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라는 제목은 사전 정보 없이 접근하기에 흥미로운 제목은 아니다. 자기계발이나 에세이 제목처럼 너무 부드러운 인상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제목에 수긍이 간다. bbc 다큐에서 인상적인 진행을 보여줬던 닐 올리버의 책이라 구매해 봤다. 고고학, 즉 오랜 인류의 유물에 관한 책이지만 사람의 일생처럼 구성한 점도 흥미롭다. 역사에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제목에 이끌려 골라든 책입니다. 현학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생명현상이 종료된 죽음이 잠자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러한 죽음을 깨운다는 것도 묘합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Wisdom of the ancients>입니다. <고대인의 지혜>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이라는 부제가 제목의 뜻을 가늠케 합니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의 저자 닐 올리버는 고고학자이며 역사가입니다. 더하여 영국 BBC에서 20여 년 동안 교양편성의 각본을 쓰고 진행을 맡아온 방송인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의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들을 돌아보며 고대인들의 삶과 생각들을 유추해냈습니다. 고대인의 지혜랄 수도 있고, 정체성이랄 수도 있는 가족, 지구, 집, 세입자들, 기억, 공존, 나아가기, 영웅, 이야기, 상실, 사랑 그리고 죽음 등을 주제로 각각 세 꼭지의 글을 써서 모두 36꼭지의 글로 정리해냈습니다.
저자는 ‘들어가며’의 모두에 이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는 답을 찾고자 이 책을 썼다. 우리의 짧은 생 안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한 줌의 지혜와 희망을 얻기 위해, 나는 선조들의 세계를 되짚어보기로 했다.(18쪽)”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여기에 내가 호주머니에 넣어 가져온 한 줌의 씨앗이 있다. 중요하고 값진 것들이 으레 그렇듯 대부분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기억이란 무엇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한다.(27쪽)”
역시 고고학을 전공한 경희대학교 사학과의 강인봉 교수가 쓴 추천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유물은 옛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새겨진 조각이다. 고고학자는 그 조각을 통해 역사와 인간을 탐구한다.(8쪽)” 저자는 현생인류가 남긴 유물은 물론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을 거슬러 호모 하빌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등 고인류의 자취에 이르는 광범위한 고고학적 성과를 찾아 인류의 지혜가 발전해온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고고학적 성과들의 현장들 가운데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에 있는 올두바이협곡,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다는 차탈 후유크, 영국에 있는 스톤헨지, 마야와 잉카의 유적 등 한번쯤 찾아가보았거나 자료를 검토해본 곳도 있지만 전혀 생소한 장소도 적지 않습니다.
저자는 ‘들어가며’에 “긴 시간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억들이 담겨 있다.(23쪽)”이라고 적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추구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하여 레이 커즈와일이 <마음의 탄생>에서 ‘시간이 흘러도 지속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패턴(146쪽)’이라고한 설명을 인용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기억’으로 귀결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의 원동력은 바로 기억인 셈입니다. 그 기억은 의식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기억이란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에 맞서는 우리의 저항이다(197쪽)”라고도 했습니다.
결국 이 책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기억’으로 귀결되는 셈인데, 그래서인지 기억에 관한 글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기억이란 눕고 싶은 곳에 누워버리는 개와 같다.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의 소설 <의식>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읽어볼 책의 목록에 올려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던 또 하나의 화두 ‘기억’을 더욱 천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 여년 책을 주문해 오면서 내 서재 카테고리에 역사쪽은 좀 소홀한 감이 있었다.
지천명의 나이 무렵부터 역사쪽 책을 부쩍 많이 보게 되는데 요즘 들어 사피엔스,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등 이 책을 포함 고고학쪽 책이 참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나이를 먹어감에 참 한 세대가 짧다고 느껴지는데 수천년이래 봐야 몇십 세대 전인데 하는 생각도 하면서 현시대 인간이나 석기시대 인간이나 유전적으로 하드웨어적으로 거의 동일한데 다만 차이는 소프트웨어 차이일 뿐인데 하는 생각도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읽는 고고학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서술형식의 내용으로 쓴 책은 그냥 역사 교과서 같을수 있는데 이책은 그런 교과서
같지 않게 에세이적 스타일이라 읽기에 친근감도 있었다.
379페이지 분량인데도 책값도 착한 가격에 번역도 잘 되있고 밀도가 낮은 종이를 사용해서
가벼워 휴대하기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