가 나면 품질 좋은 폴리우레탄이라는 뜻이었다. 압둘은 그렇게 요령을 터득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해부터는 먹을 것 걱정이 없어졌다. 어느 해인가에는 집이 넓어졌다. 판자때기였던 칸막이를 알루미늄으로 교체했고, 불량품이라 버려진 벽돌로 담을 쌓았다.--- pp.19-20

최근 들어 안나와디에는 욕망이 넘쳐났다. 아무튼 압둘이 보기엔 그랬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카스트나 신이 정해준 대로 살겠다는 해묵은 태도는 혁명에 대한 세속의 믿음에 밀려나고 있었다. 쉽게 더 나은 삶 운운하는 안나와디 사람들을 보면 재운이라는 게 마치 일요일에 방문하는 사촌쯤 되는 듯했고,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것만 같았다.--- p.21

압둘이 보기에 안나와디에서 행운은 뭘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사고나 재앙을 얼마나 잘 피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나마 버젓이 살기 위해서는 기차에 치이지 않고, 빈민촌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아야 했다. 압둘은 더 똑똑하지 못한 걸 한탄하면서도 자신에게 이런 환경에 필요한 자질이 하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바로 차우카나, 즉 빈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눈은 사방팔방 다 볼 수 있거든요.” 압둘은 그 자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아직 도망칠 여유가 있을 때 재앙을 예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p.26

몇 주 전에 압둘은 이곳에서 한 소년이 플라스틱을 분쇄기에 넣다가 손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밥벌이 능력도 그렇게 잘려나갔건만, 소년은 공장 주인에게 빌기 시작했다. “사아브, 죄송합니다. 이걸 신고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때문에 곤란을 겪으실 일은 없을 겁니다.”--- p.50

아샤가 어렸을 땐 먹을 게 모자라면 보통 여자들이 굶었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위장의 문제처럼 말하지만, 아샤는 굶주림의 맛을 기억했다. 혀를 파고드는 그 고약한 맛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어쩌다 침을 삼킬 때면 문득 느껴지곤 했다.--- pp.65-66

영어의 중요성은 인도가 더 세계화된 능력 중심 사회로 변해가는 데 따른 부산물이었고, 만주는 그 변화를 대체로 환영했다. 콩그리브의 작품을 배우든, 학원에서 국제 콜센터 업무를 위한 트레이닝 코스인 체이스/맨해튼 비자카드 응대법을 배우든, 어떤 방법으로 영어를 배우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월한 교육을 받은, 세계화 시대의 인재라는 증명서인 영어는 빈민촌을 벗어날 가능성의 도약대였다. 만주의 영어는 아직 어눌하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안나와디에서는 두 번째였다.--- p.109

그녀를 죽인 건 감염이었다. 의사는 병원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기록을 고쳤다. 파티마가 입원할 당시 전신 35퍼센트였던 화상이 죽고 나자 95퍼센트, 어떻게 손써볼 여지가 없었던 치명적인 상태로 변했다. “녹색 빛이 도는 누르스름한 딱지가 화상 부위를 뒤덮고 있었고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사망 진단서에는 이렇게 적혔다. ‘뇌충혈, 폐충혈, 심부전.’--- p.185

제루니사는 집으로 돌아와 흐느껴 울었다. 옆집 여자의 몸을 마지막으로 닦아준 헝겊을 그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었다. 제루니사가 그토록 서럽게 운 이유는 남편과 아들, 딸의 기막힌 처지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커다란 부패의 거미줄 때문도, 더 비열한 자가 덜 비열한 자를 벌하는 혼돈의 소용돌이 같은 사법제도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제 손아귀에 있었던 것 때문에 울었다. 제 몸을 무기 삼아 이웃을 무참히 공격한 여자에게 이별선물로 준 아름다운 누비이불이 아까워서 울었다.--- pp.186-187

만주가 집에서 초콜릿 케이크 조각에 눈물을 쏟고 있을 거라는 아샤의 짐작은 옳았다. 몇 년 동안 아샤는 딸이 자신의 남자 관계를 모르길 바랐지만, 지금은 이런 걸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영악하게 키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상류층의 잠자리 윤리가 문란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샤의 행동은 욕정이나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랑받는 느낌, 아름다운 여자라는 자의식을 원해서도 아니었다. 핵심은 돈, 그리고 권력이었다.--- p.234

2009년은 가난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빈민촌에 도달했고, 세계적인 경제 불황 위로 테러의 공포가 덧씌워졌다. 많은 안나와디 사람들이 쥐 먹는 법을 다시 배웠다. 소누는 수닐에게 나우파다 빈민촌에서 개구리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오수 웅덩이보다는 나우파다에 사는 개구리가 더 맛이 좋았다. 호화 호텔을 향해 시비를 걸던 미치광이 넝마주이는 하얏트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비난을 중단했다. 그 대신 파란색 무광택 유리로 장식한 호텔에 이렇게 간청했다. “하얏트야, 나는 일은 너무 많은데 손에 쥐는 건 너무 적어. 어떻게 좀 해줘.”--- p.291

어느 나라에나 신화가 있는데 성공한 인도인들은 불안정과 적응능력이라는 낭만적인 신화에 자주 빠져들었다. 일상의 혼란과 예측불가능성이 인도의 급성장에 일조했다는 믿음이었다. 일례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수도꼭지를 돌리고 전기 스위치를 올렸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안전을 담보하기 힘든 인도에서는 이런 일상의 불확실함이 교묘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강국이 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논리였다. 일상의 불확실함이 가난한 사람들의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건 틀림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노력과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힘이 빠지게도 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걸 시도해요.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죠.” 안나와디의 어느 여자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p.325

뭄바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다른 곳에도 만연했다. 전 세계로 무대를 확대한 시장 자본주의 시대에도 희망과 불만은 협소한 지역 안에서 옹색하게 이해됐고, 공통된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일시적이고 알량한 이익 앞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하류 도시의 이런 투쟁은 전반적인 사회구조에 희미한 파장을 일으키다 잦아들었다. 투쟁은 부자 동네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어쩌다 소동을 일으킬 뿐, 그곳에 균열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정치인들은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무시했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불평등한 도시는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를 그럭저럭 이어갔다.--- p.349

수닐은 말했다.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게 잘살 수 있을지 궁리했지만,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다른 수를 써보기로 했어. 더 좋아질 방법을 고민할 것 없이 그냥 마음을 비워버리자고. 그러다보면 또 알아?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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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세계관이 달라지는 책들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저자의 뜨거운 영혼과 교감한다면 심층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에이드리언 니콜 르블랑(『랜덤 패밀리』)

의문의 여지없이, 지금까지 현대 인도를 다룬 책 중 단연 최고의 책. 내가 25년간 읽은 책 중 최고의 내러티브 논픽션이다.
―라마찬드라 구하(『간디 이후의 인도』)

저자가 사랑을 담은 날카로움으로 풀어낸, 인도의 가난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애환은 세계 곳곳에서 만났던 이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지구 마을을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책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통해 절망에 내몰린 이웃들의 슬픔을 동정이 아닌 공감으로 바라보며, 행복한 지구 마을을 만들어가는 데 마음을 모으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양호승(한국월드비전 회장)

대단히 많은 장점을 지닌 책이다. 훌륭한 연구 결과를 세련되게 정제한 결과, 독자들은 많은 걸 배우면서도 계몽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저자의 우아하고 생생한 문장은 주목을 끌고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안나와디 사람들의 진실된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넝마주이와 좀도둑, 참혹한 불의의 희생자들. 부는 우리를 그들의 삶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뛰어난 책이다.
트레이시 키더(『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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