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에 꿈 많았던 14세 소년, 제시 리버모어는 가출을 결심했다. 이른 아침 집을 떠나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5달러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고, 그 길로 바로 도시로 향했다. 그는 보스턴의 사설 거래소(Bucket Shop)에서 시세판 사환으로서 커다란 칠판에 호가를 적는 일을 했다. 리버모어는 주가를 받아적으며 그 주가들 사이에서 어떤 일련의 규칙을 발견했다. 그렇게 주가에서 흐름을 발견하며 투자에 자신이 생겼을 때쯤, 같이 일하는 동료의 권유로 함께 투자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15세였다. 첫 수익으로 3.15달러를 얻고 나서 투자를 계속하며 자신감과 함께 ...
농부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에 꿈 많았던 14세 소년, 제시 리버모어는 가출을 결심했다. 이른 아침 집을 떠나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5달러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고, 그 길로 바로 도시로 향했다. 그는 보스턴의 사설 거래소(Bucket Shop)에서 시세판 사환으로서 커다란 칠판에 호가를 적는 일을 했다. 리버모어는 주가를 받아적으며 그 주가들 사이에서 어떤 일련의 규칙을 발견했다. 그렇게 주가에서 흐름을 발견하며 투자에 자신이 생겼을 때쯤, 같이 일하는 동료의 권유로 함께 투자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15세였다. 첫 수익으로 3.15달러를 얻고 나서 투자를 계속하며 자신감과 함께 수익도 늘렸다. 그는 그렇게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강세장일 때 선도주를 계속해서 매수하고, 약세장에는 공매도로 수익을 거두는 기법으로 부를 빠르게 쌓았다. 그의 나이 30세 때 금융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던 J.P. 모건도 리버모어에게 공매도를 중지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시장에서 큰손이 되었다.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에도 1억 달러(현재 한화 약 2조 원)의 수익을 얻으며 ‘월스트리트의 큰 곰’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리버모어는 전 세계 역사상 개인투자자로 가장 큰 수익을 거둬들인 전설의 거인이다. ‘추세매매의 아버지’이자 ‘월가의 큰 곰’인 그는 오늘날까지 모멘텀 투자에 있어서 교과서라 불릴 만한 『제시 리버모어 투자의 원칙(How to Trade in Stocks)』을 남겼다. 이 책은 그가 살아생전 집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부산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증권에서 근무하였다. 주가예측사이트 포에이스닷컴과 그 외 일반 기업체 자금운용 담당 및 컨설팅업무를 담당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의 주요한 경험을 쌓았고, 현재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투자상담사 1·2종, 한국증권분석사, 일반자산운용역(펀드매니저), 증권FP, 미국선물중개사(AP)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부산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증권에서 근무하였다. 주가예측사이트 포에이스닷컴과 그 외 일반 기업체 자금운용 담당 및 컨설팅업무를 담당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의 주요한 경험을 쌓았고, 현재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투자상담사 1·2종, 한국증권분석사, 일반자산운용역(펀드매니저), 증권FP, 미국선물중개사(AP)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