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조예은 저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읽을지 말지 어떤 내용인지 고민스러웠다.
잠자는 죽음, 그 죽음을 깨우고, 죽음에게 길을 묻다니.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이라는 부제를 보면 더 내용이 뚜렷해진다.
사실, 고고학을 비롯해 역사책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고, 대부분의 기술들은 후대에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여 씌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패자가 남긴 기록들은 사라졌으며, 살아남은 승자들의 편에서만 남은 기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남겨진 문자 기록조차 찾기 힘든 고고학은 그야말로 상상에 상상을 덧칠한 기록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고대에 살았던 인류가 남긴 따뜻한 인간애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적으로부터 가족을 경계하기 위해 돌아섰던 발자국의 흔적, 출산 도중 함께 유명을 달리한 엄마와 아기를 묻으면서, 아기의 시체 밑에 부드러운 백조 날개 깃털을 깔아준 가족의 마음. 소중한 가족과 동료가 죽은 후 그 시체 위에 얹어진 꽃다발의 흔적들. 강한 이빨, 두꺼운 가죽과 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맹수들을 이겨내고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가족과 동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러한 인간은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한없이 먼지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얼마나 큰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의 인간 한 명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다. 현재는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인 것처럼 서로 땅따먹기를 하듯이 싸우고 있지만, 저자의 말마나따, 그것은 말의 등 위에 올라앉은 파리들이 말이 누구의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길고 긴 지구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 곳에 존재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일 뿐이다.
책을 읽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밟고 있는 돌멩이 하나는 수천만년 전에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또는 그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이 앉아있던 바위였을수도 있다. 그리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나는 잠깐 스쳐갈 뿐인 존재이지만, 내가 잠시라도 존재했던 의미를 남길 수 있게끔 더 진지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성의 기원을 찾는 고고학책.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진화를 하게 되었는지는 생각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고학에서 찾은 태초의 인간 호모XX라는 이름으로 불리울때부터 어린동물은 사냥하지 않았으며, 집이라는 것을 만들어 정착할때는 이미 가족의 의미가 있었다.는 내용들이 도의적인 마음을 그때부터 갖고 있었는지, 또는 어떤 실리에 의해 그런 선택을 한것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 인간성이라는 것은 동물보다 더 고등하게 진화해있었고, 계속 진화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인간의 진화는 인간이 이룩한게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변화시켰다는 관점으로 설명된 부분도 새로운 관점의 생각을 해볼 수 있어 신선했습니다.
무엇보다 고고학이라는 다소 접하기 어렵고 딱딱해보일 수 있는 학문을 감성적인 글로 풀어내어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음을 넘어서 고고학 자체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열어줄 정도의 가치를 저에게 준 책이었습니다.
고고학자의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문학책 같다. 저자는 닐 올리버. 이야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는 세계라는 직물 안에서 구성원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실과 같다.” 오래된 이야기들은 시간의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때 운 좋게 남은 화석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야기란 한때 온전히 전체를 이루었던 것들의 파편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는 무엇이든 짜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책은 1 챕터인 가족부터 마지막 12 챕터인 죽음까지 이어진다. 메리 리키가 발견한 라에톨리 발자국은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 인근 라에톨리의 화산재 위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다. 이는 그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이전부터 두 발로 걸었음을 알게 한다. 360만년전 vs 260만전년이 답이다. 전자는 직립을 말해주는 연도이고 후자는 도구 제작을 말해주는 연도다.
올두바이 협곡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등의 화석이 발견된 고인류 화석의 보고(寶庫)다.(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최초로 고인류 화석을 발견한 사람은 한스 렉이다.; 91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크로마뇽인의 크로마뇽은 동굴 또는 바위 그늘을 뜻하는 크로와 그 땅의 주인을 의미하는 마뇽의 결합어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는 약 40만년전부터 2만 5000년전까지 살았던 고인류다. “사랑과 보살핌은 현생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보다 수십만년 앞서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는 삶과 죽음의 자리에서 동료를 보살폈다.” 저자는 땅을 밀고 솟아나 깎이고 닳아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것, 돌과의 연결, 돌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필요한 유일한 불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바위들은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인류학자 헨리 번은 약 200만년전의 고인류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다고 말했다. 헨리 번 이전까지 초기 인류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포식을 끝내고 고기와 골수를 발라 먹는 쓰레기 처리꾼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번은 그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았다.
올두바이의 한 도살 유적에서 번은 180만년전의 인간 사냥꾼들이 남긴 영양, 가젤, 누의 뼈를 발견했다. 턱뼈에 남은 치아를 관찰하여 동물들의 나이를 추정한 결과 닥치는 대로 사냥했던 사자나 표범과 달리, 호미닌 사냥꾼들은 오직 다 자란 동물들만 골라 사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영장류들은 긴 소화기관에 적합한 채식 위주의 식단에 만족했지만 인류는 영양이 풍부한 고단백 육류를 안정적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는 점점 더 커졌다. 1931년 영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매킨스는 올두바이에서 고인류 뼈와 석기, 동물 뼈, 둥그렇게 놓인 돌 무더기를 발견했다.
메리 리키는 누군가 은거지를 만들기 위해 그 화산암 무더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것이라 설명했다. 190만년전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집이다. 저자는 당시 인류는 식량을 집으로 가져와 기다리는 이들과 나눠먹을 줄 아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고 남성이 먹을 거리를 구해와 가족을 부양하는 성별 분업설을 러브조이(오웬 러브조이가 주장) 가설이라 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책에는 스카바 브레 이야기도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폼페이라 불리는 그곳은 5000년 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1850년에 몰아친 또 다른 사나운 폭풍으로 마법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유적이다. 이 부분에서 탄자니아 라에톨리 발자국을 생각하게 된다. 응고롱고로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에 비가 내린 덕에 바닥은 진흙처럼 질척였다. 그래서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가 그들의 발자국을 덮었고 그 발자국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계곡을 흐르는 물에 의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아 공화국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두개골 유적은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호미인 화석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다섯 개체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가우텐겐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등이 명명되었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지녔으며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다섯 개체 분이 발견되었다. 이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무조건 다른 종이 아니며 이들 모두가 하나의 종 즉 호모 에렉투스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는 시간상으로 우리보다 우리의 친척이자 아프리카의 작은 유인원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더 가까웠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부류였다. 그들은 아직 인간 즉 호모라고 할 수 없었지만 유인원과는 달리 팔로 물건을 든 채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를 원숭이 같은 인간, 야만적인 멍청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학자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
호모 에렉투스는 구대륙의 끝까지 뻗어나갔다. 남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수십만년 뒤에는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렀다. 그들 중 일부는 지부티의 해변에 서서 아덴만(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사이의 만) 너머를 응시하다가 해협을 건너 아라비아 반도에 당도했을 것이다. 빙하기였던 플라이스토세 동안 간혹 해수면이 낮아지면 걸어서 해협을 건너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은 아라비아부터 구대륙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떠나는 이민자와 난민들은 20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가 개척한 그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120, 121 페이지)
인간의 외모는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일까? 유전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가 같은 유전자를 나눠 가졌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규모가 크고 건강한 집단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바다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화산 폭발 같은 재난이 일어나 어떤 종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 인구의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인류 개체 수가 급감하여 가임 인구가 몇 남지 않은 상황은 돌연변이에게 자기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130 페이지) 현대 아프리카인의 살과 뼈에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래한 DNA가 없지만 유럽인에게는 많게는 4%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마주쳤을 때 울려퍼진 메아리는 강철에 부싯돌이 닿을 때처럼 불꽃 같았을 것이다. 그 혼합물에서 한없는 창조성이 마법처럼 피어났다.
마지막으로 빙하가 물러난 시기는 약 1만 2천년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들은 그 광활한 대륙을 떠나 이동을 시작했고 중동을 거쳐 아시아, 유럽, 마지막으로 약 2만 5000년전 오늘날의 베링해협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저자가 처음 고고학 발굴에 참여한 것은 18세이던 1985년이다. 장소는 스코틀랜드 에이셔주 댈멜링턴에 있는 둔 호수가였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이 쓰던 플린트의 부스러기와 처트(규산을 함유한 퇴적암)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석기시대인들이 돌로 도구를 만들 때 생기는 그런 부스러기들을 데비타지(debitage)라 한다.
다른 고인류들처럼 호모 사피엔스도 탐험가였고 방랑자였다. 그들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중동으로 이어졌고 이전부터 사용되던 동쪽 길을 따라 아시아와 호주,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4만년전에 유럽대륙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에서 멀지 않은 이스라엘 땅에 닿은 것은 무려 17만 7000년전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가르멜산에 있는 미슬리아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좁은 얼굴, 좁은 이마, 전체적으로 덜 건강한 인상, 뚜렷한 턱)을 가진 젊은 성인의 왼쪽 위턱뼈 일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75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을 코앞에 두고도 건너가지 못한 것은 이미 그곳에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들의 창은 그들이 생각보다 더 현대적이며 지혜로웠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발견한 것은 1856년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긴 사실을 장막에 거주하는 조용한 사람인 야곱이 꾀와 속임수를 써서 능숙한 사냥꾼인 에서를 이긴 성경 이야기에 비유한다.(176 페이지)
인류 발달 역사에서 엄지손가락의 진화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엄지손가락에 다른 손가락과 맞닿는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도구를 집는 힘이 늘고 손재주도 향상되었기 때문이다.(264 페이지) 갓난아기는 270개의 뼈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몇몇 뼈들은 성장과정에서 하나로 붙게 되고 어른은 총 206개의 뼈를 갖게 된다.(357 페이지)
우리 종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인류는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온갖 기술을 탄생시켰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고 잡고 움켜쥐었다.(268 페이지) 인도학자 프리츠 스탈 교수는 인간에게 말보다 의례가 먼저 등장했다고 믿는다.
의례를 이루는 패턴화된 행위,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몸짓은 새들의 짝짓기 춤이나 곤충의 분봉 행위를 본뜬 것일 수 있다.(296 페이지) 저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그저 걸었고 창조했고 살고 죽었다고 말한다.(297 페이지) 이는 우리 조상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전에 두 발로 걸은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본문에 중석기 시대(Mesolithic)라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사냥꾼이 살던 시대를 일컫는 고고학 용어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중간을 의미한다. “우리 종은 2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인류의 생리나 지능이 근본적으로 변했을 리는 없다. 우리는 그들과 같다. 다른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선택이다.”(325 페이지)
저자는 성소(聖所; sanctuary)의 동굴 벽화란 말을 한다. 프랑스 남서부의 트루아프레르 동굴의 성소라 불리는 방에 매머드, 곰, 말, 야생 염소, 들소, 순록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1만 5000년전의 그림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전율하게 한다. 저자는 그 벽화를 만들어낸 힘이 상상력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상상력이라는 얇은 막을 걷어내면 우리는 여전히 사냥꾼이다.
“우리 종의 동맥에는 보랏빛 세쿼이아보다 고귀한 생명선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의 생명선, 그것은 바로 지혜다. 원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지혜는 환기하고 회복하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 조상들이 익히고 알게 된 모든 것이며 현대적 자아를 지닌 우리의 깊은 뿌리에 있는 무엇이다. 수십억년 동안 이어진 삶의 유산, 원시로부터 온 생명력이 우리의 DNA 가닥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