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조예은 저
2019년 12월 06일
"단순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선 적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의 품질이 최고 수준이 아니면 안 되지요."
좋은 것들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짧다. 그러니까 뭣이 좋은지 실험하는데 쓰는 시간도 아깝다. 더구나 한달에 용돈 20만 원을 받아 쪼재고 쪼개서 연명하는 처지에 실험에 투자할 자원도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책은 꼭 필요하다. 전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본 저자가 본인 돈으로 물건을 사서 써 보고 추천해주니 좋은 물건을 가려내기 위한 시행착오를 내가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은 <생활명품>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데, 첫 번째 권을 읽었을 때가 아마 2008~9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책에서 읽고 곁에 두기 시작한 게 몰스킨 수첩과 스태들러 연필이다. 군대에 다녀와서 여행을 본격적으로 다닌 것이 그 무렵인데, 그때도 역시 일은 시작했지만 용돈이 넉넉하던 시절이 아니라서 수첩 하나에 2~3만원씩 하는 몰스킨 수첩을 일기로 빠르게 소모해버리기에는 좀 아까웠기 때문에 여행 기록장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몰스킨을 펴고 차창에, 비행기 창문에 기대어 그 순간의 심상을 기록했고,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그날의 기분과 일과를 곱씹어보곤 했다. 그러므로 내게는 '여행을 기록하다'는 '몰스킨을 쓰다' 또는 '몰스킨하다'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겠다. 10년 즈음을 함께한 이 수첩은 손때 묻고 낡았지만 바꾸어야겠다는 느낌 대신 내 손에 익어 노련해졌다는 느낌을, 그리고 여행에서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받아들여주고 반응해주는 익숙한 친구같은 느낌을 준다.
그 분야에서 아주 유용하고 마음에 드는 최상의 물건을 만난다는 건 그 이하의 것은 쓰지 않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요즘 아이들은 '~~미만 잡'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건을 하나 사서 오래 쓰는 건 또 그만큼 자원을 덜 쓴다는 거니 환경에도 부담을 덜 주는 길이기도 하므로 물건을 사서 쓸 때의 흐뭇함과 윤리적 선택을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다. <윤광준의 新생활명품>은 2017년에 나온 책이니 벌써 4년 가까이가 지났다. '세월'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길지 않지만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니 이 책에 소개된 마흔 다섯가지 것들 중 몇 개나 살아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의 전작 <윤광준의 생활명품>은 대단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앰배서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던 시기에 시간과 경험을 들인 사용자가 브랜드에 얼마만한 신뢰도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일단 그 책에 실린 제품들은 대부분 고가였고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갖고싶다'라는 의식을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만드는 놀라운 책이었다. 뒤늦게 후속편인 이 책 <윤광준의 新생활명품>을 읽고난 느낌은? 음.. 전작을 읽었을 때 만큼의 느낌은 아니다. 무엇보다 유튜브에서 다양한 하울과 개봉기, 리뷰를 생생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이 책에 실려 있는 몇몇 제품에 관심이 생기지만 거기까지다. 무엇보다 여전히 대부분의 제품들은 고가이다. 뭐, 그렇단 얘기다.
ECM의 CD를 틀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처음 4~5초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당황하지 말 것. 고장이 아니다. 침묵의 시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음악이 번져 나온다.
얼마전 같은 저자의 책을 재미나게 읽은터라 한권 더 집어들었는데 역시나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냥 생활명품 제목의 책이 있고 이게 아마 후속작인것 같은데 저자의 인생 길 가운데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접했던 여러 물품들에 대한 생각(이라고 쓰고 뽐뿌라고 읽어야 할듯)을 담은, 어찌보면 특이할게 없는 에세이인데 언급된 상당수의 물품을 갖고 싶을 정도로 좋은 의미에서 내겐 해로운 책이었다. 간간히 가지고 있거나 혹은 있었던 제품이 등장할때는 너무나 반가웠는데 저자 덕분에 한층 애정이 생기기도 했으니 책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내가 가진 다른 제품에 대해서는 나도 비슷하게 한꼭지를 써보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는.
책을 보다가 정말 궁금한 마음이 들어 찾아본 제품이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테오 안경이고 하나는 우리나라 제품인 칵테일 오디오였다. 그런데 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다른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약간 삐딱한 마음에 이 책 제목을 신생활명품이 아니라 생활 준명품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언젠가는 언급된 제품 중 한두개 더 내손에 들어올 날을 기다리며 이 책에 등장한 제품을 적어보자면.
탈취제 런드레스, 종이그릇 와사라, 신발 토앤토, 가방 투미, 안경 테오, 옷 파타고니아, 깔창 페닥, 화장품 세타필, 가위 피스카스, 등긁개 요괴손(?), 콧수염 가위 카이, 옷, 아크테릭스 베일런스, 멀티툴 베르크카르테, 커피 드리퍼 몽벨, 캐리어 리모바, 보온병 스탠리, 우산 도플러, 코르크 따개 보이, 칼갈이 요시킨, 에스프레소 머신 바끼 에스프레소, 선풍기 발퓨다, 휴대용 오디오 아스텔 앤 컨, 멀티탭 클릭탭, 멀티탭정리함 플러그 팟, 보일러 바일란트, 청소기 밀레, 라디오 더 플러스 라디오, 키보드 LG롤리키보드, 시계 렉슨, 오디오 칵테일오디오, 위스키 글랜리벳, 어묵 삼진어묵, 바이주 양하대곡, 생선알 양재중 어란, 밥 연잎 밥, 김 장흥 무산 김, 막걸리 복순도가 손막걸리, 연필 파버카스텔, 문진 트로이카, LP리더(?) 오르토폰 SPU카트리지, 스탠드 아물레또, 소프트웨어 에버노트, 디자인 이노디자인 T라인, 음반 ECM음반들, 메모지 킵캄캐리온.
적다보니 엄청 많다. 그러고보니 다른건 그렇다치고 보일러도 있었다는. 이건 우리나라에서 팔긴 하려나. 일단 근시일내에 접해볼 가능성이 높은건 복순도가 손막걸리 정도가 아닐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