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조예은 저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이후로 인체, 삶,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올해 그래도 의약품이나 질병, 몸에 관한 책을 다른 해에 비해 몇 권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연장선 상에서 이 책도 구매했다. 물론 이 책은 미술책이지만 의학자가 미술책을 쓴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미리보기를 통해 책을 훑어보니 목차와 앞 부분이 재미있었다. 이 책이 그래도 꽤나 인기가 있었는지 시리즈로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이 나오기도 했다. 그림 속에는 수 많은 시간을 걸쳐져 나타낸 인간의 삶과 죽음이 담겨져 있는데 의학자의 시선에서 어떻게 그림을 해석하고 받아들일지 기대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해부학 수업을 할 때 해부를 이발사나 조수가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내과의사와 외과의사의 구분이 없었고 외과의사는 천대받았는데 기술이 부족하고 진료 내용도 단순해서 외과의사들은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 일을 병행했다. 천대받던 외과의자의 지위가 높아진 것은 프랑스 루이 14세의 치루 덕분인데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에 의해 치루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난 후에 외과 과목을 정규로 편성하게 되었다. 의학 수업과 관렪여 책에는 재밌는 여러 작품이 실려있는데 그 중 당시 외과 수업을 그린 <윌렌 반 데어 메이르 박사의 배후가 수업>에 대한 설명은 재미있었다. 수업을 하는 장면을 담기보다 길드 조합의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의 잘 나오길 바라는 여러 사람들의 초상화를 집대성 한 것 같아서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동성애는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했는데 지금과 같이 소수자가 아닌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여겨졌다고 한다. 기독교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중세에 이르러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중세 시대의 화가들은 신화를 빌려 동성애를 묘사하기도 했다. 여성 간의 동성애를 묘사한 작품 가운데 유명한 그림으로 쿠르베의 <잠>이 등장하는데 나체의 두 여성이 침대 위에서 서로의 몸을 감싸며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무척 매혹적이다. 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했던 쿠르베의 실제 모델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는데 이 모델은 제임스 휘슬러의 작품에도 등장했다고 하니 당대 화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동성애자로 인생의 변곡이 휘한찬란 했던 오스카 와일드도 등장한다. 여러 책에서도 동성애로 인한 질병이 왜곡된 사실이라는 것을 읽었는데 이 책 역시도 동성애와 관련된 편견을 다룬다.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랜시스 고야의 작품인 <디프테리아>에서는 입 속을 들여다보는 남자의 측은한 시선과 입을 벌리는 것이 고통보이는 아이의 모습이 어둡게 담겨있다. 디프테리아는 디프테리아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감염병으로 어린아이에게 잘 걸리며 심하면 1~2주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백신이 없을 때에만 해도 한국에서 사망률이 무려 25%나 달했다고 하는 지금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사망률이 높다. 그 때 당시만 해도 감염과 예방에 대한 방법이 없었을텐데 위생에 취약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디프테이아로 사망했을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을 그림으로 보니 훗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고 이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장 위기스트 도미니크 엥그르가 그린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제>에서 안젤리카 공주는 나체로 목을 꺽은 채 바위에 두 손이 묶여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때 안젤리카 공주의 목이 심하게 부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어지는 주제는 국내에서 발병률 1위인 갑상샘암이다. 내분비 기관인 갑상샘은 체내의 대사 과정을 조젏는 갑상샘 호르몬을 만들고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혈개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상이 생기게 되면 목에 혹이 난 것처럼 부어오른다. 다행히 갑상샘암은 조기에 발견도 쉽고 진행 속도도 느리고 전이도 적은 편이라서 착한 암으로 불린다고 한다.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있으리라 싶지만 완치율이 99퍼센트라고 하니 잘 알아두었다가 이상이 보이면 너무 겁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중 가장 기대를 품고 읽은 책이 바로 [미술관에 간 의학자] 다. 박광혁 저자의 책은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을 통해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명화 속에서 발견한 의학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밖으로 드러나는 육체적인 질병부터 타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마음 속 생채기까지, 그림을 통해 만난 '진료실 밖 의학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의학 이야기인만큼 전세계를 휩쓸었던 전염병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 아닐까. 1347-1351, 불과 4,5년 사이 유럽 전역에 퍼진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0-50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 대재앙이 진행되는 이 시기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당해야 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페스트를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응징이라고 생각했고, 공포를 느낀 사람들의 광기의 화살이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다.
하지만 '페스트'보다 '스페인 독감'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에곤 실레의 그림 때문이었다.
행복한 세 가족을 그린 에곤 실레의 <가족>. 아내 에디트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겨운 나머지, 조카를 모델 삼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 실레의 작품들 중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실레 또한 그 3일 뒤 사망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의 미래를 꿈꿨을 실레의 덧없는 바람. 스페인 독감이 덮친 그의 인생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림이 한 점 더 있다. 생후 2개월부터 아기에게 네 차례 접종하는 DPT 예방접종.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예방접종이 이리 많은 지도 몰랐고, 이 세 가지 중 들어본 것은 파상풍과 백일해 뿐. 디프테리아는 무척 생소했다. 프랜시스 고야가 이 디프테리아를 주제로 그린 <디프테리아>를 보면 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조급함과 걱정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어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는 디프테리아. 점묘법을 창시한 신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와 그의 아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중섭도 아들을 디프테리아로 잃었다니, 충격이었다. 지금은 1913년 백신이 개발되어 비교적 보기 어려운 병이 되었다지만, 저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아려올 것 같다.
신화를 통해 드러나는 콤플렉스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이오카스테 콤플렉스'. 어머니가 남편을 배척하고 오히려 아들에게 집착하여 심지어 성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증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아주 오래된 영화인 <올가미>에 등장했던 그 무서운 어머니가 어쩌면 이오카스테 콤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아들에게 집착한 나머지 며느리를 죽이려고 했던 시어머니.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시어머니를 만나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다 재미있었다. 이아손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의 손으로 아이들을 살해한 메데이아에서 '의학'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 이발사 일과 진료를 병행했던 외과의사의 흔적이 오늘날 이발소를 상징하는 빨강, 파랑, 흰색에 남아있다는 것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림들. 화가들이 그려냈던 과거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그림은 파리 뤽상부르 공원을 배경으로, 앙리 루소가
기욤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마리 로랑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사실 이 초상화 작품은 실제 모델과 닮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루소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기본적인 데생 실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원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화풍에서 벗어나, 이국적이면서 규범화되지 않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고, 마침 앙리 루소 역시 여기에 포함됩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나름대로 배워가는 재미가 있어요.
미술이 예술의 한 방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 모습을 넘어 사람들이 앓던 병까지 알게 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전공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는 모습과 이를 설명하는 방식도 특이했습니다.
새로운 접근방식을 통해 그림을 풀어 설명해주어 흥미를 가지고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시리즈로 나온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화학자 책또한 구매해서 읽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