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종류의 후회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익숙한 주제들이 종종 등장했다. 내가 돌봤던 사람들에게 가장 공통적인 후회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1.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대로 살기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
2.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었는데…….
3.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어야 했는데…….
4. 친구들과 계속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5.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행복을 허락해도 되었을 것을…….
돌보며 깊은 정이 든 이들을 지켜본 경험 덕분에 나는 어려울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릴 힘을 얻게 됐다. 너무 늦었다는 후회가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해 알아가게 된 셈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솔직해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침묵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의 마음과 정신건강을 위해 나에게 해로운 관계의 패턴을 깨고, 스스로에게 계속 변명했던 습관을 지우고, 타인의 오해를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불평하지도 변명하지도 말자.” 내 친구의 인생 모토다. 이 모토가 마음에 든다. 변명은 때로 노력한 만큼의 값어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연민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연민을 떼어 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동안 당신과 그 사람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쳤고, 두 사람 모두에게 지금은 성장의 기회이며, 상대방 또한 자신만의 여정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어떤 관계를 떠나보내는 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떤 때는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침묵을 지키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어떤 때는 반드시 필요하다.
---「2월 February, 8th Week. 오해받는 것」중에서
이후에도 내가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혀 힘들 때마다, 우리는 결국 이 세상에서 자존심을 줄이는 법을 깨닫게 된다는 점을 떠올린다. 그렇게 마음의 선택을 내리고 나면, 부정적인 감정 대신 자비로움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 실제로 남을 용서하지 못하거나 의견 충돌 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계속 고집스럽게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이 당신을 무시하도록 그냥 두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자기애와 자기 존중을 옹호하는 사람이다.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자존심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서로 목소리 높여 주장만 하다가 너그러워지지 못하고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3월 March, 13th Week. 자존심 줄이기」중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약간의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 중 일부를 바깥으로 드러내려면,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예를 들어, 고집 때문에, 상처 때문에,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계속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상황을 다르게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고 당신이 반드시 상대방의 행동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두 사람의 관계에 더이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이다.(중략) 만일 어떤 상황에서 당신의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고, 당신이 옳아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이 한 말은 어쩌면 상대방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행동과 경험의 결과라고 인식할 수 있다면, 상황은 자연스럽게 즉시 누그러진다. 모든 것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공감이라 함은 상대방은 구하고 자신은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는 선하고 인간적인데, 때로 그 인간적 측면이 덜 호의적이거나 덜 바람직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5월 May, 20th Week. 공감 안에서의 성장」중에서
세계란 당신이 보는 것과 당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만 구성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다른 좋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세계는 더욱 넓어지고 조용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어쩌면 그들과는 전화나 이메일로도 연락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고, 정기적으로 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간 군상에 멋진 향기를 더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상기하면 고무적이다. 모든 것에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 언론을 보면 부정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나쁜 뉴스라고 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선정적으로 써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비록 몇 년 전에 만났거나 그들을 단지 간신히 아는 수준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런 점을 당신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만 하면, 당신은 삶의 선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내 책과 기사를 읽든, 내 노래를 듣든) 내 일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기쁘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메시지와 연결된 당신 또한 그렇다. 당신이 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인류라는 멋진 용광로의 한 부분이 되어 줘서 감사하다. 당신이 있기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7월 July, 30th Week. 이 지구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중에서
몇 년 전 산불이 시드니 외곽 마을을 위협하고, 굉음을 내며 주변의 숲을 덮치고 지나갔다. 그 후 나는 사촌들과 불모지를 지나 수영하러 물웅덩이로 갈 일이 있었다. 모든 나무는 숯덩이로 변했고 대지는 타 버렸다. 한때 초목에 가려졌던 암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이 광경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나무와 땅에서 돋아나고 있는 새 생명의 싹이었다. 아주 최근에 다시 그 물웅덩이에 가 보았다. 최악의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아 훨씬 더 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생명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련 후에도 자연은 계속 생명을 유지한다. 그 생명은 새롭게 창조된다. 우리 인간도 이 생물학적 순환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또한 다시 시작하고, 새로워질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것에 박차를 가하고,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자연재해든, 마음의 고통이든, 실직이든, 건강상의 어려움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시련을 겪든 포기하거나 다시 시작할 선택권이 있다.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거나 좌절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당신 내면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 줄지도 모른다. 오늘은 새로운 날이다.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
---「10월 October, 41st Week. 내게 주어진 시간이 딱 30초라면」중에서
뽕나무는 겨울이 되어 잎사귀가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노출되어 있다고 해서, 따뜻한 날에 함께 있던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쉬고 기다리며, 봄날이 다시 올 것을 알고, 쑥쑥 성장할 다음 계절에 대비한다. 휴식의 계절과 성장의 계절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니 더이상 걱정하지 말자. 긍정적이고 자기애가 충만하며 의식적인 선택을 하라.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당신의 힘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연민은 느끼되 긍정적이고 당신을 잘 받아주는 사람들로 구성된 부족을 만들어라.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라. 진짜가 되자. 당신의 밝은 모습을 공유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웃게 하자!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고난이 당신을 시험에 들게 하겠지만, 당신은 의식적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삶, 타인과 자신에게 선함을 더하는 삶, 그리고 후회라는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삶이다. 행복해도 된다. 즐거워도 된다. 때가 왔다.
---「12월 December, 52nd Week. 더이상 걱정하지 않기」중에서
후회는 없다. 인생이란 의심의 여지 없이 배움의 연속이다. 사랑하는 법, 놓아주는 법, 자신과 타인을 향해 가장 친절한 방법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 돈, 권력, 성취,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조차도 삶의 끝에서 돌아볼 시간이 주어지면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일관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유동적인 것이다. 그 안에는 행복과 슬픔, 배움과 상실이 있다. 삶에는 진실한 완벽함도, 불완전함도 모두 존재한다. 당신이 배우는 모든 것은 여정의 일부분이며, 그 자체만으로 선물이다. 좀 다르게 살아 볼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대신, 당신이 인간으로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수용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훨씬 더 부드럽게 삶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마치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