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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 동남아를 말하다

인류학자들, 동남아를 말하다

: 호혜성, 공공성, 공동체의 인류학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한국인류학총서-0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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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532g | 140*210*30mm
ISBN13 9791187750406
ISBN10 11877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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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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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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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관련 여행기와 전문화된 연구물 사이의 간극을 메울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주요 동인이었다. 동남아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로 구성된 필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경험이 학계를 넘어서 더 넓은 범위의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동남아 방문객의 폭발적 확대 양상이 동남아 사회와 사람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될 때 우리와 동남아 사이의 진정한 교류가 진행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는 점에 필자들은 공감했다.
--- p.7

정치학자에 이어 동남아 연구를 견인한 집단은 문화인류학자였다. 동남아 국가 대다수에서 장기간의 현지조사를 경험한 연구자가 출현했고, 경제, 종족, 종교와 같은 전통적인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관광, 보건, 개발과 같은 새로운 분야로 연구 관심이 확대되었다. 문화인류학자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참여로 인해 문화인류학이 “정치학과 함께 동남아 지역연구의 양대 축”을 형성할 수 있었고, 향후 동남아 연구의 도약이 문화인류학자에 의해 주도되리라는 전망을 제시할 수 있었다.
--- p.9

현재의 동남아의 모습은 동남아시아 고유의 특성과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이다. 외부와의 상호작용의 기록은 기원전·후에 걸쳐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다. 동남아와 인도, 중국, 아랍, 서구와의 상호작용은 특정 시기에 시작되어 특정 시기에 끝이 나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호작용이 처음 시작된 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양상을 보여서, 인도의 영향을 받았던 동남아에 중국의 영향이, 인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동남아에 아랍의 영향이 새로 추가되어 기존의 것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 p.30

필자가 1980년대 말에 말레이시아 농촌 마을에서 박사논문을 위한 현지조사를 할 때 경험한 일이다. 마을의 작업장을 내 숙소로 정하고 책상, 침대, 주방 용구들을 새로 마련했는데, 내 방을 구경하러 온 마을 청년 중 몇 명이 내가 마을을 떠날 때 이 물건들을 자신에게 팔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을 받은 나는 놀랍기도 하고 불쾌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 막 마을에 들어왔는데 곧 떠날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불편했고, 너무 실리를 밝히는 것 같은 태도도 마음에 안 들었다. 1년 정도 마을에 머물려고 생각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과 라뽀를 맺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던 나에게는 예기치 못했던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 p.87

공덕은 마치 “영적 화폐”인 것처럼 계산되거나 축적될 수 있다. 스피로Spiro가 조사한 미얀마의 농촌과 탐비아가 조사한 태국의 농촌에서 마을 주민들은 “공덕 회계장부”를 소유하고, 여기에다 자신이 행한 공덕 쌓기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이 장부를 통해 내세에 자신이 어떤 상태로 환생할 것인가를 가늠하기도 하고, 앞으로 공덕을 쌓을 행위를 기획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축적한 공덕과 일상생활에서 불가피하게 저지른 나쁜 행위 사이의 대차대조표적 계산에 의해 내세에서의 환생이 결정된다는 믿음이 공덕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 p.122~123

20년 넘게 베트남을 전공지역으로 삼아 연구해온 필자가 강연을 할 때마다 반드시 받는 당혹스러운 질문이 두 가지 있다. “베트남 문화는 어떤가요?”, “베트남인의 민족성이 어떤가요?” 첫번째 질문에는 베트남의 문화가 몇 줄의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가 숨어 있을 뿐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본질essence을 가진 문화의 뿌리가 있다는 일반화된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

베트남인의 민족성에 관한 두번째 질문은 첫번째 질문과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부지불식간에 악의적인 의도까지 함축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베트남인이 정직하지 못하고, 부지런하지 못하며, 솔직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편견을 내재화한 채 이를 필자에게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p.147~148

베트남의 다국적 공장이 처음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규정을 잘 지켰던 것은 아니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여 사회문제로 공론화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베트남의 다국적 공장은 임금과 관련된 분쟁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양호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여 이에 대한 노동자의 불만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2000년 중반 이후 베트남에서 발생한 노사분쟁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제반 권리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다투면서 발생하고 있다.
--- p.180

쁘딸랑안 사람들은 개인적인 “나”보다는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치 짓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보다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언어적 관습을 발전시켰다. 또한 므눔바이 의례요에서 분석했듯이 의례요에서 사용되는 호칭어 분석을 통해서, 쁘딸랑안 사회에서 널리 유통되는 “사랑”이나 “애정”의 정서들은 단순한 개인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에 내재된 사회적 역할과 관계에서 요구되는 책무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관습적 호칭어 사용의 분석은 쁘딸랑안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그에 따른 문화적 가치를 추적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 p.217

앞으로 인도네시아의 언어 생태는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 것인가? 우선 급속한 전 지구화에 따라서 여러 가지 외국어의 유입과 언어 접변이 가속화될 것이다. 영어와 아랍어의 영향(김형준 2001 참조)은 물론이고, 초국가적 이주를 통한 사람들의 이동이 잦아지면서 다양한 외국어들의 영향도 증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한국 제조업체에서는 한국어의 문법 구조에 인도네시아어의 어휘가 삽입된 일종의 피진어pidgin로서의 단순한 인도네시아어가 사용되고 있다(강윤희 2017).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남부 부톤Buton섬에 위치한 찌아찌아Cia Cia족의 경우 한글을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채택하기도 했다.
--- p.240

우기에는 비가 추적추적 날마다 내리고, 한번 쏟아질 때는 폭포처럼 내리붓는다. 오늘날에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많아 출입이 가능하지만, 과거에는 길이 질퍽해져 도무지 다닐 수가 없었다. 왕도 군사도 제대로 행차할 수 없었다. 국가 영역이 왕국의 핵심부로 줄어들고, 평지라 할지라도 변방이 되고, 기존의 변방이나 무주권 영역은 더 넓어졌다. 그러다가 건기가 되면 국가 영역은 다시 넓어지고, 변방과 무주권 영역은 줄어들었다. 동남아의 전근대 국가들은 계절 국가였던 셈이다.
--- p.257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법이 아니라 환대의 빚이었다. 우리 주변에 불가피하게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불법”이지만 정당한 사람들 말이다. 이들을 범죄자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범죄는 불법이고 부당한 범주에 속한다. 불법이지만 정당한 영역이 바로 틈새의 영역, 많이 들어봤을 회색지대이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 잠재적 틈새인이고 회색인이다.
--- p.296

태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의료보험 개혁의 과정에서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의 경험을 주위 깊게 살폈으며, 한국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의료 공공성을 확보해냈다. 우리는 과연 동남아시아의 성취와 변화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의 영리 병원 설립 논의에서 메디컬 투어리즘의 확대와 그에 따른 경제성장을 기대하는 방식, 또 아세안 협력에서 의료를 다루는 방식은 동남아시아를 일종의 잠재적 수요로 상상하는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같은 최첨단 의료 설비를 갖추지 못한 동남아시아 각국의 환자들이 한국에 몰려오기를 바라는 속내를 못내 감추기 어렵다.
--- p.321

신종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독성이 강한 병원체가 퍼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H5N1)가 그중 하나인데, 아시아는 여기서 국적과 관계없이 시한폭탄을 함께 안고 있는 운명 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이후 동남아시아는 물론 한국과 중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2004년 태국에서 처음으로 인간 대 인간 감염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빠른 변이 능력과 그에 따른 백신 접종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우리는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조류인플루엔자 이형의 위협 앞에 모두 함께 놓여 있는 것이다.
--- p.324

빈민에 대한 철거를 우려하던 필리핀 빈민운동 단체들은 한국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나는 한국 대사관이나 한국 기업과 필리핀 주민이나 활동가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앉아야 할 자리를 선택할 때부터 고민이 되었다. 보통은 “필리핀 단체 옆”에서 한국 측 사람들을 마주 대하는 자리로 정했다. 한국 기업 당사자가 미팅이 끝나고 나가는 자리에서 우리를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며 한마디 하고 떠났다. 다른 자리에서도 한국 정부의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한국 활동가에게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한 적이 있었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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