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은 시나리오, 시나리오의 시작은 시퀀스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시퀀스 어프로치’는 딱딱하고 생기 없는 구조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힘차게 추진할 수 있는, 다이내믹하고도 극적인 엔진을 창조할 수 있게 돕는다. 또한 이 책은 관객이 이야기를 어떻게 경험할 것이며, 그 경험을 더욱 탁월하게 만들기 위해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이 제공하는 명료한 시각은 작가들에게 극적 긴장감의 개념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게끔 만든다. 이는 이야기 속에서 시퀀스 어프로치가 관객들의 기대감을 활용해 그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앤드류 말로우(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에어포스 원] [앤드 오브 데이즈] [할로우 맨])위의 글은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앤드류 W 말로우가 한 말이다. 실제로 앤드류는 이 시퀀스 어프로치를 적극 활용해 [에어포스 원]을 만들어, 잘 짜인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한 궤를 보여주었다. 그는 이 ‘시퀀스 어프로치’ 기법의 전도사이자 숙련자다. 그렇다면 이 ‘시퀀스 어프로치’ 라는 시나리오 작법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아니다. 시퀀스 어프로치는 이미 무성영화시대에 애용되던 영화 구조였다. 영화의 영사라는 개념이 탄생한 1897년 당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셀룰로이드는 천 피트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스풀에 감겨 사용되었다. 초당 18프레임으로 영사되었던 이 필름들은 10∼15분 정도의 지속시간을 지녔다. 이 15분 정도의 단위가 시퀀스이고, 시퀀스가 이어져 하나의 장편 영화를 구성하던 것이 무성영화시대의 극영화였다. 그러던 중 유성영화시대가 도래한 후, 대사를 쓸 줄 아는 극작가들이 할리우드에 투입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전통적 3막 구조가 영화 구조의 새로운 대세가 된 것이다.3막 구조의 신화는 갔다! 3막 구조는 극이 처음-중간-끝으로 나뉜다는 매우 간단하지만 핵심적인 사실을 골자로 한다. 대표적인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법서인 시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는 마치 바이블처럼 많은 영화 창작자들에게 3막 구조의 신화를 전달했다. 그래서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과 지망생, 그리고 수험생들조차 처음-중간-끝을 따지고 외운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습작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중간’이라는 늪지대다. 두 시간 동안 관객의 긴장을 유지시켜야 하는 장편 상업영화에서 처음 30분은 어찌어찌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절정에서 결말부분으로 향하는 30분 정도도 구상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60분이 넘는, 실질적으로 영화의 핵심이 되는 중간에 대해서 3막 구조는 이렇다 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 중간 60분의 늪지대를 헤쳐 나가지 못한 채, 작품의 전체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시퀀스 어프로치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도구이나,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보편적인 두 시간짜리 영화는 8∼15분 길이의, 자체 내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구획인 시퀀스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퀀스들이란 한 마디로 긴 영화의 내부에 자리한 짧은 영화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각 시퀀스는 그것만의 프로타고니스트(중심인물), 긴장감, 액션의 상승, 그리고 결말을 가지는데, 이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지니는 구조와도 매우 흡사하다. 시퀀스와 독립적인 15분 길이의 단편영화의 차이점은 시퀀스는 시퀀스의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과 문제점들은 그 안에서는 부분적으로만 해결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해소는 주로 새로운 문제점들을 불러오게 되고, 그것은 다시 뒤따르는 시퀀스들의 주제로 변한다. 이처럼 영화 내 시퀀스들은 서로서로 굳게 결속된 채 하나의 영화를 이룬다. ‘꿰어야 보배인 구슬과도 같은’ 시퀀스들을 파악하다면, 전체 시나리오의 구조를 짜는 것이 훨씬 수월해지는 것이다.이렇게 장편 극영화가 ‘시퀀스’라는 일련의 짧은 영화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얻게 되는 장점은, 앞서 말한 대로 무정형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2막, 즉 중간의 문제점들이 완화된다는 사실이다. 보편적으로, 두 시간 길이의 영화는 1막 안에 15분 길이 시퀀스 두 개를 지니며, 2막에서는 네 개, 그리고 3막에선 두 개를 갖게 된다. 영화들마다 시퀀스의 길이와 개수에 따른 편차가 존재하긴 하나, 장편 극영화를 구상하고 쓰는 데 있어 이러한 보편적인 배치를 통한 접근 방법은 매우 유용하리라고 본다.풍부한 영화적 인용, 시나리오 창작 노하우가 가득한 총체적 작법서이 책은 단순히 시퀀스 어프로치에 관한 개념만을 설명하는 텍스트는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이고, 채프먼 대학의 부교수로 시나리오 작법 강의를 해온 지은이의 풍부한 해석과 인용은, 기존의 여느 시나리오 작법서 못지않게 영화적 효과와 스토리텔링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특히 많은 시나리오 작법서들이 하나의 기법이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때그때 여러 영화에서 예시를 발췌하는 방식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11편의 영화를 이 대사 혹은 행위가 어떤 기능을 하여 다음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식으로 분석하고 있다. 마치 시나리오 전문 강좌에서 하나의 영화를 놓고 강의를 하듯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하게 분석을 해가는 방식을 택한다. 지은이는 네 가지의 주된 스토리텔링의 기법들(텔레그래핑/따라다니는 원인/극적 아이러니/극적 긴장감)과 이미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시나리오 집필상의 기술들(엑스포지션/준비/요약의 신/간접적 접근/복선/서브플롯/여파의 신/캐릭터 아크/반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내용 또한 다수의 시나리오 작법서에서 드문드문 언급이 되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가 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또한 영화사적으로 탁월하였던 작품들 11편을 시대 순으로 골라 분석을 함에 있어, 그 작품들의 선정에 있어서도 이 스토리텔링의 기법들을 강조하여 설명하기 용이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야기 구조상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지닌 영화들을 고심해 고른 흔적이 엿보인다. 시퀀스 어프로치로 만들어졌던 할리우드 고전 영화 [모퉁이 가게]와 [이중배상]부터, 시나리오 상태에서 별다른 가감 없이 영화로 구현되었다는 장점이 있는 [토이 스토리], 다른 작법서에도 많이 인용되지만, 시퀀스 어프로치만의 시각으로 분석해 새롭게 다가오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졸업],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그리고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까지…. 각각의 영화들이 알차게 풀어내는 그들만의 시퀀스 어프로치와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독자들이 영화의 감상을 마친 후 이 책을 탐독한다면, 각 작품의 구조와 작가의 의도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시나리오 작가며 감독이 직접 번역하다 “반면 영화를 다루기 쉬운 10~15분 길이의 시퀀스로 나누고, 그 시퀀스들이 모여 영화 전체를 이룬다는 개념은 옮긴이에겐 매우 신선한 패러다임이었으며, 그동안 절감하던 ‘더 좋은 시나리오 쓰기’에 관한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했다. 작품이 15분 길이의 시퀀스로 나누어지고, 그 시퀀스 하나하나가 전체 영화 속에 속하긴 하였으나 마치 독립된 단편영화처럼 다루어지기 시작하자 시나리오는 더 이상 거대해 보이지가 않았고,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할 방향이 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또한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스스로의 작품에 가졌던 또 다른 불만 중 하나는 ‘어째서 나의 신들은 뭉쳐진 덩어리 같지가 않고 각각 따로 노는 부스러기 같을까?’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신과 신들의 인과관계가 강력하지 않고 그 신들 안에서 집중하는 내용이 제각각이니 신들의 위치를 임의대로 재배치했을 때에도 전체적 내용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따라서 부스러기처럼 '뭉쳐지지 않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 불만조차 작업에 시퀀스 어프로치를 적용하고 나면서부터 깨끗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 옮긴이의 말 중김현정 감독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당시로서는 대작 영화였던 [이중간첩]의 감독으로 데뷔한 주목받은 신예였다. 서울예대 영화과와 영화 아카데미(14기)를 졸업했고, [공공의 적]과 [이중간첩]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던 그였지만, 항상 더 나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 갈증을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다. 좋은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의 초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김 감독은, 새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틈틈이 대형서점 외서 코너에 들러 원서로 된 할리우드 최신 시나리오 작법서를 탐독하곤 했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의 원서인 《SCREENWRITING : The Sequence Approach》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며 느꼈던 부족함과 아쉬움을 완벽하게 없애주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자신이 느꼈던 시퀀스 어프로치의 크나큰 장점과 노하우를 국내 영화계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소개하여 더 나은 시나리오, 즉 더 나은 영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