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피 램킨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쿠피는 파이브엔즈 침례교회의 집사다. 스포츠코트라는 별명을 가진 늙은 집사 쿠피는 1969년 9월의 어느 흐린 오후, 브루클린 남부에 있는 커즈웨이 빈민주택 단지 안에 있는 광장으로 당당히 걸어 나와 마약중개업자인 열아홉 살 딤즈 클레멘스의 얼굴에 구식 38구경 콜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늙은 스포츠코트가 무자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악랄한 마약 딜러를 왜 쏘았는지를 두고, 단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분한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야위었지만 강단 있고 웃음이 많은 갈색 피부의 스포츠코트는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과 가래를 달고 살면서도 늘 껄껄거리고 술을 마셔대며 커즈하우스에서 그의 칠십 일평생 중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고, 단지 주민들로 이루어진 야구팀의 코치로서 지난 십사 년 동안 야구팀을 이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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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코트의 친구들은 그런대로 그를 봐주며 넘어갔고, 이웃들은 모르는 척했다. 파이브엔즈 교회 식구들은 어깨를 한 번 들썩해 보이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럴 수도 있지. 스포츠코트가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고 치자. 커즈하우스에 사는 사람들 모두 조금씩은 이상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5동에 사는 도미니카 출신의 미녀 네바 라모스만 해도 그렇다. 자기 방 창문 아래 서 있는 남자의 머리에 컵에 담겼던 물을 부어버리지 않았는가. 단지 운이 나빠 그녀의 창문 아래 서 있었던 것 외에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7동에 사는 더브 워싱턴은 어떤가. 비탈리 부두에 있는 폐공장에서 자면서 겨울마다 매번 식료품점에서 도둑질을 해서 잡혀가곤 한다. 그리고 범범은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파이브엔즈 교회 뒷벽에 그려진 흑인 예수의 그림 앞에 서서 전남편에게 벌을 내려 주십사 큰 소리로 기도한다. 이왕이면 주님께서 그의 중요한 방울 두 개를 불에 태워버리시거나, 프라이팬에 지져서 작고 납작한 감자 팬케이크처럼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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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맨해튼에서는 정확한 시간표에 맞추어 버스가 다녔고, 전등이 꺼지는 법이 없었으며, 백인 아이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신문 일면에 실렸다. 그런가 하면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그럴듯하게 각색된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성황을 이루었고, 백인 작가들은 이러한 소재들로 부를 얻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포기와 베스, 퍼얼리 빅토리우스.
백인들은 하는 일마다 여러 분야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점점 거대한 눈덩이처럼 성장했고, 위대한 미국의 신화, 빅애플, 잠들지 않는 도시와 같은 수식어들이 유행했다. 반면에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들은 아파트 청소나 쓰레기 처리를 생업으로 삼거나, 음악 활동을 하거나, 교도소의 빈방들을 채웠다. 그들은 그렇게 투명 인간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지역사회의 한 계층으로 주어진 유색인종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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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페인트의 납 성분 냄새가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스포츠코트를 떠올리는 딤즈의 마음에 분노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혼란스러웠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커즈에 사는 사람 중에 딤즈에게 총을 쏴서 득이 될 것 없는 유일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스포츠코트였기 때문이다. 굳이 딤즈에게 본때를 보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커즈하우스에서 딤즈의 말에 반박을 하고, 지적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 농담을 걸거나, 속여 먹거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늙은 스포츠코트뿐이었으니까. 스포츠코트는 그의 야구 코치였고,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이제 완전히 주정뱅이 늙은이가 됐어. 이런 생각을 하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게 문제가 됐던 적은 없었잖아. 스포츠코트는 딤즈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얼마쯤은 취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언제나 한결같다는 사실이었다. 스포츠코트는 불평하거나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다. 남을 비판하지도 않았다. 무심한 편이었다. 늘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고, 딤즈는 그래서 스포츠코트가 좋았다. 딤즈가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게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평을 끊임없이 해대는 사람들이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평을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기다린다. 스포츠코트는 그렇지 않았다. 단지 야구와 술을 좋아했다. 그뿐이었다. 스포츠코트는 하나님의 일을 했다. 하지만 딤즈가 보기에 그건 그의 아내 헤티 때문이었다. 그 시절에 딤즈는 스포츠코트와 자기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둘 다 갇혀 있는 신세였다고 할까.
--- p.109~110
“유난히 치우기 힘든 오물이 있다고 하셨죠.” 지 자매가 말했다. “맞아요. 오물을 치우는 것이 저의 임무였어요, 경관님. 청소를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오물을 묻히면서 일을 하죠. 하루 종일 오물을 찾아다니며 치우고요. 그래서 오물들은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들이 제게 ‘나 여기 숨어 있어. 와서 찾아봐’ 하고 신호를 보내지는 않죠. 제 발로 모두 찾아다니며 치워야 해요. 그렇지만 저는 오물들이라고 해서 혐오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존재 자체를 미워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물이 있으니까 제 일도 있는 거고요. 어디서든 오물을 치움으로써 저는 누군가를 위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거죠.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요 온갖 나쁜 사람들을 찾아다니지만, 그들이 ‘나 여기 숨어 있소. 와서 잡아 봐'’라고 손짓하지는 않으니까. 당신이 그들을 찾아다니며 잡아내든, 유인하든 해야 하죠. 그렇게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죠. 그러니 어찌 보면 당신과 나는 결국 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오물을 치우는 일. 누군가 살아간 흔적들을 추적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실수들을 찾아서 정리하죠. 물론 누가 되었든 그가 잘못된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문제라거나, 골칫덩어리 또는…… 오물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옳은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죠.”
--- p.145
엘레판테는 자기가 열어볼 수 있는 창고 공간들을 모조리 뒤져 보았다. 고객의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깊이,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거버너가 아버지에게 맡겨두었다는 보물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억의 창고 역시 낱낱이 들춰보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해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아버지가 여러 차례 말했던 건 기억하고 있다……. ‘거버너란 사람을 기억해라. 이상한 시를 암송할 거야. 그러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그렇지만 십 대 시절에 누가 그렇게 자기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단 말인가? 어차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준 것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신음을 내는 정도로 암시나 힌트만 던져주는 식이었는데 말이다. 생각을 말로 꺼내놓는 것은 아버지의 세계에서 몹시 위험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정작 말로 꺼내놓을 때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 메시지에 담긴 구체적인 단서들은 무엇이었을까?
--- p.200
“딤즈는 너무 고지식해요. 자기가 마치 경찰인 것처럼 행동한다니까요. 스포츠코트가 총을 쏘기 전까지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약을 팔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인들한테는 약을 안 팔고요. 어린아이들한테도 안 팔아요. 그리고 교회 식구들한테도 안 팔려고 해요. 더구나 교회 근처에서는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교회 문 앞에서 잠도 자지 못하게 하죠. 그리고 어떤 이유이건 자기 여자 친구에게 손찌검하는 녀석에게도 약을 팔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도 하려고 들고요. 나약해져 가지고, 다시 야구를 하겠다는 소리를 해가며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하려 드니까 말이죠.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머지않아 워치하우스에서 우리 구역을 차지하려 들 거예요. 시간문제죠.”
--- p.270~271
”모든 면에서 관계가 있죠.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그 성탄 클럽 모금뿐이니까요. 우리는 마약 중개업자들이 집 앞에서 마약을 팔아도 막지 못해요. 시 정부가 우리 아이들을 형편없는 학교에 보내게 하는 것도 막지 못하고요. 뉴욕시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는 것도 막을 수 없어요. 군대에서 우리 아들들을 베트남전에 보내는 것도 막을 수 없죠. 특히 베트콩들이 백인 병사들의 발가락을 잘라 걷지도 못하게 만들고부터는 더 그렇죠. 하지만 5센트, 10센트씩 모아서 성탄절에 다만 10분이라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건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죠.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죠?“
--- 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