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조예은 저
복잡한 감상을 품게 만드는 소설이다. 걸리는 데 없이 휘리릭 잘 읽히긴 한다. 다만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진부한 설정들이 좀 있다. 소설에는 너무나 예뻐서 전교생은 물론 중학생들에게까지 주목과 동경을 받는 어떤 소녀가 나온다. 모두가 아는 그 소녀에게 주인공인 평재만 관심이 없다. 주인공의 곁에는 여자 애들의 정보를 꿰고 다니는 친구가 있고, 그 친구는 주인공에게 어떻게 그 애를 모를 수가 있냐고 경악한다. 그 여자 애는 자신에게 고백한 많은 남자들을 전부 다 차 버렸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주인공과 엮이게 된다. 그 밖에도 조금 뻔한 이야기가 좀 나온다. 축구부 주장을 따라다니면서, 주장이 좋아하는 여자 애를 째려보는 여자 팬 클럽이라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듣는 '학생회장'과 그 학생회장에게 음료수를 따라서 가져오는 1학년 여학생 같은 것. 이미 나는 오래 전에 청소년 시절을 지나오긴 했지만,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이런 소재나 묘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 예쁜 소녀의 별명은 '두 마디'인데, 주인공은 '두 마디'와 몇 번의 대화(사실 대화도 아니다)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두 마디'에게 차인 모든 남학생들에게 복수를 당한다. 작중의 묘사에 따르면 두 마디는 자신에게 고백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싫다는 말로 거절을 고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두 마디와 사귄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니지만, 주인공이 두 마디와 사귀든 말든 두 마디에게 차인 남자들에게 주인공을 괴롭힐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런 부조리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행동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무 부정적인 평가만을 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마음이 복잡해졌냐, 하면 이 소설에는 확실한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학교 생활을 다룬 부분이나 두 마디라는 여학생의 존재가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이 소설에서 좋다고 느꼈던 부분은 거의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온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이산 가족 상봉을 기다린다. 아침마다 산을 오르고 주말마다 봉사 활동을 다니는 그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인이다. 주인공은 할아버지를 따라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고,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집을 고쳐 준다. 독자는 그런 주인공과 주인공의 할아버지를 따라 외롭고 힘든 이들이 사는 동네로 찾아간다. 이 소설의 제목인 <지옥 만세>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이들에게는 삶이 지옥이다. 그들은 살 곳을 잃고 쫓겨나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작고 허름한 방에 살면서도 스티로폼 박스에 채소를 기르는 누군가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치워 버려도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공은 그들보다 안온하게 살아가지만 그들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지옥 같은 세계일지언정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소년은 누군가에게서 함부로 대해지는 소녀를 만난다. <지옥 만세>에는 연대와 공생이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녹아 있다.
호불호가 갈릴 법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확실히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마디'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소녀, 유시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소설 안에는 시아가 갖는 감정의 흐름, 시아의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신비스럽고 아름답지만 강한 소녀, 이런 말로만 수식하고 끝내기에 시아는 아까운 캐릭터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시아와 평재가 너무 힘들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길 바란다. <지옥 만세>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지옥을 헤쳐 나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모두의 삶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누구의 삶도 지옥 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