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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피로 쓴 7년의 지옥.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은 반복된다, 책 읽어드립니다

류성룡 저/장윤철 | 스타북스 | 2020년 2월 20일 한줄평 총점 10.0 (22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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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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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반면교사, 류성룡의 『징비록』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였지만 조선에서는 잊혀진 책!!
죽은 사람의 뼈까지 갈아마시게 한 7년 전쟁은 지옥이었다

『징비록』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책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징비하고 있는가?


이 책을 쓴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진두지휘한 선조 시대 최고의 재상으로, 그를 빼놓고는 임진왜란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순신을 발탁하여 임진왜란을 진두지휘하여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욕을 채우기 위해 당쟁을 벌이는 대신들과, 권력을 지키고자 일생 동안 신하들을 이용하고 백성에게 고난을 준 선조가 나라를 이끌던 이때에 류성룡과 이순신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사실은 가히 천운이라 할 수밖에 없다.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설민석은 『징비록』을 “임진왜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선, 그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 시대에 필요한 반면교사가 되어줄 책”이라면서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모든 보고를 받고 훤히 들여다 본 재상 류성룡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이다. 특히, 조선은 200년간 지속된 평화 때문에, 온 나라 백성이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전쟁이 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없었기에 일본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무탈’하게 살라는 말은 악담이라 생각한다. 잦은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위기를 고통스럽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징비록』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남자 의병 못지않게 여자 의병들의 활약도 있었을 텐데 그 기록이 없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또 “다시 한 번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통 받은 여성의병들에게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징비록』은 두 차례의 왜란을 진두지휘하며 나라가 몰락해 가는 과정과 백성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류성룡이 낙향한 뒤에 기록한 내용이다. 류성룡은 왜란 당시를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후대인들이 같은 잘못을 선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책은 청렴함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전쟁을 진두지휘한 류성룡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류성룡은 어떤 인물인가’를 통해 설명하고, 또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와 ‘류성룡의 자서’를 통해 당시의 역사와 류성룡이 글을 남긴 목적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어 『징비록』과 『녹후잡기』 본문을 싣고, 마지막에 조선시대의 관직과 관청을 정리해 이해가 쉽도록 했다.

왜란을 이겨 낸 걸출한 두 인물 가운데 재상 류성룡은 이제야 빛을 보고 있다. 전체 그림을 보며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하는 수장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지에 대한 우리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까닭이라 생각한다.

목차

책머리에: 오늘에 필요한 반면교사, 류성룡의 『징비록』

류성룡은 어떤 인물인가

류성룡의 일생
전란 직후부터 막바지까지
이순신의 성정 그리고 류성룡과의 인연
전란 중 나온 류성룡의 혁신적인 제안들
류성룡의 성장기와 정치적 입지
징비록을 저술한 그의 말년과 학문 세계
류성룡과 선조의 관계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지난 일을 징계하며 뒷일을 삼가다
재상 류성룡의 참회록
징비록의 생생한 사실 기록
징비록의 간행 역사
징비록이 후대에 주는 메시지
이 글에 덧붙이는 말

징비록 자서

징비록 제1권


01 일본 국사 다치바나 야스히로 다녀가다
02 일본 국사 요시토시 등이 오다
03 우리 통신사 황윤길 등이 일본에 다녀오다
04 명나라를 치겠다는 일본 국서가 말썽이 되다
05 다급한 군비(軍備)
06 이순신의 발탁
07 신립 장군의 사람됨
08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09 영남 여러 성의 함락
10 급보가 연잇고, 신립 등이 달려 내려가다
11 김성일의 논죄 문제
12 김늑의 민심 수습
13 상주 싸움에서 이일이 패주하다
14 서울의 수비와 파천 문제
15 신립이 충주에서 크게 패하다
16 임금이 서울을 떠나 피란길에 오르다
17 왜적이 서울에 들어오고 임금은 평양에 도착하다
18 삼도군(三道軍)이 용인 싸움에서 무너지다
19 신각의 승리와 억울한 죽음
20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다
21 왜적이 함경도로 들어오고 두 왕자가 잡히다
22 이일이 평양으로 쫓겨 오다
23 명나라 사자가 오고, 평양성 수비가 논란되다
24 임금이 평양성을 떠나다
25 왜적이 평양성에 들어오다
26 임금은 정주·선천으로 향하고 민심도 어지러워지다
27 임금이 의주에 이르고, 명나라 구원병을 오게 하다
28 명나라 구원병 5천 명이 먼저 달려오다
29 명나라 구원병이 평양성을 치다가 실패하다
30 이순신이 거북선으로 왜적을 격파하다
31 조호익의 충의
32 전주 방어전과 의병 정담 등의 용맹함
33 평양성을 공격해 보다
34 명나라 심유경의 강화 회담
35 경기 감사 심대의 죽음
36 원호가 왜적을 쳐부수다
37 권응수 등이 영천을 수복하다
38 박진이 경주를 수복하다
39 의병이 일어나서 왜적을 무찌르다
40 이일이 순변사가 되다
41 왜적의 첩자 김순량 등을 잡아 죽이다

징비록 제2권

42 평양성을 수복하다
43 이일 대신 이빈을 순변사로 임명하다
44 명나라 군사가 벽제 싸움에 지고 개성으로 물러서다
45 권율의 행주대첩
46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다
47 심유경의 적극 강화책
48 서울이 수복되다
49 왜적이 바닷가에 진을 치고 진주성을 함락하다
50 임금이 서울로 돌아오고 사신들이 일본에 왕래하다
51 이순신을 하옥시키다
52 명나라 군사의 도움을 받다
53 원균이 패하여 한산도 수군이 무너지다
54 황석산성이 함락되다
55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삼다
56 왜적이 남원성을 함락시키다
57 이순신이 진도 벽파정에서 왜적을 쳐부수다
58 왜적이 남쪽으로 물러가다
59 명나라 장수들의 전황
60 최후의 결전
61 이순신의 인품
62 군신(軍神) 이순신의 계엄

녹후잡기(錄後雜記)

01 임진왜란의 조짐
02 괴이한 일들
03 왜적의 간사하고 교묘한 꾀
04 지세 이용이 승패를 좌우한다
05 성을 굳게 지키는 묘법
06 진주성 포루의 역사(役事) 문제
07 왜적을 막아 낼 방도를 강구하다
08 임진강에 부교를 가설하다
09 훈련 도독을 설치하다
10 심유경에 관한 이런 일 저런 일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2명)

저 : 류성룡 (柳成龍,유성룡)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역 : 장윤철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를 기반으로 중국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중 문화 교류가 꿈이며 또한 전쟁과 혼돈의 중심을 산 지도자 조조의 삶과 재능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하여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전작으로 왕경국 박사와 편저한 『유식의 즐거움』, 『조조 같은 놈』, 『조조 같은 놈 매뉴얼』, 『내 안에 적을 깨워라』가 있으며, 역서로 『징비록』, 편역서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 『조조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조조의 용병술』이 있다. 편저로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심리학의 ...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를 기반으로 중국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중 문화 교류가 꿈이며 또한 전쟁과 혼돈의 중심을 산 지도자 조조의 삶과 재능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하여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전작으로 왕경국 박사와 편저한 『유식의 즐거움』, 『조조 같은 놈』, 『조조 같은 놈 매뉴얼』, 『내 안에 적을 깨워라』가 있으며, 역서로 『징비록』, 편역서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 『조조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조조의 용병술』이 있다. 편저로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심리학의 재발견』, 『조조의 진면목』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 리뷰

이순신이 없었다면 전쟁에 패했을 것이고
류성룡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설가 장강명은 “『징비록』은 정작 일본에서는 『조선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그 시대에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전까지는 잊혀진 책이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한 김상욱 교수는 “도로도 없고, 교통수단도 없었는데 일본군이 부산에서 한양까지 20일 만에 진격했다. 백성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당시의 두려움을 가늠하며 “니체의 말처럼, 『징비록』은 피로 쓰인 책이다. 단순히 읽기를 바라기보다 한 자 한 자, 기억되길 바란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군사 일을 봄놀이 하듯 한다면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수장의 중요성과 사람을 어떻게 써야하는가를 일깨워주는 책


『징비록』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순식간에 나라가 부수어지고, 임금은 살기 위해 도망가 굴욕적으로 무릎 꿇고, 백성들은 잔혹한 죽음을 당하고 굶주림을 참다못해 육신을 목구멍으로 넣는 일까지 발생한다. 류성룡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돌이키지 못할 비극이 발생했을 때 단지 ‘참담하다’ ‘분노를 참을 수 없다’라고 심정을 밝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엄 있는 군주가 아닌 불안에 벌벌 떨며 자리에 연연하는 왕, 역시 자기 이익을 채우는 길이 어디인가를 따라가는 관료들, 방위 사업을 귀찮아하는 백성들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으나, 그럼에도 비극의 가장 큰 책임은 최고 결정권자인 수장의 몫일 수밖에 없다.

류성룡이 『징비록』을 기록한 연유는 과거를 회한하며 죄책감을 덜고자 함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를 탓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류성룡이 지은 제목 그대로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징계하며 앞날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외침의 역사는 비단 임진왜란뿐만이 아니나 정치, 경제, 군사의 중책을 맡아 나라의 요직에 앉았던 인물이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였다는 점에 『징비록』의 가치가 있다. 류성룡은 왜란이 일어난 원인과 전쟁의 실황, 군사 기무의 정리, 여러 사건의 논평 등을 기록하여 국난을 극복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남겨 놓았고, 거기에 더해 당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문물제도까지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을 남겼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전란 발발 이후 7년간의 기승전결과, 그 안에서 오간 대화의 기록들은 전쟁문학의 고전으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하늘이 낸 큰 인물에게 주어지는 신묘함과 그 책임

전란 발발 이전 류성룡이 불길하게 느낀 조짐들은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첨단을 달리는 지금의 시대라도 무시하지 못할 그리고 무시해서는 안 될 자연적 암시는 존재한다. 그처럼 류성룡은 하늘의 기미들과 세간에서 드러나는 기미들을 보고 느꼈다.

그중 하나는 류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에 꾼 꿈이다. 경복궁 연추문에 불이 나 그가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다시 지을 때는 조금 높여 인근 산에 가까운 높이로 해야 한다”라고 말해 준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난 류성룡은 이 불길한 꿈 이야기를 차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다가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온 뒤에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경복궁·창덕궁·창경궁 세 궁궐이 모두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그리하여 임금이 피란하고, 백성들은 처참히 목숨을 잃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라가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고 여기며 자포자기하자, 류성룡은 지난 꿈을 언급하며 “꿈속에서 궁궐의 고쳐 지을 일을 의논하였으니 반드시 나라가 회복되리라는 뜻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류성룡은 평생토록 꾼 꿈 중에 징후를 경험한 바가 많았음을 스스로 밝힌 사실이 있다.

『징비록』 본문에 나와 있듯이 전쟁이 터지기 전 류성룡을 불길하게 만든 일들은 여럿이고 현실은 이미 끝나 버린 듯 비참했지만, 그날의 꿈은 분명 류성룡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현실을 기어이 헤쳐 낼 수 있게 한 중요한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류성룡의 해석처럼 왜적은 결국 물러갔다. 비록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나라의 패망으로 가는 이런 일 저런 일

우리나라는 태평한 세월이 백 년 동안이나 계속되다보니 전쟁을 알지 못하다가, 갑자기 왜적이 쳐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온 국토가 넋을 잃고 말았다. 왜적은 파죽지세로 불과 열흘 만에 서울까지 들이닥쳐서,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해도 전략을 도모할 수가 없었고, 용감한 사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민심 또한 무너져 수습할 길이 없었으니 서울을 빼앗는 교묘한 계책이 달리 필요치 않았다.

한심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용궁 현감 우복룡이란 자는 자기 고을 군사를 거느리고 병영으로 가다가 방어사에 예속된 군사 수백 명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 앞을 지나간단 이유로 모두 죽여 버렸고, 순찰사 김수는 이 행동에 공이 있다고 임금에게 알려서 승진되도록 하였다. 파벌 싸움에 몰두하였던 지사 신잡은 나라를 잃고 임금이 피란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수복할 계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께서는 마땅히 영변으로 떠나셔야 합니다. 그곳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간장이 없는 것이옵니다”라는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말을 하였다.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평복으로 바꿔 입고 도망다니는 다른 관원들과 달리, 경기 감사 심대는 위험한 곳을 피하지 않고 왜적이 알도록 먼저 공문을 띄워 알렸으며 내응할 사람도 모집하였다. 그러다 첩자의 말을 진짜로 믿고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참혹함을 겪은 부끄러운 우리의 지난날을 현실에 결부시켜 다시 살피면서, 앞날을 바로잡는 일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기를 권한다.

“근심하고 두려워하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 뒤에 지난 일을 생각하면 황송하고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비록 볼만한 내용은 없지만 이로서나마 간절하게 충성을 바치려는 나의 뜻을 보이고 또 못난 신하가 나라의 은혜에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한다.” _서애 유성룡

종이책 회원 리뷰 (11건)

구매 징비록(저자 류성룡)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n******n | 2023.01.27
1. 총평
기록의 힘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 후세에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저자의 바램으로부터 작성된 우리 선조의 눈물과 치욕이 생생히 닮긴 역사서

2.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
너희들은 평일에는 앉아서 나라의 녹만 먹다가 이제 와서는 나랏일을 그리치고 백성마저 속이는 구나

3. 교훈
좋은 장수를 가려서 적소에 배치해야 하며,
군을 평시에 잘 훈련시키고 좋은 무기를 확보하여 관리해야 전시에 그 역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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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류성룡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김*호 | 2020.09.02

옛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의미인데요..

그러나 우리는 유독 '일본'을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구요..


이런 모습이 결코 좋은 '현상'만은 아닙니다..

이미 그러다가 '큰코'를 다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임진왜란'때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200년동안 '평화'로운 시대였습니다

'전쟁'이 없었고, '평화'에 길들여 있는 순간..

늘 깔보던 야만족인 '왜'는 오랜 '전란'을 통일하고 

'대륙'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조선'의 '신하'들은 그동안 '조공'을 바치던

'왜'가 감히 '전쟁'을 일으킬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것이지요


물론 '율곡 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했고

'징비록'을 쓴 '류성룡'도 역시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지요.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말 그대로 '반대'를 위한 '반대'...ㅠㅠ


'국익'이 우선이어야 할텐데..

상대파가 '주장'한것은 무조건 '반대'하는 모습이..

그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말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것인지 확인하려 간

두 '통신사'는 하필 '라이벌'파였고

서로 '선조'에게 다른 '의견'을 내는데요..


'카산드라'증후군처럼, '사람'들은 '나쁜소식'보다는 '좋은소식'을 원했고

결국 '조선'은 '파멸'의 길로 향합니다.


'조선'에서 가장 어리석은 왕이라고 하면 보통 '선조'와 '인조'를 말합니다

둘다 '적통'이 아니였는데 말입니다

'선조'는 최초의 '방계'였고, '인조'는 '반정'으로 왕이 되었고

그렇다보니, '정치'를 잘하기보단, 자신들의 '앞길'만 생각하였고

이 '자리'를 빼앗길지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둘다 '아들'들을 '적'으로 생각했고..

'신하'들을 믿지 못했다는 점이 같았던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참...아무리 뛰어난 '명신'들이 있어도

'왕'이 어리석으면 소용이 없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한일들..

'류성룡'이 그렇게 뒷수습을 했음에도

'간신'들은 '전쟁'중에도 그를 공격합니다.


'간신'들은 자신들의 '권력욕'말고는 '생각'이 없는거 같아요

'나라'의 앞길이 어떻게 되든

자신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는지..

마치 '이완용'처럼 말입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피로 쓴 7년의 지옥'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상황을 기록한 작품인데요.


참..아이러니한게 ..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잊혀진 작품이엿고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기록'인데 잊어버렸고 말이지요

그래서 '임진왜란'이후 또 다른 '치욕'의 '역사'를 만난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징비록'을 읽으면서 다신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화'에 더욱 '전쟁'을 대비해야되며..

'지난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거리를 삼가게 한다'는 말을 되새겨야 함을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징비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g********4 | 2020.03.28

징비록,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관한 사료들 중에 가장 생생한 기록이 담긴 책이다.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등 여러 면들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선, 무능한 선조가 서인 황윤길의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적극 대처 주장을 물리치고, 동인 김성일의 말을 듣고 안일한 대처를 한 것이 큰 화를 불렀다. 그러나 류성룡과 이순신이라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고, 많은 의병들도 일어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류성룡이 기록한 임진왜란의 전개와 그 안에 담긴 당시의 분위기들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선조는 항상 자기의 자리와 안위만을 생각하였고 간신들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혁혁한 공을 세운 이순신을 압송하여 가두어 고문하였다. 류성룡은 선조가 피란하여 조선을 버리고 중국에 의탁하려고 할 때, 임금이 나라를 버리면 인심이 와해될 것을 알고 그것을 막는 등 지혜로운 선택을 한 충신이었으나, 류성룡 또한 마지막에 사사로운 일로 억울하게 자리에서 물러가 낙향하기도 했다. 선조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징비’란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거리를 삼가게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징비록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은 경제, 안보, 외교, 국방 여러 모든 면에서 면밀히 살피고 나라를 든든히 지켜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이어 대한민국이 코로나 확진자가 2위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인접한 홍콩과 대만은 선제조치를 잘 취하여 확진자도 적고 사망자도 적다. 몽골 또한 중국과 인접해있으나 철저한 선제조치를 통해 확진자가 외국인 1명이다.

코로나 초기 대응을 볼 때, 현 정권의 지나친 낙관과 섣부른 방심이 마치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동인 김성일의 말을 듣고 안일한 대처를 한 것이 큰 화를 불렀던 것과 같다. 결국 일본은 쳐들어와서 무방비의 조선을 휘집어놓았고, 코로나바이러스도 지나친 낙관으로 대처하던 대한민국을 휘집어놓았다.


2월 25일 기사에는 중국인 유학생 관리비에만 42억을 책정했으며, 3월 9일 기사에는 WHO에 300만 달러(약 36억)를 기부했다.


(대통령, 3월 13일)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 (국무총리, 3월 13일)"이런 데는 마스크 안 껴도 돼요.",,, 거기에 코로나 19 첫 사망자가 나온 날, 대통령 부부가 영화 '기생충' 제작진에게 짜파구리 오찬을 헌정하고 파안대소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76만의 국민청원과 전문가집단인 의사협회, 감염협회 등의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증상 바이러스 고위험군인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국민과 의료진이 써야 할 충분한 양의 수많은 마스크와 방호복들이 또한 중국으로 다 건너가버렸다.


거기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고위 당정청협의회 결과를 브리핑하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대구·경북 최대 봉쇄조치'를 언급했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지금 와서 마치 모든 전파 원인이 대구·경북에 있는 듯, 정부책임을 떠넘기는 듯 하는 ‘프레임’에 분노를 느꼈다. 중국은 왜 안 막고 있으면서 대구경북을 막으라는 말이 나오는지 대구시민으로써 굉장한 불쾌감을 느꼈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 일로 물러났지만, 집권 여당 수석대변인의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발언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외국인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는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은 이번 우한 코로나 사태로 다른 국가들이 중국인 출입금지 하는 것에 대해 이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모든 외국인 출입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문 정권은 중국에 대해서는 굴종적인 모습을 연일 보여주고 있는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인 출입금지 한 것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인은 자기 돈으로 검사, 치료 받는 반면에 외국인은 호텔 등 무료로 검사, 치료,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다. 감염학회장은 전세계 각국을 망라하고 외국인이 일부로 치료받으러 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정부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때, 폐쇄적이고 거짓말을 일삼는 신천지에게 화살을 돌아가더니, 그들은 모든 것을 속이고 은폐하면서 당국의 방역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왔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구상권이나 강제력 행사는 매우 합당한 처사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교회에 모든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단 신천지와 달리 한국 교회는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주일예배를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교회들이 모바일예배나 가정예배로 대치하고 각종 집회와 활동을 중단하고 교회 출입을 금지하는 등 코로나가 확산 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모바일예배와 가정예배로 드리도록 전국교회에 공지한 것은 정부의 강압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 확산을 막고자 하는 자발적인 노력이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주일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에 대해서는,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일반사회 기관보다 더 철저하게 지키면서 교회가 금번 코로나의 확산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왔다(손소독제 배치, 체열 확인, 외부 방문자 통제, 교회 다중 시설의 방역, 공동 식사의 제한, 보건 마스크 착용, 2m 거리 유지 등 솔선수범해오고 있다). 그 결과로 전국 교회 가운데 확진자가 나온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나 언론은 코로나 확산의 책임과 위험이 마치 한국교회가 주일에 예배를 드려 발생한 것 마냥 호도하면서 예배를 범죄시하고 있으며, 한국교회가 코로나 확산을 막는 일에 관심 없고 헌금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조기 종식을 위해 적극 협조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정세균 국무총리는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의 국익을 위한다면서 ‘교회폐쇄, 예배금지, 구상권 청구’ 등으로 위협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의사협회의 권고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여, 조기 진압에 실패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인명 피해에 대해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가 중국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예방수칙을 어기고 드린 예배로 인해 감염되면 교회에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회 감염은 교회 밖에서 감염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근본적 방역 조치를 하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에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유독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교회 예배에만 강행이라는 표현을 쓰고, 매일 사람들이 모여드는 기업, 카페 등에는 강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 연일 교회를 비방하고 때리고 있다. 정부는 위협과 무례한 언동을 즉시 중단하고 한국교회에 사과해야 한다. 교회는 국민의 적도 아니요, 정부의 반대세력도 아니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나라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신앙 공동체이다.


현재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이나 봄나들이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공원, 밀접하게 붙어있는 PC방이나 콜센터, 식당, 카페, 클럽 등 밀집 사업장들은 특별한 제재 없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 정권은 공정과 형평을 잃은 행정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에 대해 모든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방역 당국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감염학회장은 이제는 의료진들이 모두 지치고 있다며, 문 정권을 향하여 이제라도 중국인과 외국인의 입국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전문가와 국민들의 말을 무시하고, 연일 자화자찬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코로나 확산 사태의 위기를 극복한 것은 국민들의 힘이며, 문재인 정권이 자신들이 잘한 덕분이라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의료진들은 지금도 부족한 마스크와 방호 물자를 가지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진들이 마스크 쌓아두고 싶어서 부족함을 느낀다는 망언을 했었다. 국민들 또한 마스크가 부족하여 마스크 5부제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체제 또한 박정희 대통령 때, 1977년 시작된 의료보험 도입으로 본격적 발전을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국민들이 보편적인 혜택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여건이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의 토대가 되고 있다. 게다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박근혜 대통령 때 감염병에 대한 방역 시스템도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국민들과 의료진들의 자벌적이면서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무능한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자화자찬하며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렸다. 나라의 충신인 이순신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의병들, 또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선조는 끝까지 이순신의 공을 시기하며, 질투했다. 지금의 문 정권의 행태가 무능했던 선조와 닮았다는 생각은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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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2건)

구매 징비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s*******5 | 2021.04.26

징비록. 피로쓴7년의기록. 류성룡. 

이제는 너무도유명해진. 징비록입니다.

이북도여러종류의버전으로나온걸로알고있습니다. 

결국이책으로구매했습니다. 

임진왜란을생생히겪었던류성룡이낙향한뒤에기록한내용입니다.

후대인들이같은반복을하질않길바랬던그마음을조금이나마엿볼수있었던것같습니다. 

이순신이없었다면전쟁에패했을것이고

류성롱이없었다면나라가망했을것이다. 이문구처렴딱맞는소개글도없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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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징비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b*******j | 2020.12.20

이 책은 2020년 02월 09일에 출판되었고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최애 작가님인 류성룡 저 장윤철 역의 징비록을 구매하였습니다. 다 읽고 작성한 리뷰이므로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고 피해가시길 바랍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다가 이소설을 줄거리를 듣게되었는데 너무나도 매력적이여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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