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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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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782g | 140*210*35mm
ISBN13 9788965642855
ISBN10 89656428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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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 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원자폭탄을 손에 넣은 것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꿈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 꿈은 무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갑자기 우리는 인간이 의도했든 아니든 지구의 거주 적합성을 파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오염, 대멸종,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러한 인식은 더욱 커졌다. 현재의 불안정성 중 그 절반은 지구의 숙명에 관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인간에 의한 교란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지속가능성이 이야기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다종의 후손들에게 거주할 만한 환경을 물려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 p.24

20세기 기준으로 ‘일자리’라 여겨졌던 것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직업이 있든 없든, 우리 모두 환경파괴로 죽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붕괴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진보에 관한 이야기도, 붕괴에 관한 이야기도 어떻게 하면 협력적 생존을 생각할 수 있을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쯤에서 버섯 채집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버섯 채집이 우리를 구원해주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줄지 모른다.
--- p.49

국가의 유효성과 자연 풍경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파괴를 고려할 때, 우리는 국가와 자본주의의 기획 바깥에 있던 것들이 오늘날 왜 살아남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루기 힘든 가장자리의 것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엔인과 송이버섯이 오리건주에서 함께 모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이런 질문이 모든 것의 방향을 뒤집어,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을 핵심적인 것으로 보도록 이끌지도 모른다.
--- p.51

송이버섯 덕택에 숙주 나무는 비옥한 부엽토가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 대가로 곰팡이는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이 변형적인 상리공생 때문에 인간의 송이버섯 재배는 불가능했다. 일본의 연구기관들이 송이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수백만 엔을 들여 노력해왔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송이버섯은 플랜테이션 농장의 환경 조건에 저항한다.
--- p.85

인간은 불확정성으로 버섯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받았다. 미국인 작곡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짧은 퍼포먼스 곡들로 이루어진 〈불확정성〉이라는 시리즈에는 버섯과의 마주침을 기리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케이지는 야생 버섯을 찾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마주칠 때 발생하는 모든 가능성과 놀라움을 포함해 마주침이 일어나는 지금 여기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 p.95

오가와 박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본 중부로 오기 오래전에 사찰 건설과 철기를 생산하는 대장간의 연료로 쓰려고 숲을 베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송이버섯이 자라는, 인간에 의해 교란된 탁 트인 소나무 숲을 가꿨는데, 이는 그러한 숲이 일본에 생기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8세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왔고 숲을 베었다. 소나무 숲은 그런 산림 벌채 이후에 갑자기 생겨났고, 그와 함께 송이버섯도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송이버섯 냄새를 맡았고 그러면서 고국을 생각했다. 그것이 첫 번째 노스탤지어이고 송이버섯을 향한 첫사랑이다. 일본의 새로운 귀족들이 오늘날 유명한 가을 향기를 처음 찬양한 것은 한국을 향한 갈망에서였다고 오가와 박사는 이야기했다. 해외로 이민을 간 일본인이 송이버섯에 집착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 p.101-102

송이버섯 채집은 도시라는 유령에 사로잡혀 있지만, 도시는 아니다. 채집 또한 노동이 아니다. ‘일’조차도 아니다. 라오계 채집인 사이는 ‘일’이란 자신의 상사가 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송이버섯 채집은 ‘찾는 행위’다. 자신의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금의 재산을 찾는 행위다.
--- p.127

선별 작업은 하나의 예술이다! 선별하는 일은 눈을 사로잡는, 다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팔을 재빠르게 움직이는 불 쇼와 같다. 백인들은 저글링 하듯이 한다. 반면에 또 다른 뛰어난 구매인인 라오인 여성들의 선별 작업은 궁중 라오 댄스처럼 보인다. 훌륭한 선별자란 버섯을 만지기만 해도 그 버섯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다. … 훌륭한 구매인은 느낌으로 안다. 또한 그들은 버섯의 출처를 냄새로 알아낼 수 있다. 숙주 나무, 채집한 지역, 로도덴드론과 같이 크기와 모양에 영향을 주는 다른 식물들의 유무 등을 냄새로 맞추는 것이다. 모두가 훌륭한 구매인의 선별 과정을 즐겁게 지켜본다. 그것은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대중 공연이다. 때때로 채집인은 선별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이 찾은 최상의 버섯이나 최고 수입(특히 100달러짜리 지폐일 때)도 사진으로 찍는다. 그 사진들은 버섯 추적을 기념하는 트로피다.
--- p.154-155

상품화에 대한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르면 사물은 교환 대상이 되기 위해 그것들이 속했던 삶의 세계와 분리된다. 이 과정을 나는 ‘소외’라 부르는데,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의 잠재적 속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채집인과 버섯의 관계에 소외가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은 오리건주의 송이버섯 채집에서 관찰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이다. … 채집된 버섯은 팔릴 때조차 돈을 자본으로 전환시킬 준비를 마친 소외된 상품이 되지 않고 사냥의 트로피가 된다. 채집인은 자부심에 가득 차서 자신이 딴 버섯을 자랑한다.
--- p.225

무엇이 교란인지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관점의 문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개미집을 무너뜨리는 교란은 인간의 도시를 날려버리는 교란과 크게 다르다. 개미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관점은 생물종 다양하다. 로절린드 쇼는 어떻게 남성과 여성, 도시인과 시골 주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방글라데시의 홍수를 서로 다르게 개념화하는지 보여준다. 이는 그들이 수위 상승에서 받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위 상승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홍수로 변하는 시점은 각 집단마다 다르다. 교란을 산정하는 단일 기준은 불가능하다. 교란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되는 문제다.
--- p.286

식물의 역사적 힘에 감화되기를 원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소나무에서부터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다. 소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활동적인 나무 중 하나다. 불도저로 숲을 관통해 길을 냈다면 소나무가 베인 부분에서는 새싹이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경작지를 버리고 떠났다면 소나무가 첫 번째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화산이 분출하거나 빙하가 움직일 때 또는 바람과 바다가 모래 퇴적을 일으킬 때, 소나무는 처음으로 그곳에 뿌리를 내릴 곳을 찾는 식물 중 하나일 것이다.
--- p.297

채집인들에게는 송이버섯 숲을 알아차리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즉, 그들이 버섯의 생명선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숲에 존재하는 것은 춤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은 감각, 움직임, 방향 설정을 통해 생명선을 추구한다. 이 춤은 숲 지식의 한 형태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문서화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채집인이 춤을 추지만 모든 춤이 비슷한 모습은 아니다. 각각의 춤은 이질적인 미학과 지향점을 담고 있는 공동의 역사들에 따라 각기 모양을 갖춘다. 이러한 춤을 소개하기 위해 나는 오리건주 숲으로 다시 들어간다.
--- p.429

우리는 시각을 너무 많이 믿는다. 나는 땅을 쳐다보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치맨이 손을 더듬어 찾아낸 것처럼,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보 없이도 헤쳐 나가려면 우리의 손을 이용해 충분히 느껴야 한다.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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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칭은 우리를 압도하는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에서 이 상황을 사유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을 제공한다. … 이 책을 앞으로의 길잡이로 삼게 되어 정말 기쁘다.”
- 어슐러 K. 르 귄 (소설가)
“우리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경제, 문화, 생물학, 생존 전략 사이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연결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사례가 필요하다. 애나 칭은 세계화된 버섯이라는 믿기 힘든 놀라운 사례를 제공한다.”
- 브뤼노 라투르 (철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과학사상가)
“이 책은 사람과 풍경, 풍경과 버섯, 버섯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 미묘한 뉘앙스를 담아 탐구하고 있다. 북미와 중국의 숲에서 일본의 경매 시장에 이르기까지 현대 글로벌 상품사슬을 따라 펼쳐내는 저자의 깊이와 감수성에 인류학자, 역사가, 생태학자, 버섯 애호가 모두가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 데이비드 아로라 (균류학자, 동식물 연구자)
학술적이면서도 잘 짜인 소설의 유려한 산문으로 쓰인 책을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계 끝의 버섯』은 눈부시게 훌륭한 작업으로, 우리의 중대한 관심사에 대해 발언하면서도 놀라운 발상,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 매릴린 스트래선 (인류학자, 캠브리지대 석좌 교수)
이 책은 송이버섯을 렌즈로 사용해 현대의 환경 역사, 글로벌 상품 생산 및 과학을 살펴본다. 활공하는 듯하는 산문, 날카로운 지성, 한결같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통해 이질적인 주제를 새롭고 심오한 방식으로 연결한다. 놀랄 만큼 많은 분야에 걸쳐 있는 이 작업은 고전이 될 운명이다.
- 마이클 R. 도브 (인류학자, 큐레이터, 예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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