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2일 - 맑음. 아침에 출발하여 바로 당진 선창(唐津船倉, 통영군 산양면)에 이르니 왜적의 배 20여 척이 나열하여 정박하고 있었다. 둘러싸고 싸웠는데 큰 배 한 척은 크기가 우리나라 판옥선만 하고, 배 위에 꾸민 누각은 높이가 두 길은 됨직했다. 누각 위에는 왜장(倭將)이 우뚝 버티고 앉아서 끄떡도 하지 않았다. 화살과 크고 작은 승자총통(勝字銃筒)을 비 오듯이 어지럽게 마구 쏘아 댔다. 왜장이 화살에 맞아 떨어지자 여러 왜적들은 일시에 놀라 흩어졌다. 여러 장병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사격해 대니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자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남김없이 다 섬멸해 버렸다. 이윽고 왜적의 큰 배 20여 척이 부산으로부터 바다에 대열을 지어 들어오다가 우리 군사들 바라보고는 도망쳐서 개도(介島, 통영군 산양면 추도楸島)로 들어가 버렸다.
--- p.38, 「임진년 6월 초2일 일기」중에서
26일 (정미) - 맑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했다. 원 수사가 왔다. 이윽고 우영공(이억기)·정 영공(정걸)이 한꺼번에 모였다. 순천 부사·광양 현감·가리포 첨사는 즉시 돌아갔다. 흥양 현감이 오기에 제사 음식을 대접했다. 원공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하므로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흉측한 말을 함부로 지껄여 대니 해괴하다. 낙안 군수가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이 명나라 조정에 올린 글의 초안과 명나라 사람이 낙안에 당도하여 기록한 것을 보내왔는데 통분함을 이길 수 없었다.
--- p.92, 「계사년 8월 26일 일기」중에서
초5일 (계미) - 새벽에 겸사복(兼司僕, 윤붕尹鵬)을 당항포로 보내어 적선을 쳐서 불태웠는지를 탐지하게 했더니 우조방장 어영담이 급히 보고하기를 적들이 우리 군사들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밤을 타서 도망 가고 빈 배 17척을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다고 하며 경상 수사의 보고도 같은 것이었다. 우수사가 찾아왔을 즈음 비가 크게 내리고 바람도 몹시 사나워 즉시 그의 배로 돌아갔다. 이날 아침 순변사에게서도 토벌 독려 공문이 왔다. 우조방장 및 순천 부사·방답 첨사·배 첨사(배경남裵慶男)도 와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원 수사가 배에 오자 여러 장수들은 각각 돌아갔다. 이날 저녁 광양의 새 배가 들어왔다.
--- p.119, 「갑오년 3월 초5일 일기」중에서
초8일 (신축) - 맑음. 나라의 제삿날(세조의 제삿날)이다. 이날 새벽 일찍 식사를 하는데 고기 반찬을 차렸으므로 먹지 않고 도로 내어 보냈다. 아침 식사 후 길을 떠나 감목관 있는 곳으로 가니, 감목관 및 영광 군수가 같이 있었다. 국화 떨기 속에 들어가서 술을 몇 잔 마셨다. 저물어서 동산원(東山院, 무안군 현경면 옹산원翁山院)에 도착하여 말에 먹이를 주고 말을 재촉하여 임치진(臨淄鎭)에 가니, 이공헌(李公?)의 8살 난 딸이 그의 사촌의 계집종 수경(水卿)과 함께 와서 인사했다. 공헌(公?)을 생각하니 애처로움을 이길 수 없었다. 수경은 내버린 아이를 이담(李琰)의 집에서 얻어다 기른 아이였다.
--- p.316, 「병신년 9월 초8일 일기」중에서
19일 (기묘) - 맑음.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호곡(號哭)했다.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천지간에 나와 같은 일이 어디에 있으리오. 어서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뇌(?)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에 하직을 고하고 가다가 금곡(金谷, 연기군 광덕면) 강 선전(姜宣傳)의 집 앞에 이르러 강정(姜晶)·강영수(姜永壽) 씨를 만나 말에서 내려 곡을 하고 갔다. 보산원(?山院, 광덕면)에 이르니 천안 군수가 먼저 와서 냇가에서 말을 내려 쉬고 있었다. 임천 군수(林川郡守) 한술(韓述)이 중시(重試,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다시 보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오는데 앞길을 지나가다가 내가 간다는 소식을 듣고 들어와서 조문(弔問)을 하고 갔다. 아들 회·면과 조카 봉·해·분·완 및 변 주부(卞主簿, 변존서)가 함께 따라왔다. 천안(天安)의 원인남(元仁男)도 찾아왔기에 작별하고 말에 올랐다. 가다가 일신역(日新驛, 공주군 장기면)에 이르러 잤다. 저녁에는 비가 뿌렸다.
--- p.330, 「정유년 4월 19일 일기」중에서
18일 (정미) - 맑음. 새벽에 이덕필과 변홍달이 와서 전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야간 기습을 받아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충청 수사 및 여러 장수 등 다수가 해를 입어 수군이 대패했다고 하니 들려 오는 것마다 통곡이 나오는 것을 이길 수 없다. 이윽고 원수가 이르러서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리오 하면서 오전 10시경까지 이야기했으나 뜻을 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연해안 지방으로 가서 듣고 보고 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고했더니 원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나는 송대립·유황·윤선각·방응원·현응진·임영립·이원룡·이희남·홍우공과 더불어 길을 떠나 삼가현에 이르렀더니 삼가 현감이 새로 도임하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치겸(韓致謙)도 와서 오래 이야기했다.
--- p.363, 「정유년 7월 18일 일기」중에서
15일 (계묘) - 맑음. 조수(潮水)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는 명량(鳴梁)이 있는데 수효 적은 수군으로는 명랑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는 까닭에서였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기를, 병법에는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했고, 또 한 사람이 길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지금 우리를 두고 이름이라, 너희 여러 장수들은 각각 조금도 영을 어긴다면 즉각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두 번 세 번 엄중하게 약속했다. 이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어떠한 신인(神人)이 지시(指示)하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크게 이기고, 이와 같이 하면 지게 된다는 꿈이었다.
--- p.377, 「정유년 9월 15일 일기」중에서
초2일 (갑인) - 맑음. 오전 6시경에 진군했는데 우리 수군이 먼저 출항하여 12시까지 서로 싸워 적을 많이 죽였다. 사도 첨사(황세득黃世得)가 탄환을 맞아 전사하고, 이청일(李淸一)도 죽음에 이르게 되고, 제포 만호 주의수(朱義壽)·사량 만호 김성옥(金聲玉)·남해 현령 유형(柳珩)·진도 군수 선의문(宣義問)·강진 현감 송상보(宋尙甫)는 탄환을 맞았으나 죽지 않았다.
초3일 (을묘) - 맑음. 도독이 유 제독의 비밀 서신을 받고 초저녁에 나가 싸워 밤 12시경에 이르도록 쳐부수었다. 사선(沙船, 명나라 배) 19척과 호선(?船, 명나라 배) 20여 척이 불타서 도독이 엎드러지고 넘어지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안골포 만호 우수(禹壽)가 탄환을 맞았다.
초4일 (병진) -맑음. 이른 아침에 배를 출항하여 적을 공격했다. 종일 맞붙어 싸웠더니 적들이 허둥지둥 달아났다.
--- p.409, 「무술년 10월 초2일, 3일, 4일 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