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복음의 상황화에 관해 말하지만, 대개 그것은 복음을 비서구 문화에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가장 영향력 있는 (라틴 아메리카를 포함한) 서구 신학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현대성과 통합했는지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다룬다. 즉 어떤 이들은 현대성을 반대하고 거부했다. 하지만 현대성을 반대하고 거부한 이들조차 현대성의 영향을 받았다.…현대 신학은 단지 어제와 오늘의 신학이 아니다. 현대 신학은 현대성이라는 문화적 정신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신학이다. 이 책에서 기술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신학자들은 모두 적어도 명목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점 외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그들이 모두 계몽주의와 과학 혁명에서 유래한 문화적 맥락인 현대성과 씨름했다는 사실이다.
--- 「서문」 중에서
1802년의 어느 날,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천문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에게 그의 우주론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당시 라플라스는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자연 법칙에 근거해 우주에 관한 책을 써서 논란을 일으켰다. 황제는 라플라스에게 그가 우주, 그 우주의 기원과 운행에 관해 설명한 것에서 하나님의 위치를 물었다. 당시의 보고에 따르면 이 천문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저에게는 그런 가설이 필요 없습니다.”
--- 「1장 현대성이 전통적 신학에 도전하다」 중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 안에서 “현대 사상의 주장들을 최대한 인정하는 것”으로 가장 잘 정의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유럽에서 개신교 안에 있는 신학의 한 운동이자 유형으로 시작되었지만, 후에는 가톨릭 신학의 일부 분야로 확대되었으며 거기서는 전통적으로 현대주의라 불렸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 신학은 전통적 교리의 단순한 개정이 아니라 현대성에 비추어 기독교 교리를 개정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리적 비판과 구성을 위한 원천과 규범으로 “현대 사상의 최고의 것”을 이용한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점이었다.
--- 「2장 자유주의 신학들이 현대성에 비추어 기독교를 재구성하다
그렇다면 왜 하지를 현대 신학에 관한 이 책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많은 사람이 “현대”와 “자유주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실제로 초기의 근본주의자들은 반대자들인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현대주의자들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이런 현상에 일조했다. 하지만 “현대”가 반드시 “자유주의”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뒤에서 보겠지만, 하지는 보수적 개신교 신학에 대한 자신의 해설과 방어에 분명히 현대적 방법들을 사용했다. 게다가?키르케고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현대성에 반대하는 것 때문에 현대 신학자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도 있다. 아마도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스스로를 현대적이라 여기지 않았겠지만, 특히 하지는 정확히 현대적 공간에, 현대주의자는 아닐지라도 현대적 태도로 서 있다. 그렇다고 그가 현대성의 모든 것을 수용했다는 말은 아니다.…그는 현대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면에서 현대적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그는 근본주의자였지만, 그 근본주의는 어떤 대표적 복음주의 학자가 “광신적 집단이 된 정통주의”라 부른 것으로 추락하기 전의 근본주의였다.
--- 「3장 보수적 개신교 신학이 정통주의를 현대적 방식으로 방어하다」 중에서
도르너와 부시넬 두 사람 사이에는 전혀 유사점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그들은 중재 신학의 상이한 유형들을 대표할 수 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은) 슐라이어마허로부터 받은 영향, 기독교 신앙과 사상의 주관적 극과 객관적 극 사이에서 감지되는 간격을 메우려는 시도들, 자유주의 개신교와 개신교 정통주의의 측면들을 결합시키려는 열망, 그리고 현대 문화와 교회 생활을 가능한 한 많이 화해시키려는 목표다. 또한 둘 다 기독교 교리들을 재구성하면서, 현대성을 고려했지만 그것을 신학의 내용을 위한 원천과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 「4장 중재 신학들이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다리를 놓다」 중에서
하지만 케리그마 신학자들은 현대성과 싸우느라 시간과 힘을 소모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것은 근본주의의 실수였다. 근본주의는 근본주의적 형태의 기독교를 현대성과 대조해 정의함으로써 현대성의 노예가 되었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는 둘 다 현대성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서로 닮지 않은 쌍둥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를 현대인들에게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대성에 적응시키거나, 기독교를 분리주의적 방식으로 구별되도록 만듦으로써 현대성에 호전적으로 맞선 것이다.
--- 「5장 신정통주의/변증법/케리그마 신학이 현대의 맥락에서 종교개혁을 되살리다」 중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관해 글을 쓰는 대다수 학자들은 차이점들을 인정하면서도 틸리히와 과정 신학을 슐라이어마허, 리츨, 하르낙, 라우센부시, 트뢸치와 함께 자유주의 범주에 뭉뚱그려 넣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부는 이 둘이 악에 관해 다른 견해를 갖는 것에 근거해 완전히 다른 범주에 넣는다. 그런 경우에 자유주의로 분류되는 신학자들은 매우 적게 될 것이다. 나는 구자유주의 신학과 신자유주의 신학의 중요한 차이점들을 인정하면서도 그 둘 사이의 커다란 연속성을 본다. 하지만 틸리히가 니버와 공유하는 실존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비극적 감각에 근거하여 스스로 자유주의 신학과 거리를 두었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모두 틸리히에게 케리그마에 대한 강조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그와 거리를 두었다. 대개 과정 신학자들은 “자유주의적”이라는 명칭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를 사회적 도덕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던 구자유주의 신학과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둔다. 그들은 구자유주의자들과 신정통주의자들이 모두 경멸했던 형이상학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관심을 가진다.
--- 「6장 완화된 자유주의 신학들이 현대성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수정하다」 중에서
본회퍼를 1960년대의 급진·세속 신학자들과 같은 장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를 그들과 똑같이 취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타이저와 해밀턴과는 달리 그는 기독교적 무신론자가 아니었고, 콕스와 같은 방식으로 세속적 기독교의 옹호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들에서 사색한 것들은, 그들이 그가 실제로 했거나 하려 했던 것보다 특정한 방향들로 훨씬 더 멀리 나아갔음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멀리 그들과 함께 가려고 했을지는 알 수 없다.
--- 「7장 디트리히 본회퍼와 급진 신학자들이 종교 없는 기독교를 구상하다」 중에서
몰트만과 판넨베르크는 부퍼탈에서 짧은 기간 동안 동료로서 함께한 뒤 각자의 길을 갔지만 각각 신학 여정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종말론을 계속 탐구했고, 이로써 증가하는 세속화와 재앙의 후기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하는 방안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멀리 있는 것처럼, 심지어 부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희망과 종말론의 신학자들은 본회퍼와 급진·세속 신학자들이 그토록 설득력 있게 거부한 틈새의 신으로 회귀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전통적 기독교 신학이 묘사한 대로 역사를 섭리로 통치하는 존재로 볼 수도 없었다. 둘 다 하나님의 초월의 의미를 회복시키기 원했지만, 그렇게 하려는 현대의 신학적 시도들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느꼈다. 틸리히와 이후에 존 로빈슨이 강조한 대로, 당시까지의 하나님 개념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몰트만과 판넨베르크는,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초월을 기술하기 위해 “우리보다 앞서 있는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앞으로 오는 주로서의 하나님”에 의존했다. 하나님이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는, 미래가 현재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아마도 그들의 공통적 관점의 가장 놀라운 측면은 종말론적 존재론이다. 즉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사상으로, 그들이 블로흐로부터 빌려왔으며 또한 성경적이라고 믿은 사상이었다. 이 사상의 장점은 하나님이 역사의 모든 죄와 악과 무고한 고난의 창시자가 아니며, 또한 과정 신학에서처럼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부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미래로부터 침입할 그리고 이미 침입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아직 아님” 때문이다.
--- 「8장 신학자들이 희망으로 미래를 보다」 중에서
해방 신학이 일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전통적 신학 방법들에 기초해 있는 기대들을 가지고 이 신학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해방 신학은 다르다. 해방 신학의 여러 유형은 정통이나 자유주의 신학의 익숙한 길을 따르지 않는다. 해방 신학은 신학을 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해방 신학자들은 모두 이전의 신학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콘은 바르트로부터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구티에레스는 유럽의 정치 신학들, 특히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 1928-2019)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류터는 틸리히와 과정 신학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해방 신학은 대안적 목적과 의도를 갖고 시작하고, 비전통적 출처와 기준을 사용해 나아간다. 해방 신학의 세 형태는 모두 많은 것을 공유하는데, 특히 신학을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 「9장 해방 신학들이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다」 중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현대주의”나 (전통적) “통합주의”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가톨릭 신학이 발전했다. 그것은 ‘누벨 테올로지’(nouvelle theologie, “새로운 신학”)라 불려 왔는데, 처음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를 공식화한 주요 인물이 프랑스 가톨릭 신학자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1896-1991)이었기 때문이다.…‘누벨 테올로지’는 많은 진보적 가톨릭 신학자들을 아우르는 폭넓은 범주다. 이 신학은, 여러 세기 동안 로마가톨릭의 공인된 신학으로 여겨진 중세의 “천사 박사”(Angelic Doctor)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낳았다. 이 신학은 또한 최고의 현대적 학문과 가톨릭의 성경 연구 및 신학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하려 했다. 하지만 ‘누벨 테올로지’는, 심지어 옹호자들이 보기에도 현대성에 지나치게 적응했던 르와지와 티렐의 신학과 같은 의미로 현대주의적이지는 않았다.
--- 「10장 가톨릭 신학자들이 현대성에 관여하다」 중에서
현대 신학에 관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반세기를 훌쩍 넘은 이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과 관련된 모든 신학자가, 근본주의자들의 경향처럼 현대성을 통째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성의 더 극단적 주장들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복음주의자들은 자연주의, 실증주의(합리주의의 극단적 형태로서 계시와 신앙을 배제하는 것), 역사주의, 회의주의, 세속주의를 거부한다. 하지만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대부분이 고등 교육, 비평적 성경 연구(자연주의적 전제들은 빼고), 교양과 과학 과목들, 비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 및 협력(근본주의자들이 하지 않는 것), (자연주의를 배제한) 과학을 가치 있게 여긴다. 복음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를 포함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고, 신정통주의와 변증법 신학을 경계한다. 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개신교도들에게는 근본주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이는 반면,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자유주의자들과 별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들 스스로는 현대성에 대한 절대적 거부와 최대한의 적응이라는 극단들 사이의 중도에 자부심을 갖는다.
--- 「11장 복음주의 신학이 성인이 되어 현대성과 씨름하다」 중에서
두 가지의 폭넓은 부류의 기독교 신학자들이 포스트모던 철학과의 비판적 대화라는 과업에 철저히 참여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신학 방법과 기획을 형성했다. 그들은 탈자유주의자들(postliberals)과 해체주의자들(deconstructionists)이다. (다른 학문 분야에도 해체주의가 있지만, 여기서 이 용어는 포스트모던 신학에 대한 하나의 특정한 접근을 기술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탈자유주의(postliberalism)는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만큼이나 본질적으로 비판을 받는다. 그것은 결코 분명하고 뚜렷한 관념이 아니며, 어떤 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신학을 하는 어떤 정신 또는 일반적 접근이다. 그것은 내러티브, 전통, 공동체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스승들의 자유주의와 좌파-중도-우파라는 현대 신학의 스펙트럼을 넘어서기를 추구하는 어느 정도 마음이 맞는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의 대화이며, 현대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새롭게 꿈꾸기 위한 기독교적 실천들에 대한 집중이다.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는 기독교 신학의 한 방식으로, 그 초점이 “타자”에 대한 헌신과 모든 사상 체계 안에 있는 폭력적 경향들의 비판적 폭로에 있는데, 이는 신학을 이데올로기적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 다른 것,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개방성을 향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탈자유주의와 해체주의의 유사성은 둘 다 신학적 창조성을 위한 필연적 맥락으로 현대주의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차이는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교회에 대한 태도와 접근에 있다. 탈자유주의자들은 교회에 높은 가치를 두는 반면, 해체주의자들은 모든 공동체 생활, 특히 제도에 대해 의심하는 특징을 보인다.
--- 「12장 포스트모던 신학자들이 현대성에 반기를 들다」 중에서
현대 신학의 연구는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가 말한 “질서를 향한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힌 누군가를 동방 정교회로, 즉 대체로 계몽주의와 현대성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기독교 유형으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의 우리 대부분과 글로벌 사우스의 이른바 젊은 교회의 많은 사람은 현대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포스트모던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오염되었고 더럽다고 비판하는 현대 문화의 물속에서 여전히 헤엄치고 있다. 지난 이삼백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처음 이삼 세기 동안에 로마 제국에 있던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다. 우리의 질문은 “비텐베르크나 로마가 쾨니히스베르크[칸트]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다.…문제는 사람들이 이들을 비롯한 현대 신학 개척자들의 길들을 여전히, 어떤 경우는 그들의 이름도 모른 채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 앞서 길을 걸었던 이들에 관해 아는 편이 더 좋다. 그렇지 않으면 동일한 틀에 빠지고 같은 곳에서 제자리를 맴돌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말 것이다. 그들에 관해 배우면서 스스로 빠져 있는 난국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앞을 가리키는 놀라운 표지를 발견할 것이다.
--- 「결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