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 수진이 상혁에게 다가가려 해도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우주비행사가 유영하듯 공중제비를 돌며 점점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수진은 소리쳤다. “엄마, 엄마! 빨리 잡아줘, 엄마!” 정아는 다급히 딸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좀처럼 닿을 수 없었다. 들고 있던 핸드백까지 집어던졌지만 수진의 손끝 가까이까지 갔다가 다시 멀어질 뿐이었다. --- p.15
그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뒤늦게 긴급 재난 문자가 울렸다. “관측 이래 달의 크기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평상시보다 1.27배 큰 상태이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시민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 p.16
“우리 딸 수진이 좀 찾아주세요.” “8살이고요. 이마에 V자 모양 반점이 있어요.” 정아와 상혁이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다른 소음에 묻혀버렸다. 줄지어 방패를 든 경찰들은 흥분한 시민들을 막아섰고 두 집단 사이에 밀고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정부 관계자는 확성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 p.34
“대통령은 어디 갔냐? 나와라~ 나와!” 총무와 회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고, 이내 굳게 닫힌 철창 너머 관저에 있는 대통령의 귀에까지 흘러갔다. 대통령은 창문 가까이 서서 시위대의 모습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임기 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예상치 못했는데, 탁월한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특별히 못한 것도 없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커다란 스크래치가 생길 줄이야! --- p.89
“저희도 탐사선을 보내야 합니다.” 미국이 유인탐사선을 보낸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아직도 확신이 안 선 듯 우물쭈물거렸다. 운택은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기존 탐사선을 개조해서 구조용 탐사선으로 바꾸면…….” “다른 나라들은요?” “러시아랑 일본, 프랑스, 중국 등 12개 나라에서는 의회에서 긴급 예산을 편성해 서둘러 추진하고 있습니다.” --- p.109
“우리 윤재 찾을 수 있겠지?” “당연하지. 이제라도 아빠 노릇 제대로 하려면.” 해준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남편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수애는 입을 열었다. “예전에 윤재가 말했어. 자기도 나중에 크면 아빠처럼 기자 될 거라고.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니까 아빠가 바빠도 그리고 집에 잘 안 들어와도 이해해주자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게 다 아빠가 짊어진 외로움의 값이니까.” --- p.293
“이제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희생도 감수해야지요. 열세 명의 아이가 돌아온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러다가 6개월 안에 전 세계 80억 인구가 희생당할 수도 있어요. 당신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다요.” 그렇게 말하자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커민스 교수는 다시 한번 힘을 줘서 말했다. “어쩌면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 찬스일지도 모릅니다.”
소재만으로 마지막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서글픈 동화를 닮은 재난을 시작으로 현실적인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이어진다. 생생히 펼쳐지는 장면과 장면을 잇는 건 상실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극복하려는 몸짓들이다.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어떤 선택이 있다. 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해 손을 뻗는 마음을, 마지막 두 페이지의 아릿함과 반짝임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