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일반인들도 패션쇼의 화려한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나는 우리 회사에서 디자인한 작품, 심지어 내가 디자인한 옷을 모델이 입고 워킹하는 것조차 한 번도 보질 못했다. 그 시간에 나는 무대 뒤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의상을 챙기고 모델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헬퍼가 있긴 하지만 디자이너만큼 옷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디자이너가 일일이 무대 뒤에서 챙겨야 한다.
직접 챙기는 데도 불구하고 종종 사고가 난다. 한번은 모델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무대에 내보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옷을 뒤집어 입고 나간 것이었다. 옷을 바로 입었는지 뒤집어 입었는지 소품은 제대로 달고 나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대 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 모델이 들어오자마자 디자이너와 헬퍼들이 달라붙어 또 다른 옷을 갈아입히고….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이렇게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하고 진을 빼는 패션쇼를 치르고 나면 피로감과 희열이 교차한다.
--- 최광우, 「모진 ‘시다바리’ 생활을 견디는 이유」중에서
책은 피드백이 빠른 분야 중 하나다. 오늘 출간되면 내일부터 바로 바로 반응이 온다. 그것이 좋았건, 나빴건 간에 말이다. 일단 매출부터 달라진다. 디자인이 판매 부수에 끼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도 무겁다. 또 주위 평이나 독자 리뷰, 인터넷이나 언론평 등 정확한 데이터가 나온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 또한 신랄하다. 그래서 열 개 잘하다 한 개 잘못한 것으로도 핵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출판사 소속 디자이너나 프리랜서나 마찬가지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경우 심하면 다시는 일이 들어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의 질적인 측면에서 평균을 높게 보는 편이다. 모든 책을 자신의 베스트로 디자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디자인 수준의 평균점이 높게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북 디자이너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 잘하고 아홉 권 못하는 디자이너는 위험 부담이 크다. 혹 슬럼프 기간에 완성한 디자인이라 하더라도 외부에서 봤을 때는 디자이너가 헤맨 디자인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능력이다.
--- 이 승욱, 「디자인의 평균을 높여라!」중에서
나는 2003년부터 2년간에 걸쳐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몇 백 개의 참여 업체가 합심하여 6일간 벌어지는 그 엄청난 규모의 전시 시공을 위해 주어진 기간은 단 이틀뿐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 48시간 동안 전시의 설치와 진행 과정을 지켜본다면 아마 만리장성(?)이 단 몇 시간 만에 쌓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아트 디렉터인 나는 그 아수라장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전체적인 진행 사항과 계획했던 동선과 조명과 색체, 사인물 등에 문제가 없는지를 관리해야 한다. 주최 측에서 기획하는 특별 행사와 전시장의 콘셉트, 시공 및 부대 행사 전반에 걸쳐 차질이 없도록 디랙팅해야 하는 임무도 있다. 시와 분을 다투는 촉박한 상황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터져 벼랑 끝에 선 듯 막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소소한 것에 신경을 빼앗기고 작은 변수들에 굴복하고 그것을 큰 문제 삼아 진행을 더디게 만든다면 결코 전체적인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사람들이 관람하는 몇 시간 동안 그들에게 최대한 허점이 노출되지 않도록 그들의 시선이 먼저 가는 곳부터 잡아주는 것이 옳은 순서다.
--- 김치호, 「보여 주는 자의 즐거움 보는 자의 즐거움」중에서
“<실미도>에 세트가 어디 있어요?”
<실미도>의 미술 예산이 20억이라고 하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매우 놀란다. 총 예산 80억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비용이 세트와 대소도구들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니 결코 비중이 작진 않았다.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었지?”라며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그만큼 관객을 잘 속였다고 봐도 좋을까. 사실 <실미도>는 대부분 세트에서 제작되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훈련 장면을 위해서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 나무를 박고 구조물을 배치하는 등 세트를 새로 구상해야 했고, 내부 세트를 제작해 촬영한 부분도 있었다. 버스에서 실미도 대원들이 자폭하는 장면이 나왔던 대방동 거리 역시 그대로 재현한 세트였다.
세트 제작은 영화 미술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도 세트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어 세트 같지 않은 세트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관객이 세트임을 깨닫고 영화를 보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관객이 허점을 발견한 세트는 실패작이 되는 것이다.
--- 강승용, 「미술과 경영을 겸비해 그림을 현실화하라」중에서
이탈리아에는 건축가, 디자이너 등 대가들이 워낙 많고, 그들이 장수하며 시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한국과 달리 젊은 디자이너들이 쉽게 클 수가 없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크기 위해선 대가들과 싸워야만 한다.
이탈리아 디자인계는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잡지를 만들고 디자인 학교를 운영하고, 그들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전문 회사를 운영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내부에 디자인실을 두지 않고 이런 전문적인 디자인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때는 기업이 우선이기보다는 기업과 외부 디자이너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것이므로 동등한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디자이너도 많지만, 유명한 디자인 회사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기업에 소속된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일반 건축 사무소와 디자인 사무실, 기업체 디자인실 디자이너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한국에서는 오히려 기업 디자인실의 디자이너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지도 모른다.
--- 차영희, 「거장 밑에서 거장이 될 때까지」중에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감각이 탁월하다고 해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현실과 타협하고 클라이언트와 이야기를 잘 풀어갈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디자인은 곧 마케팅 능력이라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케팅의 수단으로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요즘 같은 시대엔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낸 좋은 디자인이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적당히 자신의 디자인을 포장할 수 있는 언변도 갖추어야 한다. 또 최소 2~3년 동안은 박봉에도 끄떡 하지 않아야 하고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밤샘 작업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나 정시력, 자신의 몸속에 꿈틀대는 감성을 적절히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지난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관찰한, 그리고 내 또래의 디자이너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들은 ‘디자이너의 현실’이다.
--- 김명연, 「지금 디자이너가 아닌 기자로 사는 이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