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본 적 없고 생각하기도 싫지만 한 번 용기를 내어 상상해보기로 한다. 오늘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었을 때조차 곧 죽음이 들이닥치리라 믿었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매우 당황할 것이 뻔하다. 주어진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그 천금 같은 (아니, 돈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짧은 여생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죽음’에 관한 오래되고 반복된 나의 사유는 죽음의 문 앞에서가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져서 강 건너 불구경한 셈이다. 하지만 죽음과 직면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철학자는 어떨까? 철학 교수이자 철학 평론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급하게라도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진지한 생각의 유희에 빠진 후 스스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바로 글을 쓰기로 한다. 과연 철학자답다. 글쓰기를 선택하기로 한 것은 저자에게는 죽음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저자의 기록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교훈이다.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주어진 시간의 종말을 앞두고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글을 써야겠다. 누군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은 내용이다. 죽음을 앞두고 명예욕에 휩싸여 자신(의 사상)을 포장하는 일은 헛된 일이다. 저자가 철학자답게 정직하게 ‘죽음 상상 게임’에 임한다면 그 어떤 가식도 위선도 없으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많은 부조리와 역설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각할 수 없는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소멸을 확신하면서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 아는 척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 이런 모순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 얽힘 속에서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본문 p.85)
저자 스스로 거품을 터트렸으니 비판도, 동의도 없이 그저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행복한 부지함과 무력한 앎. 분노라는 부질없는 감정.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행복. 수많은 생각과 욕망이 공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죽음 이후에 대한 무지. 소멸과 계승으로써의 삶과 죽음. 무지에 대한 찬양. 결코 닿을 수 없는 진리. 사랑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 증오가 세상을 지배하지도, 모든 것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면서, 증오를 수용하는 법. 빛과 어둠의 공존. 인간의 위대한 광기. 무한한 자연 앞에 먼지에 불과한 우리의 불안. 그리고 저자의 개인적인 유언과 남기고픈 묘비명.
죽음 앞에서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 같지만 사유의 대상들은 실로 철학적이다. 그러나 표현 방식은 철학적이기보다 차라리 문학적이다. 함축과 은유, 생략된 근거로 가득 찬 글에 논리적 분석을 통해 접근하면 궤변 충만한 아무 말 대잔치로 읽힐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죽음을 한 시간 앞둔 철학자의 글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해야만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친절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리저리 곱씹어보면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분명 지혜를 사랑한 철학자임이 분명하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다는 것 >이다. 예상했던 대로 철학자인 저자는 ‘죽음’을 앞두고 끝까지 ‘삶’을 말했다. 사후의 삶을 없다고 가정하고 삶의 끝자락에서 (의사는 부를지언정) 성직자는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실로 철학자답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침묵하는 것. 그러나 그것이 철학의 한계인 것 같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외면’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증명될 수 없으므로 ‘요청’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비록 철학자의 머리를 물려받지 못한 나이지만 철학자의 피는 흐르기에 죽을 때까지 철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나를 구원할 수 없다.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으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내겐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다행이 인지능력이 남아 있어 종종 아들에게 ‘내가 좀 더 살 수 있을까? 살면 손녀의 대학 졸업식만이라도 보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데 남은 시간은 너무나도 다르다. 아버지의 말년을 보면서 시간의 소중함,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면서 언젠가 그 길을 따라 가야할 내 자신에게도 반문하곤 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줄어 가는데 나는 무엇을 얻어 가는가?’, 두 딸들에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지만 정작 나 역시 큰 차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내게 남은 삶이 한시간뿐이라면>은 삶보다 죽음이라는데 더 방점을 두고 삶을 바라보는 계기를 안겨준 책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느끼는 삶의 소중함,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남다를 것이다.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더 체감하지 않을까? 책 제목처럼 삶의 마지막 숨결이 한시간 앞으로 다가 왔다면 인생에 있어서 더 비중을 두었던 모든 욕망, 불안, 근심은 무의미해지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앞두고서야 숨 가쁜 일상에 매몰된 우리 인생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왜 행복해야 했고 사랑이 중요한지를 더 깨닫게 될 것이라고 노년의 철학자는 담담하게 설명해 나간다. 마치 죽음을 곧 앞두고 있는 것처럼, 모든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오랜 사색과 성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하루하루를 그저 연명해 가는 반복되는 패턴 속의 삶 속에서 인생의 소중함마저 퇴색해 가는, 나 같은 현대인에게 인생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고 본다.
여러가지 상황에 의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삶에 대해, 일상에 대해, 일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특히, '죽음'이라는 것은 계획을 세울수도 없는 것이기에 나와는 상관없는듯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고, 무덤덤히 언젠가는 이란 생각뿐이었지만 인생에서 있어서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허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에 가치와 본질의 의미해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오늘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무엇을, 어떤일을, 마지막 시간에 할 것인가'의 질문을 시작으로 삶과 죽음, 분노, 행복, 무지, 진리, 사랑과 증오, 빛과 어둠에 대해, 마지막에는 묘비명에 쓰고 싶은 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길 권한다. 저자는 남은 시간에 글을 써서 이 세상에 오래도록 남기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이러한 생각들이 결국은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좀더 행복하게 살수 있는 있게 할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의 문제에 사실이란 없습니다.
죽음은 오로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안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점점 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무관심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놓치게 합니다.'
죽고자 죽음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살고자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삶이 유한함을 생각하고 중요한 것에 대해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해볼수 있게 끌어주는 책인듯한다. 세세한 목표, 계획이 아닌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생활에 대해 깊이 느끼고 깨달을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내게 남은 삶이 한시간 뿐이라면...' 주변의 모든것을 다 정리하고 버리고, 나를 잘 잊을수 있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부 편지를 쓸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