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한 적은 없다.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 것은 날마다 한탄한다.
양자역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상대성이론도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만화로 보는 양자역학은 좀 쉬울까, 아니 좀더 이해하기 쉬울까?
어렵긴 마찬가지다.
대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라는 과학자에 대한 사람됨은 조금 알 수 있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히틀러 치하를 경험한다.
많은 동료들이 독재를 피해 미국 등으로 망명했지만, 전후의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플랑크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원하는대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중성자 붕괴를 연구하기는 했지만...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규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는 하이젠베르크의 전매특허다. 이것은 빛을 포함한 양자가 입자냐 파동이냐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는 과학사의 난제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며(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슈뢰딩거는 유명한 고양이 실험을 인구에 회자되게 함으로써 파블로프의 개와 함께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마리의 동물 중 하나를 갖게 되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과학자로 살고 싶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과학을 열다>은 교양만화인데, 양자역학에 대한 어떤 전문적 설명을 그려냈다기 보다는 양자학(量子學)의 태두라 할 수 있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의 학문적 발자취 및 성과를 연대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도 양자역학이 뭔지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다. 측정이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정도? 조금 더 나열하자면 하이젠베르크가 행렬(行列) 형식의 수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양자역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고, 아인슈타인과의 토론에서 힌트(관찰할 수 있는 양만으로 과학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우리가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지 결정한다)를 얻어 1927년 '불확정성 원리'로 양자역학의 해석을 확립했다는 정도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정도...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보어 교수와 함께 상보성의 원리(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의 다른 방법으로 관찰. 즉 파동과 입자 같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의 짝을 함께 사용한다는 원리)와 불확정성의 원리(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과 관계된 물리량은 측정과정에서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즉 원자의 위치와 운동성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로 표현되는 코페하겐 해석을 발표하는데, 아인슈타인은 이 새로운 양자이론의 확률론적인 성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물리량은 측정과 관계없이 객관적인 값으로 존재한다는 물리학의 대전제를 완벽히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동방정식으로 유명한 슈뢰딩거 또한 코펜하겐 해석을 수용하지 못하고 뒷날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사고실험적 비판을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제법 흥미로웠다. 생각하기에 따라 철학적인 하는 사고로의 영역 확대가 가능한 부분이더라.
이 책을 통해 건진 걸 하나 꼽으라면 자연 현상이 확률에 지배를 받는다는 거다. 양자역학과 관계없이 인상적인 장면이 둘 있었는데 그 하나는 '과학자의 양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우라늄 프로젝트를 이끌게 되는데, 과학자의 양심에 따라 핵폭탄보다 제어가능한 에너지 생산에 초점을 맞춘 소규모 원자로(原子爐)의 연구에 그쳤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자들의 '토론 문화'이다.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동시대의 많은 물리학자의 연구 핵심내용들이 소개되어 나오는데, 관련 교수들이 토론을 통해 그들의 연구를 검토하고 업그레이드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성 이론이 천재 아인슈타인 한 사람의 역작이라면 양자역학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과 경쟁에 의해 자리 잡은, 요즘 말로하면 집단지성의 산물이라 하겠다.
만화라고 쉽게 볼 수 있는 책은 아니고... 그렇다고 양자역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어려운 책도 아니다. 과학 좀 좋아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읽으면 제일 적당하고, 관심 있는 성인들도 어려운 이론은 무심히 넘기면서 볼 수 있는 수준의 구성이다. 나에겐 뭔가 지식충족이 덜된... 그런 느낌이 조금 남아 있다. 하여튼 이런 책을 우리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노벨상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창조적인 성과를 일궈낸 사람에게 주어지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게 너무 약하다. 투자도 좋지만 관심이 우선이다. 이 책으로 인해 단 한 명의 인재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이 책 낸 사람들 모두 행복할거야... 그림체가 시원하고 글에 군더더기가 없어 나름 즐거운 책 읽기(보기) 였다...^^
【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 이옥수 글, 정윤채 그림 / 작은길출판사
1.
다재다능하면서도 괴짜 과학자라는 애칭이 붙었던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대재앙이 일어나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과학적 지식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원자 가설’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2.
원자 가설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영원히 운동을 계속하는 작은 입자로서 거리가 어느 정도 이상 떨어져 있을 때에는 서로 잡아당기고, 외부의 힘에 의해 압축되어 거리가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낸다는 가설을 뜻한다.
3.
물리학자들에겐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다. 파인먼이 원자가 사물의 기본이라는 생각은 세대를 이어서 전수되어야 할 물리학의 핵심 개념이라고 단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자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로 알려져 있다. 근대적 원자론은 19세기 초 영국의 존 돌턴에 의해 제창된다. 조지프 톰슨은 음극선관 실험을 통해 일명 푸딩 모델로 불리는 원자모형을 주장했다.
4.
이 책의 주인공 하이젠베르크는 1958년 ‘세계공식(World Formula)’이라고 알려진 식을 만들어서 모든 소립자의 특성을 유도해내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영감을 받아 양자론의 발전에 앞장선다. 코펜하겐 해석이 양자역학의 공리로서 널리 인정받게 된 이후 자연현상의 근본적인 법칙이 대칭성이라는 믿음을 갖고 세계 공식을 만들고자 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평생의 친구이자 연구 파트너였던 파울리마저도 외면한 공식이지만, 대칭성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믿음은 현대물리학 이론에 그대로 남아 있다.
5.
책의 서두는 1958년 뮌헨시 800주년 기념행사장인 독일박물관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연설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제 고향은 뮌헨이 아닙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뷔르츠부르크입니다. 뮌헨에서 꽤 떨어진 곳이죠. 1910년 아버지가 뮌헨대학의 그리스 문헌학 교수로 초빙되면서 우리 가족은 뮌헨에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아홉 살이었다. 1920년 뮌헨대학.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까 고심하던 그는 처음에 수학을 염두에 뒀으나, 이론물리학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가 대학에서 학문의 인정을 받게 된 계기는 조머펠트 교수와의 조우와도 관계가 있다. 조머펠트는 보어의 양자가설을 전자의 궤도를 원이 아닌 타원궤도로 확장하고 상대론을 적용함으로써 추가로 발견된 수소의 선스펙트럼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이를 보어-조머펠트 원자모형이라고 한다. 조어펠트 교수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제만 효과를 설명해보라고 하면서 의문점을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상 제만 효과’라는 명칭이 붙은 실험이었다. 원자에 자기장을 가했을 때 선스펙트럼이 분리되는 수는 항상 홀수여야 하는데, 그 수가 짝수로 갈라지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런 현상을 그때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상 제만 효과’라고 불렀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문제를 반정수(+1/2, -1/2)를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아무도 반정수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양자수는 정수였던 것이다. 조머펠트 교수조차도 “그건 불가능하네. 양자의 세계는 정수와 상관이 있는 걸세. 반정수는 있을 수가 없어.”라고 하이젠베르크의 말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가 옳았다. 그의 이론은 나중에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기술하는데 쓰이게 된다.
6.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에 라이프치히대학 이론 물리학 정교수가 된다. 독일에서 가장 젊은 교수로 기록된다. 히틀러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하이젠베르크도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치의 강압으로 핵개발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 후폭풍을 견뎌내야 했다. 원자폭탄 개발 경쟁에서 독일은 연합국이 벌인 다각도의 방해 작전으로, 처음에는 우라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충분한 양의 우라늄을 구하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감속재인 중수를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그때에도 중수 수송선 폭파 같은 방해공작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중수 방식을 쓰지 않았고, 엄청난 비용과 우수한 과학자를 대거 투입한 덕분에 폭탄 제조에 성공한다.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양자역학을 세운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1933년에 받음)
7.
글과 그림이 만화로 재미있게 편집된 이 책을 현재 과학을 전공하는 학부생들이나, 미래의 과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