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앞의 소설에서는 부인을 다소 억척스러운 여인으로 표현해봤습니다. 기록에 억척스럽다고 나오지는 않지만, 상당히 현명하고 용맹스럽고 민첩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정조 때 만들어진 『이충무공전서』에서는 부인 상주 방씨에 대해 “상주 방씨가 이순신의 부인인데, 어릴 적부터 영민한 것이 어른과 같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화를 소개하죠.
상주 방씨가 열두 살 때 화적들이 집 앞마당까지 들어오자 아버지 방진이 화적들에게 화살을 쏘았습니다. 방진은 보성군수를 역임한 사람인데, 무인 출신이라 활을 잘 쐈던 모양입니다. 화살로 화적떼들을 백발백중 맞히다가 화살이 동나버리자 딸에게 화살을 더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집종이 이미 화적들과 내통해서 화살을 몰래 다 훔쳐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던 겁니다. 그때 상주 방씨가 다락에서 “여기 있습니다!” 하고 소리치며 베를 짤 때 쓰는 대나무를 한 아름 안아다가 던졌답니다.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안 그래도 방진이 활을 잘 쏴서 겁을 먹고 있었던 화적들이 화살이 많은 줄 알고 도망쳤던 거죠. 위급한 상황에서 굉장히 영민하고 민첩하게 행동한 소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용감한 소녀가 이순신을 남편으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물론 이순신이 나라를 구한 성웅이기는 하지만 부인 입장에서 그리 좋은 남편은 아니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러가지 남편의 덕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집안을 꾸려나가는 것이 남편, 가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이순신은 이 부분이 부족했지요.
---「장면 2. 사모하는 서방님 _ 부인 상주 방씨가 바라본 이순신 p40」중에서
이렇게 일본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쉽게 목표를 향해가고 있었는데, 여기서 엄청난 복병을 만납니다. 일본이 임진왜란에 실패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선조의 비겁함이었습니다. 일본이 빠르게 올라오니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의주로 도망가 명나라로 망명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의 전투 스타일을 보면 아무리 작은 성의 성주라도 끝까지 성과 함께합니다. 할복을 하든 항복을 하든 끝까지 성을 지킵니다. 그리고 성에 살던 백성들은 무조건 새로운 성주에 충성하죠. 일본은 조선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쳐버렸으니 일본이 당황한 겁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게 뭔가 싶었겠죠. 임금을 사로잡아야 백성들을 동원하고 군량미도 모으고 할 텐데, 임금이 없으니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머뭇머뭇하던 이 시간이 조선에는 골든타임이 된 거죠. 이때 다시 군대를 정비하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조의 비겁함이 나라를 살리게 된 겁니다.
---「피곤한 스타일이 납시었다_녹도 만호 정운이 바라본 이순신 p94」중에서
류성룡과 이순신은 어렸을 때 함께 자란 벗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순신을 눈여겨봤던 류성룡이 지방에서 말단직을 떠도는 이순신을 끊임없이 요직에 천거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임진왜란이 벌어지기 1년 전에 작은 고을의 현감이던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임금인 선조가 내린 결단이었죠. 당시 임금에게 간언하는 기관인 사간원은 이 승진을 두고 엄청난 반대를 합니다. 어떻게 현감이 한 번에 좌수사가 되느냐면서요. 오늘날로 따지면 시골 군수가 갑자기 별을 단 장군이 되는 것이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사실 선조는 이순신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류성룡에게 이순신에 대해 묻습니다. 서울 사람인지, 글은 잘 아는지 등등. 이 정도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파격 승진시킨 겁니다. 결국 류성룡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만든 셈이죠. 끊임없이 요직에 천거하고 임금에게 간곡히 부탁해 승진시킨 것을 보면, 류성룡과 이순신 둘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친하다고 무조건 추천할 수는 없잖아요. 류성룡은 이순신의 강직한 됨됨이와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나랏일을 하게 된 시기까지 진심으로 이순신의 성공을 바라고 그의 좌천을 안타까워했던 최측근이 바로 류성룡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신_류성룡이 바라본 이순신 p115」중에서
요즘 들어 아바마마는 이순신에 대해 특히 예민하게 생각하신다. 이순신의 수군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이기면서 크게 기울었던 상황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바마마도 인정하고 고맙게 여기시는 것 같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전쟁이 뜸한 틈에 이순신이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아바마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왜군이 재차 침입하는 것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고, 전선을 만들고, 농사를 지어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민심이다. 이순신에 대한 백성의 신뢰가 아바마마에 대한 신뢰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순신이 있는 곳이 왕이 있는 한양보다 안전하다며 벌써 터전을 버리고 이순신이 있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백성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아바마마는 이순신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바마마의 걱정을 달래드리곤 했다. 이순신은 나라를 구한 용장이며, 나라와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우직한 자라고 말씀드렸다. 또한 이순신이 해안의 방비를 튼튼히 하면서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면 조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만큼 나는 이순신을 믿고 있기도 했다. 왜군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상황에서 이순신은 조선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 장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바마마의 근심이 사실이 되는 것일까? 도대체 이자의 속셈이 무엇이냔 말이다. 아바마마의 걱정을 들으면서도 나는 이순신을 믿었다. 하지만 그것이 큰 오산이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이자는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이 나라에 큰 해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건방진 인물이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건방진 장수로다_광해군이 바라본 이순신 p138」중에서
이순신이 혈혈단신으로 용맹하게 싸우니 휘하 장수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이때 이순신의 배에서 호령하는 깃발인 초요기가 올라가니 중군장 김응함의 배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순신이 부하 안위에게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가면 어디서 살 것이냐?”며 호통을 칩니다. 이순신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든 안위가 싸움에 나서면서 난전이 벌어집니다. 김응함에게도 “너는 중군장이 되어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외칩니다. 조선의 전선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도 13척과 70여 척의 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죠. 조선군은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웠고, 적선 31척을 격침 시키고 나머지 배는 거의 초토화시켜버렸습니다.
이때 하늘의 도움도 받게 됩니다.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시간이 되자 바다가 한순간 고요해졌습니다. 그러다 썰물이 되면서 물살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하자 왜선들은 들어왔던 쪽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도와주려고 뒤에서 들어오던 적선과 밀려나가는 적선이 서로 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된 겁니다. 이때 구루시마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이순신 장군이 건져올려 목을 벤 후 배 위에 걸었다는 것 아닙니까. 뒤에 있던 1백여 척의 적선은 앞에는 구루시마의 목이 걸려 있겠다, 저 너머에는 어선인지 전선인지 모를 배들이 가득하겠다, 이순신은 불을 뿜으며 싸우고 있겠다, 무시무시한 거죠. 설상가상으로 물살이 반대쪽으로 흐르면서 집에 가라고 재촉하니, 안 되겠다 싶어서 후퇴를 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사이코 이순신(最高, さいこう) p184」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