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장군의 귀환이 전례 없는 전염병의 시대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다. 잊힌 장군은 나라가 없어졌을 때도 백성과 나라를 위로했고, 머나먼 타국에 묻혀 계실 때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로했다. 장군의 귀환과 추도는 아직 봉합하지 못한 현대사의 생채기를 다시 드러냈으며, 국민이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각인케 했다. 감사해하고 죄송해했다.
장군의 추모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기가 막힌 고발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보수 정권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극우단체와 인사들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이었다. 천지가 개벽하고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야 할 일인데, 너무 조용하다. 피를 토해야 할 역사학계나 언론계는 더욱 조용하다. 긴 시간 자료를 준비하고 크로스 체크하여 보도한 매체가 오히려 이상한 모양이 되어 버렸다. 국민들은 별 관심도 없다. 장군의 귀환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들여다보며 감동하고 눈시울을 적시던 국민들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작금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조정에 든 벼슬아치 태반이 친일종자들인 점이라 한다. 태반의 친일종자들이 임금을 옹성처럼 감싸 가두고 옴짝 못하게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p.206)
나는 우리의 전체 역사 중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반민특위’의 실패로 꼽는다. 나라를 버리고 점령국의 편에 섰던 자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폐단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사회 전반에 반민족행위자들이 힘을 펼쳤고, 그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기득권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실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가난하게 살고, 친일을 하면 잘살게 되는 기형적인 역사가 대물림되었다. 홍범도 장군의 귀환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사람들이 ‘반민특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되었다면, 수십 년 돌고 돌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반나절 새에 홍범도 부대는 일군 131명을 죽였다.”(p.155)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연전연승 했다. 부단한 훈련과 실전 경험은 점령군을 차례로 무찔렀다. 아무 힘이 없는 나라와 조정은 총 한 자루 지원할 수 없었다. 홍범도 부대는 “일본 무기를 뺏어 일본 것들을 물리친다.”라는 기조로 전투에 임했다. 분명한 한계가 있는 전투 기조였다. 점령하러 조선으로 들어오는 일본군의 기세는 파죽지세였기 때문이다.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었다. 열을 죽이면 백이 들어왔다. 백을 죽이면 천이 들어왔다.” 천이 들어와 천을 죽이면 전투를 벌인 인 곳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가했다.
끝을 모르는 전쟁을 하는 것도 절망적이지만, 끝이 정해진 전쟁을 하는 것은 더욱 암울하다.
“정작 일본군과 붙어 이겨서 소총을 갖게 되고, 동패가 늘어 소대라도 이루게 된다면 그때부터 먹을거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먹을거리뿐이랴.” (p.63)
“그런데 어리둥절하다. 얼얼한 것 같고 서러운 것 같기도 하다. 처음으로, 마침내 우리, 혹은 내가 뭔가를 해낸 게 아니라 꼭 무슨 일을 당한 것만 같다.” (p.75)
홍범도 장군과 같은 독립운동가와 의병들은 하루를 살았다. 밀고 올라오는 일본군을 죽여 소총을 얻고, 커지는 부대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금을 대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울고 웃으며, ‘얼얼하고 서러워하며’독립을 위해 총을 들었다. 무수히 죽어간 일본군 곁에, 차마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으실지 가늠할 수 없다.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같은 깃발을 들었지만, 여전히 계급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반 출신 독립군들에게 차별과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양반한테 덤비고 주먹질 한 죄”로 부대 지휘관을 같은 독립군에 의해 잃기도 했다.
“여기 계신 지휘부원들 외에는 대개 상놈 출신들이지요. 그런데 반상을 따지면서 구국 충정을 말씀하십니까? 누구를 위한 구국인데요? 구국하여 양반 노릇 계속하기 위해서요? 저는, 애초에 그러했듯 제 방식으로, 이제 만민이 평등해질 조선을 위해서 싸워나가겠습니다.”라는 장군의 절규와 의지는 그의 생애 내내 이어졌다. 반상의 차별이나 신분의 차이, 출신과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았다. 안으로는 단단하게 군대를 이끌고 밖으로는 단호하게 전투를 치러 승리했다.
“면목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보가 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놈들이 이렇게 귀신처럼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p.344)
“같은 깃발을 들고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째 이리 뜻이 맞지 않을까?” (p.423)
바짝 당긴 활시위의 한쪽에 삭으면 내가 다친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기에 대비할 수 없다. 안으로의 균열은 절망으로 치닫는 싸움의 끝을 앞당겼다. 비단, 독립군 부대뿐만이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세작과 친일부역자들의 행위는 독립운동을 안에서부터 망가뜨렸다. 그렇게 하고도 해방된 국가에서 처벌받지 않았다. 그들의 반민족행위는 ‘어쩔 수 없었던 일’혹은 ‘오래전 잊힌 일’쯤이 돼버렸다. 슬픈 일이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홍범도 장군과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해방 후 70년이 훨씬 지나서야 고국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아직도 만주와 러시아, 중국과 한반도 전역의 땅 깊은 곳에 묻혀 계실 독립운동가들이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찾을 의지가 없는 것이다.
“왕비나 나라가 포수들한테 뭘 해줬다고 그게 헷갈립니까?”
“나라는 그냥 나라인 거지, 나라가 뭘 해줘야 나라인가?” (p.18)
왕비가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이 일어났다. 개중에는 의병 활동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목숨을 바쳐 일본군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민비와 구한말 조정의 악행과 무책임은 당시를 살았던 백성들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양반놈들 물러나고 일본놈들 들어와도 바뀌는 거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장군은 분명히 말했다. “나라는 그냥 나라”라고. 뭘 해줘야 나라가 아니라, “나라는 그냥 나라다.”라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게 ‘나라’는 무엇인지. 100년 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부족한 힘이라도 독립운동을 하게 될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적어도 세작이나 점령국의 부역자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이후,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일부 극우 정치인과 극우 언론, 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과 기득권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증명된 사실이다. 무엇보다 코로나에 완전히 초토화된 일본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잘 해냈고, 잘해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있다.
홍범도 장군님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께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있는 것 같다.
장군의 유해를 모신 수송기가 우리 영공에 진입하자, 수송기를 양옆으로 호위한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보고가 인상 깊었는데, 그대로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내 마음과 후손들의 진심을 담은 충정을 그대로 담는다.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한세기를 넘어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나는 이 책을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위인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픽션인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픽션으로만 적을 수는 없는 법. 왜냐면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고, 그 유족이 있다면 민감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홍범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참 3개의 주제를 뽑아 낼 수 있었다.
1. 사랑
2. 역사
3. 전투
이 3가지 장르를 약 460페이지 분량의 픽션에 녹여내어서 이야기를 풀어갔다.
소설가를 살펴보았다. #송은일 작가님은 나의 아버지 연배인데, 여태까지 십수권의 작품을 만드셨고, 최근에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이 작품을 출간하게 되었다. 일부러 근현대사를 멀리 해왔다는 작가님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근현대사를 통찰하면서 아프고도 고통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체감하고 100년 전에 그때로 돌아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홍범도, 그는 잘 모르는 인물이지만, 의외로 그의 행적은 흔적이 많이 남아 역사적 허구로 창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하지 않는 부분들을 허구로 만들어내어 적은 글이라고 한다.
꽤 두꺼운 편이지만, 재미나게 읽었다.
1. 사랑
사랑이라는 테마가 왜 들어가 있을까?
먼저 홍범도가 사랑한 여자 옥영이라는 여자와 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용범과 용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로맨스라는 테마와 가족의 사랑이라는 테마도 함께 들어있다. 초반부에 특히 옥영과 홍범도가 펼치는 이야기들이 꽤나 달달구리하다. 초반부에 이렇게 달달한 이야기가 있으니, 읽어가면서 지루함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리고 처음에 읽으면서 모지 스님이 아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오타인가 생각했지만,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납득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꽤나 흥미로우며 낭만적인 이야기다. 난리통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전개도 아주 극적이다. 당시에는 소식통이 없으니, 정말 저작거리에 나도는 소문같은 것으로 상대방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달달구리하다. 그러나 이 달달구리함은 후반부에 용범과 옥영이 갇히고 고문받으면서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초반부에서는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호랑이 사냥꾼으로 묘사되던 홍범도가 어떻게 옥영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교차식 구성으로 나오게 된다. 이 점이 독자들에게 더 궁금증을 자아나게 하는 부분이 있다. 탁월한 구성이라고 하겠다.
2. 역사
'역사'는 역사픽션에서 당연히 나오는 테마라고 생각이 된다.
구한말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시대배경을 말하고 있다. 당시에는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과 을미개혁(단발령)을 배경으로 하는 내용이 나오고 그전에는 동학농민운동도 함께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동학운동의 잔당들이 을미의병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역사공부를 통해 배워왔던 터이다. 그러나 당시 봉건제도가 철폐되었으나 한량이었던 이인석 의병대장이 이끌던 조선 최대의 의병조직이 고종의 서신 하나로 흐지부지되고, 그 조선의 독립을 향한 투지는 함경도를 비롯한 연해주, 만주 등의 해외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팩트 위주로 배워오던 역사와 이 소설 안에서의 내용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책은 홍범도의 입장으로 서서술되었다는 점이다. 홍범도는 상민 엄연히 천한 출신으로 오로지 조선이 자주의 힘으로 독립하겠다는 그 일념하나로 일생을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인물이다. 단지, 양반놈들에 대한 열등감만을 묘사했다면 그것 또한 못나 보였으리라. 그러나 양반놈들이 가진 허례허식으로 조선 독립에 저해가 된다고 판단했던 부분이 있다.
3. 전투
이 책에 묘미는 바로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 있다고 자부한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당시의 언어로 상황을 묘사하려고 했던 노력이 보인다. 구어(舊語)를 구사하면서 천한 출신이었던 홍범도의 정체성과 당시 상황을 당시의 언어로 재구성하려는 재치가 돋보였다. 특히, 그 노력은 전투씬의 묘사에서 더욱더 돋보인다.
영화 '봉오동 전투'를 연상케하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물론, 단어가 익숙지 않은 단어들도 많아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전투씬은 너무나도 재밌게 보았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눈앞에 그 장면들이 아른거리게 적어낸 문장들은 역시 관록이 있는 작가의 뛰어난 솜씨라고 할 수 있겠다.
총평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게 보았던 책이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만큼 재밌게 볼만한 책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