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이라는 탈을 쓴 문명의 맨얼굴저자는 문명이 인류를 발전시켰다는 관념이 토머스 홉스의 이론에 기인했다고 말한다. 1651년,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 세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다는 사고 실험의 결론을 내린다. 문명화되지 않은 인간은 ‘고립되고, 곤궁하고, 위험하고, 폭력적이었으며, 수명도 짧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문명을 합리화하는 이른바 ‘영속적 발전론’의 토대가 되었고 여기에 빈부격차와 계급 같은 문명의 부산물을 합리화하는 맬서스의 ‘인구론’, 인간 본성의 이기적 면모를 강조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인류 역사가 점차 폭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이 엮이면서 문명은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으로 자리 잡는다.저자는 이들의 말처럼 문명이 인류에게 꼭 좋은 것이었는지 의심한다. 실제로 수럽채집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살피기 위해 현존하는 수렵채집사회를 면밀히 분석했고 영속적 발전론자들의 예상과 달리 그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평등주의를 발견한다. 평등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면과는 정반대에 있는 태도다. 저자는 현존하는 수렵채집부족인 !쿵족의 삶에서 발견한 한 장면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쿵족의 누군가가 짐승을 잡으면 부족 남자들은 포획물이 한심하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뼈다귀밖에 안 남은 걸 끌고 가라고 우리를 여기까지 부른 거야? 에이, 이렇게 뼈밖에 안 남은 건 줄 알았으면 안 왔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냥 솜씨가 뛰어난 사람의 자만심을 누르기 위해서다. 만약 그가 자만심에 취해 두목 행세를 하고 특권을 요구하면 탄탄한 평등주의 체제가 조정 기능을 발휘한다. 자만을 보인 자는 농담과 조롱을 받고 여기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더 나아가 죽음에 직면할 수도 있다. 수렵채집인은 문명을 옹호하는 자들의 예상과 달리 평등한 집단 구조를 유지하며 호혜적 관계 안에서 살았던 것이다.보노보의 습성도 문명 이전의 삶을 예측하는 중요한 근거로 등장한다. 인간의 잔혹성을 믿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증거가 침팬지의 습성이다. 침팬지는 늘 집단싸움을 벌이고 강간과 약탈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러한 침팬지가 인간과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고 유전자도 98% 일치하므로 침팬지의 모습이 인간이 자연에 노출되었을 때 모습과 흡사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의도적으로 보노보의 습성은 배제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보노보는 침팬지처럼 인간과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보노보의 습성은 침팬지와는 정반대다. 보노보는 보헤미안적인 뻔뻔함과 여유로움을 과시할 뿐 목숨을 노리는 공격 행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전쟁도, 살해도, 강간도, 약탈도, 유아살해도 없다. 보노보의 평화지향성은 침팬지의 잔혹성만큼 우리의 뿌리인 것이다.문명은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발명품이 아니다영속적 발전론은 우리의 가장 지혜로운 조상들이 더 잘 살기 위해 농업기술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저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의견을 빌려온다. “우리는 수렵채집생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되면서 건강과 장수, 안전, 여가, 훌륭한 예술을 누리게 됐다고 배웠고,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세력도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기는 힘들다.”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을 ‘역사의 최대 사기’라고까지 했음을 언급하며 《사피엔스》의 한 구절도 인용한다. “농업혁명은 분명 식량의 총량을 증가시켰지만, 늘어난 식량이 식생활의 발전이나 여가 시간의 증가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이들의 예측에 따르면 정착생활과 농경을 시작한 인류 앞에는 사회적 불평등, 집단들 간의 폭력, 유일신 종교를 권력 유지에 이용한 지배계급이 등장했을 뿐이다.그렇다면 문명은 왜 시작되었을까? 저자는 이를 한 사건에 비유한다. 2003년의 어느 겨울 새벽,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포도원에서 관광객들이 열기구에 타려 기다리고 있는데 돌연 바람이 휙 불어왔다. 관광객이었던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는 스코틀랜드인이 엉겁결에 열기구 바구니를 붙잡았고 열기구는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즉시 손을 놓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스티븐슨은 주저하다 6미터 이상 올라가서야 손이 풀려 추락해 죽고 말았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문명의 시작인 농업은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계기로 시작해 어느새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린 선택이었다. 한 연구자의 말에 따르면 문명화는 ‘파국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나온 우발적인 부산물’이다. 생존이 힘들어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최후의 도피처’로서 ‘문명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인류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수십만 년 동안 인류에게 발전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고대인의 두뇌는 현대인의 두뇌보다 약간 더 큰 것에서 알 수 있듯 지능도 높았지만 그들의 삶은 변화가 없었다. 창끝이나 화살머리의 디자인, 매장 풍습, 장식 등에서도 그 변화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미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똑같은 삶에 붙잡혀 살았을까? 저자는 그들이 붙잡혀 살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삶이 편안했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다면, 우리 선조들은 ‘발전’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편안했을 거라고 유추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오래된 미래, 과거로부터 미래를 설계하다문명은 인류에게 물질적 이득을 제공한 대가로 많은 것을 앗아갔다. 아이와 부모 모두를 위험에 내모는 출산 방식과 아이를 고립하는 육아, 무한 노동과 돈을 향한 숭배,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까지, 지금 우리는 스스로 본성과 멀어졌음을 알아채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다. 이 책은 문명에 찔린 현대인의 환부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명의 폐해는 우리가 이제라도 회복해야 할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저자는 미래기술에서 과거를 닮은 삶의 방향성을 찾는다. 교육, 의료, 도시생활, 개인사업, 정부기관 등 되도록 많은 영역에서 인터넷을 바탕으로 ‘동료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킥스타터’를 예로 드는데 국내의 ‘와디즈’와 같은 플랫폼으로 아이디어와 자금을 연결해줄 뿐 여기에는 전문가도 없고, 리더도 없고, 관료도 없다. 저자는 오직 동료뿐인 이 플랫폼이 선사시대의 시스템을 본뜬 대안적 집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스마트폰을 통한 투표와 정치자금 기부, 독립출판과 독립언론의 확산, 암호화폐의 이용과 환전, 신속하게 대응하는 재난구호조직, 원격 의료, 저렴한 교육 등이 위계 없는 고대의 삶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한다.우리가 거칠게 부정해왔던 고대인의 삶에는 오래된 지혜가 있었다. 저자는 수렵채집인의 사고방식을 현대인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하며 책을 끝맺는다. “선조의 뿌리와 본성을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고, 존중하고, 그들을 본받는 미래에 조금씩 가까워져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