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최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
--- p.12
그렇다고 해서 제발 이런 원색적이고 처절하며 잔인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우리 아이는 공무원이 될 거야!”
아, 나도 안다. 지금 이 시대에 행정직만큼 선망하는 게 없다는 것을.
--- p.36
자리 경쟁은 이렇게 합법화된다. 관료가 된다는 것은 세비에 손댄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안 하거나 해도 조금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의회는 신임자들의 적이 된다. 의회는 지출 경비를 감시하는 전문 조직을 만들고, ‘인건비 예산 삭감’ 같은 제목의 장을 만든다. 치사하게 수당을 흥정하는 것이다. 비밀 경비를 위해 돈을 구해야 하는 장관은 직원들의 예산을 삭감한다.
나폴레옹 시절은 황금기였다. 그처럼 행복했던 시대는 이제 꿈이 되었다.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일자리는 무자비하게 사라져 갔다. 공무원만 상대하는 법률 사무소가 생겨났고, 의원들에게 봉사하면서 쓰는 돈은 보이지 않는 돈이 되어버렸다.
--- p.40
오늘날 국가는 모든 다수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다수에게 복무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무원은 두 개의 부정 사이에서 산다. 동정도, 배려도, 가슴도 없는 세상, 친구마저 없는 세상! 사람은 다 이기적이기에 어제 한 일을 내일이면 잊어버린다. 결국 사람은 다 맹목적으로 변해간다.
--- p.50
철학자라면, 약간 의사라면, 약간 생리학자라면, 약간 작가라면, 약간 행동관찰가라면, 약간 골상학자라면, 약간 자선가라면, 우리 시대 편집증의 산증인인 공무원의 정신상태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제3장에서 ‘백치로 만들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이미 언급한 것처럼, 몇 년 동안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만 하면 그런 불운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깃털 포유류가 이 직업으로 인해 백치가 되는 건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약간 백치였기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하는 것인지, 뭐가 더 맞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 p.66~67
의회 건물을 짓는 건축가라면, 자기가 해체한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을 맡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자리는 한직은 아니고, 이런 자는 그야말로 위대한 자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건물이 세워지고,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 건축가들은 그들 자리가 있어야 할 필요성을 이로써 피력하는 셈이다.
--- p.88
따라서 가난한 임시직이야말로 유일한 임시직이다. ... 만일 갑자기 어떤 이상한 이유로 당신이 파리 도심에 아침 7시 반이나 8시에 나왔다가, 매서운 추위나 비 또는 악천후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짙은 담배 연기만큼이나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청년을 본다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 임시직이구나!’
--- p.110~111
그런데 1830년 다음과 같은 심오한 정치사상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 큰 국가적 운동이 있었다. 바로 이런 사상이다. “너 거기서 나와. 그래야 내가 들어가지!” 이게 바로 모든 자유주의자를 이끈 기치였다. 관료 사회도 적잖게 동요했다. 바닥부터 정상까지 다 뒤엎어지는 대이동이 있었다. 상관 얼굴이 자꾸 바뀌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환에게는 이런 혁명이 좀 께름칙한 거였다.
--- p.184
긴급한 요청이 있어 달려왔는데, 차장이 안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녁 오페라에 가면 한 친구가 오케스트라에서 코넷을 불고 있는 한 늙은 천사의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자네 일이 바로 저 자한테 달려 있다네.”
당신이 당신 아들이나 조카 아니면 어떤 대장이 남긴 고아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면, 당신이 일하는 건물 안뜰에서 한 공무원을 만나면 된다. 그자가 다 해결해줄 것이다. 재무부에 한 친구를 당신 상사에게 추천하면 당신 상사는 그 친구를 자기 부인의 건물에 추천할 것이다.
(중략)
많은 사람이 국가에 봉사하면서 부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자가 되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국가 탓이라며 시간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공무원들을 훔친다.
--- p.197~198
도덕 및 정치학 아카데미는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자에게 상을 줘야 할 것이다. “다음 중 최상의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적은 공무원으로 많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많은 공무원으로 적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 p.200
『공무원 생리학』의 태형은 첫 문장부터 시작된다. “공무원이란 무엇인가? 어느 직급에서 시작해서 어느 직급에서 끝나는가?” 이 문장이 겨냥하는 궁극의 과녁은 바로 프랑스 국왕이다. 공무원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맨 아래에 관공서 건물 수위가 있다면 맨 위에는 국왕이 있다는 것이다. 절대왕정 체제가 아닌 입헌군주 체제에서 군주는 건물 수위나 도로 인부, 산림 감시원처럼 국가 세비를 받는 공무원에 불과하고 이제 국왕도 일정한 법의 감시
망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명시하면서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세법과 형법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나름 이상적 사회인 공무원 사회가 태동한다.
--- 「저자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