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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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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414g | 135*200*18mm
ISBN13 9791170402626
ISBN10 117040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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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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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에서 이어령 선생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였지 행정가나 정치가나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창조하는 부분만 빼면 그냥 보통 사람이죠. 결점과 장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인간mortal 말입니다. 다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창조의 붓을 놓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속에 이어령이라는 한 인간의 온 무게가 다 실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 일만 외곬으로 하다가 떠난 한 예술가를,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윤색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의 약점은 뒤집어보면 장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스러운 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 「머리말」중에서

어머니의 죽음이 그의 낙원의 문을 닫아버리는 참담한 재앙이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인의 남편이었으니, 그는 어머니와 함께 부모를 모두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결혼한 형들은 분가해 나가셨고, 누나도 얼마 안 있어 결혼을 했지만, 밑의 세 아이는 새 여인과 사시는 아버지의 집에 남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막내 도령의 전성기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다시는 응석이 통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다.
--- 「이어령과 어머니」중에서

그날 밤 그는 내게 첫 편지를 썼다. “작품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사무적인 말로 끝나는 평범한 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건 아우성이고 함성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그때 비로소 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삶에 대한 정열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내가 구하다 못 구한 것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가 마신 두 잔의 술에 나는 아직도 취해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일기에 쓴 기억이 있다.
--- 「이어령과의 만남」중에서

둘 다 어중간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주주 놀이는 곧 파탄이 났다. 그가 “oui ou non”(yes or no)의 결단을 요구하며 요동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석 달쯤 되던 무렵의 어느 날 그가 불쑥 나타나더니, 아무래도 자기가 날 사랑하게 된 것 같다면서 “큰일났네” 하고 가버린 일이 있다. 사랑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애초에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사과의 뜻도 함유되어 있는 것 같았다.
--- 「이어령과의 만남」중에서

마지막 무렵에 그는 살이 빠져서 눈이 아주 커졌다. 많이 쉬니 눈의 흰자위는 갓난애같이 맑아지고,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며 빛을 뿜어서, 하얀 명주옷을 입고 있으면 영혼만 있는 사람같이 맑아 보였다. 그 모습이 특이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김용호 선생이 마지막 사진을 찍던 무렵의 일이다. 그 무렵에는 하는 말에도 범상한 것이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온 영혼의 소리였기 때문이다.
--- 「이어령과의 만남」중에서

어느 날 자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위가 약해서 화장실에서 위경련을 자주 일으켰더니 그게 옵세션이 되어서 꿈에까지 나타난 모양이다. 그때 그 목소리의 절박함이 나를 감동시켰다. 한때는 내가 죽으면 세상이 없어지는 줄 알던 사람……. 그는 나를 편하게 하지 않는 까다로운 남편이고, 과민하며, 늘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는 내가 힘들 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줄 모르는 서툰 남편이기도 하고, 글이 써지지 않으면 아무 때나 소리를 지르는 신경질형 신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나의 소멸에 대한 공포가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사랑이다.
--- 「이어령과의 만남」중에서

하지만 그날도 장관 이어령은 행복하지 못했다. 남녀 연예인이 돌려가면서 낭송한 「추천사」의 낭송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완벽주의자인 이어령 장관은 한구석이라도 미흡하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행사를 하고 나면 늘 불행하다. 예술가들은 불완전한 인간을 가지고 완성을 지향하려 애를 쓰니 그렇게 자주 좌절을 맛보고 상처를 입는가 보다. 하지만 그 좌절 속에서 다음 퍼포먼스의 아이디어가 싹이 튼다. 그게 완벽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의 업보이고 축복이다.
--- 「장관 이어령의 희한한 이벤트들」중에서

집 마당에는 버린 물이 얼어, 군데군데 얼음판이 생긴 곳이 있었다. 우리는 교대로 그 얼음에 두 손바닥을 얹고 있다가 손이 차가워지면 부리나케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의 이마를 짚어드리기로 했다. 네 살배기 아우는 고사리 같은 손이 빨갛게 얼어들어가는데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어린 아들의 간호를 한동안 조용히 받고 계셨다.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어린 아들의 차가운 손의 촉감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놓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어머니는 병세가 위중하시어 서울로 수술을 받으러 갈 생각까지 하셨다 한다.
--- 「어린 날의 기억들」중에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당당했다. 이런 모습을 어떤 아이들은 거만하다고 생각했다. 거만과 품격은 혼동되기 쉽다. 거만은 다른 사람들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 일이다. 품격은 어떤 것이 귀한지를 인식하고 그 가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품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비열한 행위를 저지를 정도로 자신의 몸을 막 굴리지 않는다. 그 대신 남한테서 부당한 짓을 강요받거나 모욕당하는 일도 견디지 못한다.
--- 「어린 날의 기억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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