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자크 타상/구영옥
더숲/2019.7.8.
수백 수천 년을 사는 나무는 인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옛날에는 오래 사는 나무를 경외심을 갖고 대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단지 이용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 결과 나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심고 베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지구의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 나무를 <나무처럼 생각하기>에서는 우리의 동반자로서 우리의 기본 환경을 제공해주는 나무의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 자크 타상은 ‘시인이자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식물학자로 현재 프랑스 국제농업개발연구센터CIRAD에서 식물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다.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였고, 그의 글쓰기는 과학자적 시각을 넘어 문학과 사회, 경제를 넘나드는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나무처럼 생각하기>에서는 생명의 흐름 속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주요한 위치와 존재 방식에서 드러나는 비범한 상호작용의 힘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가 세상에 뿌리내릴 때 집중되는 나무의 역할도 강조한다. 그러면서 나무를 다시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타성을 발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자신의 객관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고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타성을 말한다. 6장으로 이루어진 내용에서, 나무의 유용성 및 나무의 생존 매커니즘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나무의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나무의 엄청난 수명 앞에서 우리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처럼 나무도 미생물을 가지고 있는데, 이 미생물 조직을 이용해 생명에 필수적인 부분을 충당한다. 그런 면에서 식물과 동물은 차이가 없다. 다만 식물이 더 많은 미생물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생시키는데, 이 휘발성 물질은 나무가 세균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핵심 물질이다. 그런데 이 피톤치드가 림프구, 특히 암세포를 조절하는 면역세포 중 하나인 자연살해세포를 활성화 한다.(p.37)” 꽃의 가장 미묘한 향기는 오직 식물 미생물의 발산과 관련이 있다. 딱총나무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식물 종의 경우에는 박테리아가 직접 발산하는 꽃향기가 특히 중요하다. 곤충과 우리는 꽃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박테리아 향기를 흡입하는 것이다. 꽃과 박테리아의 결합은 진정한 융합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제 딸기 향기가 딸기나무 박테리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박테리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
“토양의 척박함은 식물의 증식에 안정을 주고 구성물 각각이 조화롭게 공생하도록 한다. 모든 식물 생태계에서 식물의 공생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안정은 영양이 부족하거나 다양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결핍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p.55)” 오늘날 풍성하고 울창한 열대우림은 농경지로서 쓰였던 긴 역사와 함께 비 때문에 황폐해진 땅에서 이루어졌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천연두로 인구가 감소한 지역을 숲이 다시 정복했는데, 무지하게도 이를 기억하지 못한 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 숲이 원시림이라고 말한다. 질소를 함유한 양분이나 유기 물질을 과도하게 흡수한 민들레가 모두 차지해버린 초원이 그러하듯, 모든 것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도 단조로움으로 신음하고 있다.
영양분은 균근을 통해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동할 수 있다. 나무는 그렇게 그들끼리 물질적으로 영원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통해 물질과 정보를 옮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그들끼리 소통한다. “뿌리는 균사라 불리는, 지름이 0.01mm가 넘지 않는 미세한 섬유를 통해 지하 세계를 100배까지 탐사할 수 있다. 셀 수 없이 많고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균사 덕분에 나무는 뿌리로 직접 흡수하는 물외에도 다른 것을 더 보충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균근은 질병과 나무를 쇠약하게 만드는 기생충에 대항하는 힘도 길러준다. 뿌리의 이러한 소임의 대가로 나무는 균류가 만들 수 없는 당을 광합성으로 만들어 20-40%를 균류에게 내어준다. 심지어 받는 것 이상으로 보답하는 바람에 이러한 보상이 나무의 성장을 억제하기도 한다.(p.70)” 그러나 재배되는 나무에 비료로 영양분을 공급하면 나무는 공생하는 균류에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아 결국 균류는 곳곳에서 사라져버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업생산량 증산을 위해 투입한 비료성분이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원이니 되는 것이다.
“실제로 물을 빨아들이는 ‘급수펌프’는 뿌리에서 삼투작용에 의해 물이 유입되고 몸통으로 전달하는 물관에서 모세관을 통해 확대되어 잎의 증산 작용이 합쳐진 결과다.(p.92)” 이 급수펌프는 물이 부족할 때에도 항상 가동된다. 수포가 생기면 이러한 충전이 완전히 단절되며 나무는 위험해진다. 수액의 흐름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식물의 수액을 원활히 흐르게 해주는 물관 시스템이 있는 물관부에서 세포자살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물관은 끝을 맞댄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물관이 형성되는 동안, 그리고 죽어가는 순간에 이 물관부 세포의 내벽은 리그닌이 풍부해지는데 이는 나무에 구조적인 저항력을 심어준다. 리그닌은 세포를 서로 달라붙게 하며, 리그닌이 축적되면 세포분열이 멈추고 단단한 조직이 된다. 그 후 이 세포는 텅 비게 된다. 나무의 형성은 계획된 죽음의 산물인 것이다. 나무는 뼈대가 없지만 갈라진 금속 뼈대에 필름을 붙인 것처럼 리그닌 덕분에 딱딱해진 죽은 조직 주변으로 몸집이 성장하고 잎이 무성한 나무줄기가 자란다.
“나무는 씨앗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정박한 뿌리로부터 자유로워져 바람과 새의 부리,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서 공간과 시간의 유연성에 빠져든다.(p.95)” 나무의 여행은 바람과 새, 물과 같은 자연에게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많은 씨앗들이 사라지고 훼손되며 먹히기도 하고 발아에 적당한 장소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의 끝에서 몇몇 나무는 살아남아 완전한 형태에 이른다. 마지막 빙하기 때,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위도, 고도뿐만 아니라 경도를 따라 더 적합한 땅으로 이동했다. 나무의 이동이 씨앗의 분산 속도에 맞춰지도록 최소한 기후변화가 다소 천천히 일어났고 생태계가 충분히 유지됐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상록참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유럽을 다시 점령한 속도는 연간 700m로, 움직일 수 없다고만 생각한 나무치고는 놀라운 속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생물 세계는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나의 나무가 수백 종이나 되는 균류의 균사 실뿌리와 연결될 수 있고 하나의 균류가 다른 종의 나무를 포함하여 10여 그루 나무의 뿌리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p.98)” 해충, 질병, 약탈자는 복합적인 환경 속에서 이 개체에서 저 개체로 쉽게 퍼진다. 그러나 균사조직을 거쳐 식물이 발산하는 항생물질은 같은 지하 조직으로 연결된 다른 식물에 이롭게 작용한다. 그래서 매우 활발히 활동하는 땅의 생물적 증식은 황과 미량원소의 부족을 해소하고 식물을 병원체에 저항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나무가 있는 도심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기온이 2-8°C 정도 낮다. 따라서 나무는 잠재적으로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p.171)” 충분한 물을 보유한 나무는 에어컨 시스템과 같은 역할을 해서 햇빛반사(약20%)와 증산과 발산(50-60%)으로 태양 에너지의 70-80%를 방출한다. 게다가 수증기는 나무 꼭대기에서 응결 되어 마찬가지로 공기를 식힌다. 우리가 나무에게 번식하고 확산하며 정착하는 능력을 넘겨주면 나무는 최악의 상황에 적응할 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공간을 정비하는 방식 때문에 나무는 안전한 이 세 가지 능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우리의 미래는 불안해 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에게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이 책 읽기를 적극 권한다.
아, 이런 책은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책에 담긴 내용이 어렵다거나 읽을 내용이 많은 건 아니다(사실 읽기에 들어간 시간만 두고 보면 금세 읽긴 했다). 아주 어려운 학술적 내용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특수한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좀처럼 눈으로 들어온 문장들이 머리에 남지 않고 빠져 나가버린다. 이유가 뭘까.
책 제목인 “나무처럼 생각하기”를 통해서, 대략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 예상은 됐다. “나무”의 가치라든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의미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추려보겠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책을 펴보면 비슷한 주제로 진행이 된다. 그리고 이런 책이라면 이미 여러 권 나와 있기도 하다.
그 ‘다른 책’에 관한 리뷰에서도 썼듯이, 이런 식의 접근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나무’ 혹은 ‘식물’로부터 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을 배워야 하는 당위를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나무가 우리의 인생에 윤리나, 도덕적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물론 일종의 우화로서 우리는 개미에게도 뭔가를 배우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개미가 일종의 은유적 대상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개미처럼 당장에 땅굴을 파고 깊이 들어가 살라는 말이 아닌 걸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좀 불분명하다. 때로는 비유적이거나 시적인 표현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식물학(과학)을 말하는 듯도 하다. 문제는 이게 일종의 사회학으로 전환될 때인데, 대체로 변수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일방적인 주장(대개는 나무는 훌륭하다는 식의)이 반복된다. 나무에 대한 의인화를 넘어 영웅화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거리감이 급속도로 는다.
요컨대 책의 장르가 모호하다. 차라리 그냥 나무에 관한 에세이에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덧붙였다면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다. 그래도 가끔씩 인상적인 구절들은 몇 개 만날 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 있다. 가이아(gaia) 이론이다. 지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생존에 최적조건을 유지해 주기 위해 스스로 조정하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 자연의 질서를 지켜 스스로 생존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이 자연과의 교감을 하는데 매개체로 쓰인 것도 서로 연결된 나무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나무의 효용은 여러가지이다. 인간에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제공하기도 하고, 우리의 면역체계를 강화한다고 한다. 나무가 발산하는 피톤치드의 효용은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나무와 숲은 기후 온난화와 수자원의 확보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의 주된 관심사는 나무의 이런 과학적인 특성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알아가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만들도록 이끌어가는 철학적 사색이 담긴 과학책이라고 하겠다.
'시인이자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는 나무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인간의 기나긴 여정 동안 인간과 세계를 연결해 준 것은 바로 나무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나무의 서식지자 점령지인 한 행성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나무와 떨어져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된다.
나무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고 인간은 나무에게서 무얼 배워야 할까? 저자는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러 곳에서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지만 쉽게 정리되어 머리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정리해 본다면 인간도 모든 생물처럼 공생는 존재인데 우리는 현재 나무를 인간이 이용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있음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인간과 나무가 공생적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