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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

: 행복을 말하기 힘든 삶일지라도 계속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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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42g | 130*190*21mm
ISBN13 9791191484250
ISBN10 119148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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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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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근무할 때 새벽이면 상가 편의점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직원분이 가끔 계산을 극구 사양했다. 제가 사드리고 싶어서요. 내가 살아가는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이었을 것인데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마음의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했을 때 그분이 일을 그만두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들고 나오면서 그분을 생각했다. 아침에 근무가 끝나면 남편 트럭을 타고 퇴근하는 모습도 기억에 있다. 내가 세상에 친절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 p.55 「1. 경비원」중에서

나는 새벽이라는 종교를 믿는다. 새벽에 깨어나는 모든 것들은 삶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밤의 침묵이 만들어낸 슬픔이 엷게 깔리고 어디에도 없을 구원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시간을 새벽이라고 부른다. 용서받지 못해 슬픈 삶은 뒤척이던 밤을 떠나 작업화의 끈을 묶고 세상에 발을 디딘다.
--- p.69 「2. 새벽」중에서

나는 한 사람의 삶은 사랑의 기억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에서는 한가한 이야기임이 분명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사랑의 기억을 안고 돌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루는 일치와 함께 견뎠던 슬픔이 모여 삶을 이룬다. 사랑은 일치와 슬픔의 기록이다.
--- p.128 「3. 아내」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확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 그것이 삶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의무의 고단함이 나를 지탱하기도 한다. 이것은 내 운명이고 나는 운 명의 길을 따른다. 내가 가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삶을 배운다. 그런 습득이 나를 지킨다
--- p.175 「4. 삶」중에서

가난하고 삶이 힘겨울 때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확신이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길을 걸어야만 아름다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가난하다고 책을 사지 않으면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삶이 힘겨워 음악을 사치라고 여기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
--- p.192 「5. 위로」중에서

퇴근해 만난 아내는 핏기 없는 얼굴로 힘들다고 했다.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이대로 있게 해달라며 울었다. 결국 나도 울었고 아내가 일어났다. 식사 후에 들른 딸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는 그렇게 눈물 나는 브람스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을 보듬어 쓰다듬으며 슬픔으로 더 깊게 아름다웠다. 저녁에 아내가 남편다운 남편이라고 말했고 나는 브람스를 듣는다.
--- p.224 「5. 위로」중에서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공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며 마음의 여유나 너그러움은 통장 잔고에 서 나온다는 말이 자랑스런 경험담으로 회자된다. 이제는 그런 세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나는 사랑을 생각한다. 살아 있는 동안 내 마음을 다하여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무엇도 귀찮아하지 않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살아가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를 간직하는 것이 단 한 번뿐인 생을 대하는 내 마음이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준다.
--- p.271 「6. 가족」중에서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날 것 같은 착각에 잠깐 마음이 설렜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매서운 추위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오늘이 봄날이기를 바랐다. 삶이 항상 혹독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슬픔이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오늘은 마음으로 봄을 그렸다.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었고 봄은 아득한 곳에 머물고 있지만 오늘은 일부러라도 봄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슈베르트를 듣는다.
--- p.300 「7. 계절」중에서

밤의 세상에 눈이 내린다. 나는 이따금 밖에 나가서 바람에 흔들리며 쌓이는 어둠과 그 위에 내리는 눈에 마음을 맡긴다. 고적한 밤의 공기가 나를 감싸면 누구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다가도 지금 이 순간의 차갑고 맑은 쓸쓸함에 금이 갈까봐 한 사람의 이름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하루 종일 식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것이 눈이 내리는 날에 대한 예의였고 살아 있다는 유일한 확인이었다. 이제 FM의 음악이 이끄는 밤을 따라간다.
--- p.301 「7. 계절」중에서

새벽 6시 28분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 그것은 미명의 새벽과 어울렸고 이미 아침이 스며든 가로등 불빛과도 조화를 이루어 적당히 쓸쓸했으며 어느 정도는 영하의 기온을 위해 존재하는 맛이었다. 이제 경비실 청소를 마치고 마지막 온기를 지탱하고 있는 커피를 마신다. 때로는 삶이 눈물겨울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마시는 커피가 내가 오늘 받을 수 있는 위로의 모든 것임을 알고 있다. 혼자서 울어도 좋은 이른 아침이다.
--- p.315 「8. 후일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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