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괴상한 칵테일처럼 뒤섞인 내 신경다양성이 축복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경다양성은 내 삶의 강력한 무기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정신적 도구가 되어 나를 무장시켜주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다르게, 편견 없이 본다는 뜻이었다. 불안과 ADHD는 내가 ‘스카이콩콩’을 타듯 지루함과 강력한 집중 상태를 넘나들면서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며, 내가 처한 각각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결과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해주었다. 나의 신경다양성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관련된 질문을 수없이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그 질문들에 답할 능력도 주었다.
---「들어가는 말: 내가 이 행성에 온 이유,p.13」중에서
데이터를 분류해서 의사결정나무를 세울 때에야 비로소 당신 앞에 펼쳐진 선택지들을 탐색할 방법을 볼 수 있고, 의미 있는 결과(예를 들면 ‘그것이 나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해줄까’)에 근거한 의사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네’ 혹은 ‘아니요’ 같은 이분법적 결정보다 항상 더 복잡하다. 우리는 즉각적인 선택 기준보다 더 깊이 파고들어서 의사 결정을 앞둔 우리의 감정, 야망, 희망, 공포 같은 데이터를 발굴하고, 그것들이 모두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특정 선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거나 가져다주지 못할 것을 더 현실적으로 볼 수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한 기본 원칙을 근거로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우리 주변에 흩뿌려진 상자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일은 줄인다. 이 상자들은 그저 우리의 감정적 응어리와 즉각적인 본능을 나타내며, 이렇게 쌓여있는 상자 속에는 행동하는 법에 관한 사회적 ‘의무’(“젊었을 때 세상을 돌아다녔어야 했는데”, “해외에서 위험한 직업을 갖는 대신 정착했어야 했는데” 등등)가 종종 들어있다. 정신 건강의 변동성은 자연스럽게 이런 상자들을 열어젖히기 때문에 종종 승산 없는 싸움으로 여겨지곤 한다.
---「CHAPTER 1: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p.41」중에서
엄마와 방 청소 문제로, 그리고 엉망이라는 상태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언쟁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어수선한 내 왕국은 게으름보다는 불안의 결과였다. 훈련되지 않은 눈에는 혼돈의 광경으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개인 용도에 맞춰진 상태였고, 모든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내려놓은 자리에 있었으며,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최적의 장소에 자연스럽게 놓여있었다. 바닥 한가운데에 흩어져 있는 소지품들은 아무렇게나 놓인 게 아니라 어디에서든 내 손에 닿도록 배치한 것이었다.
비록 엄마와의 논쟁에서는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내 방의 수상쩍은 상태는 열역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열역학은 에너지가 어떻게 움직이고 전달되는지를 설명하는 학문으로 물리학의 한 분야다. 열역학 법칙은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는 필연적으로 더 무질서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 질서를 세우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열역학 제2법칙은 계系(경계나 수학적 제약으로 정의된, 실제 또는 상상적인 우주의 일부분. 주위와의 관계에 따라 닫힌계, 열린계, 고립계로 구분된다?옮긴이)에서 엔트로피(대략 ‘무질서’라고 보면 된다)는 항상 자연스럽게 증가하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든다고 일러준다. 따라서 어수선한 방은 아마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결과다.
---「CHAPTER 3: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법,p.81~82」중에서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생각과 공포가 눈부신 빛처럼 달려드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경험하지만, 다양한 감정과 불안, 충동, 자극을 분리할 선천적인 능력은 없다.내게 또 하나의 거대한 공포의 대상인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면 끔찍한 소음이 내 몸 전체를 관통해 떠나갈 듯 울리며 내 감각을 새빨갛게 달군다. 오직 몸으로만 두려움을 느낀다고 상상해보라.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이 군인처럼 단정하게 줄지어 설 때, 나는 항상 가능한 한 멀리, 더 빠르게 소음에서 달아났다. 이럴 때는 블라인드를 내린 채 어두컴컴한 방에서, 소음을 막아주는 헤드폰을 끼고 내 책상 아래 안전한 천막 속에 앉아 지냈다. 이것이 내 생존법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CHAPTER 4: 두려움 다루는 법,p.111」중에서
공포를 대할 때 그것을 축소하려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사람들은 공포를 가능한 한 가장 작은 상자에 압축해서 우리의 마음에서 가장 먼 후미진 구석에 넣고 잠가버릴 수 있다면, 공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포를 이런 식으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느 날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고 가정하는 것과 같다. 만약 어떤 것이 우리에게 불안을 일으킨다면 왜 불안감이 드는지,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때까지, 그것은 계속 불안감을 촉발할 것이다. 부정은 최초의 본능적인 의지이긴 하지만 선택 사항은 아니다.
---「CHAPTER 4: 두려움 다루는 법,p.119」중에서
나는 차 한잔을 마시려는 순수한 의도로 부엌에 갔다가, 차를 우리는 동안 재미있는 책을 집어 들 수도 있다. 차를 우리던 것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메모지를 발견하고는 급히 메모를 휘갈기다가 갑자기 식료품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갈 수도 있다. 가게에 가서 내 불안 증상을 가라앉혀 줄 껌 한 통만 사서 돌아오다가, 차를 우려놓은 것을 잊어버려서 머그잔이 찻물로 물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머그잔을 씻으려 고무장갑을 껴놓고는 고무장갑을 낀 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느라 설거지는 잊어버릴 수도 있다. 절대로 마시지 못할 차 한잔에 들어가는 노력이 이토록 크다.
---「CHAPTER 6: 조화를 이루는 법,p.145~146」중에서
공감을 경험하기 시작한 후, 공감은 내게 거의 마약과도 같았다. 너무나 오래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어서, 마치 수년 동안 빛을 못 보거나 음식을 먹지 못했던 사람처럼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달려들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동경해왔다. 누군가는 미쳤거나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실제로 상대방을 예단하지 않으며, 이런 면에서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나는 공감을 고통스러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지옥처럼 괴롭지만 다른 감정이나 경험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CHAPTER 6: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법,p.172」중에서
20년 넘게 집단을 연구한 결과는 모두 명확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맞서 싸우기보다는 수용해야 할 이중성이다. 나와 우리 사이에서 균형을 창조하려는 난투에서 궁극적인 승리자는 존재 하지 않는다. 개인과 집단 모두 우리 삶에서 맡은 본질적인 역할이 있으므로 둘 다 존중되어야 한다. 개인도 집단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제공한다. 한술 더 떠서, 둘 중 어느 쪽도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의 성격과 특징은 아무리 바꾸려 해도 항상 그 안에 존재할 것이다. 동시에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 속으로 후퇴하더라도 세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자신만의 섬에서 살려고 노력해도 완벽하게 독립적인 삶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집단을 통해서만 충족할 수 있는 감정적이며 실질적인 욕구가 있다. 어느 시점에는 고독을 수용한 사람조차도 자신의 해변을 떠나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고독한 노력과 비교할 대상이 없을 것이다.
---「CHAPTER 6: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법,p.173~174」중에서
사실 내가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공감이라는 주제는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는 말이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공감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면 가능한 모든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알아낸 사실을 하나 말하자면, 공감을 자주 언급하는 사람일수록 막상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데는 서투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를 내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알아내려 노력한다는 점은 믿어도 좋다. 선천적인 공감 능력이 결핍되었다는 말은 타인의 의도와 기대를 예측하려면 더 힘들게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눈을 통해서, 관계는 상대방이 기대하는 요구에 내 행동을 맞추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 된다. 관찰과 계산, 실험으로 얻는 공감이다.
---「CHAPTER 8: 공감하는 법,p.211」중에서
다른 사람처럼 나도 항상 무리와 어울리고 싶었다.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외계인처럼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웨일스에서 자라고, 코츠월드에서 학교에 다니고, 브리스틀에서 대학을 나와 런던에서 직장을 얻기까지, 나는 주류에서 유영하려 부지런히 움직였다.
---「CHAPTER 10: 실수에서 배우는 법,p.275」중에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일은 믿기 힘들 정도로 좌절감을 준다. 이 모든 일을 해내도 당분간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낙담하고 포기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보상은 어느 날 변화가 당신에게 살금살금 다가올 때까지 인내하고 불확실성과 자기 회의감을 극복하는 데 있다. 이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우리는 계획할 수 없다. 그저 일에 착수하고 과정을 신뢰할 뿐이다. 그러니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대신 거기에서 배우라.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시도해 보자. 나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법도 실험해 보자. 삶이 나아지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다름을 악마 취급하지 마라. 내가 그랬듯이, 당신이 타고난 초능력으로 차이를 수용하라. 무슨 일이든 잘 풀리기 전에 한 번은 잘못될 것이다.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괜찮다. 사실 그 과정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 혼자서 해내는 과정을 누리라.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다.
---「나오는 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p.316」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