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예방은 하지 않는다고?
나를 제일 짜증나게 만드는 말도 안 되는 비판은 “의사들은 예방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예방을 발명한 사람이 바로 의사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단 말인가? 그 모든 백신은 의사들이 만들었다. 백신으로 지구에서 천연두를 몰아낸 것도, 격리조치를 만들어낸 것도, 수술용 장갑과 소독 과정을 만들어낸 것도, 예방적 항생제 투여를 개발한 것도, 감염성 질환의 접촉자 추적 조사를 개발한 것도, 위생적이고 안전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상수도 불소화, 선별검사, 육아상담내원, 산전검사, 연례신체검사를 도입한 것도 모두 의사들이다. 뇌졸중 예방을 위해 혈압을 낮춰야 한다고 권고한 것도, 미국 예방진료특별심의회의 지침을 개발한 것도, 담배 관련 법안을 이끌어낸 것도, 갑상선종을 예방하기 위해 소금에 요오드를 첨가한 것도, 척추갈림증을 예방하기 위해 식품에 엽산을 추가한 것도 의사다. --- p.13~14
천재는 미친 괴짜인가?
슐레진저는 책머리에서 미디어가 ‘내면의 고통이 영혼의 창조성을 살찌운다.’ 같은 제목으로 예술가, 뮤지션, 작가의 창의성이 정신질환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광기 어린 천재의 신화를 영속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가 ‘위대해지려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고통받는다. 색소폰 연주자 버드 쉥크Bud Shank는 한 인터뷰에서 두 명이나 되는 작가가 자신의 전기를 쓰는 것을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그 이유는 “작가들이 내게서 비극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감옥에 간 적도 없고 알코올 중독도 아니며 성격이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내 인생에는 재즈 음악가에 대한 책으로 써서 팔 수 있는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반 고흐가 자기 귀를 잘라낸 이래 사람들은 예술가는 상처받은 영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 p.25~26
누가 지구를 대표할 것인가
우리는 우주에서 기술을 발전시킨 생명체 중에 가장 어린 종일지도 모른다. 마치 갑자기 낯설고 조용한, 아마도 ‘너무 조용한’ 밀림 속에 던져진 고아처럼. 너무나 조용해서 가장 단순하고 절제된 설명도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생명체들은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며’, 그들의 침묵에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무언가가 생명체의 수를 적은 (너무 적은) 수로 제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그런 환경에 처했다면 당분간은 잠자코 앉아서 귀를 기울일 것인가? 어쩌면 다른 고아들과 의논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당신의 학습 속도가 빠르고,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보고 들으면 필요한 단서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면? --- p.48~49
인공지능과 크렐 머신의 귀환
특이점에서 인간 두뇌와 컴퓨터가 접촉할 때, 컴퓨터는 사악한 마음과도 접촉할 수 있다. 빈지는 “초인간적 존재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다양한 대역폭으로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라고 했다. 이는 거의 확실한 예측이며,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서의 ‘통신’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것이 대역폭의 넓이란 것을 생각하면 동어반복적인 예측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신은 우리가 마음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통신’에는 둘 혹은 그 이상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역폭이 너무 넓으면 개개인의 마음은 사라지고 집단적 마음만 남는다. 이렇게 집단화된 존재 안에서 개별적인 마음은 대역폭으로만 정의된다. 당신이 파티장의 문을 닫고 나올 때만 혹은 그들이 당신 앞에서 파티장의 문을 닫아버릴 때만 ‘당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해보라. 문이 열리고 당신이 파티장으로 들어가면 당신은 더 이상 존재를 멈추고 그들과 당신이 합쳐진 더 큰 ‘당신’(혹은 집단적인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 p.116
인공지능, 무수한 시도와 좌절된 꿈
로봇이나 컴퓨터가 곤충 수준의 지능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곤충의 뇌에 있는 뉴런은 1만 개 정도인 반면에 사람의 뇌에는190~230억 개 정도가 있다. 바퀴벌레 300만 마리를 모아도 거대한 바퀴벌레 군집을 얻을 수 있을 뿐이지 인간 수준의 지능을 얻을 수 없다. 자연적으로든 인공적으로든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바퀴벌레의 뇌 300만 개를 붙여놓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인간과 같은 두뇌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바퀴벌레 군집보다 ‘지능적일’ 것 같지도 않다. 동물 중에는 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큰 뇌를 가진 종도 있지만 그중 어떤 동물도 자연어, 개념화, 혹은 추상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등과 같은 인간 수준의 지능을 보이지 않는다. 뇌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거나 복잡해지면 인간 수준의 지능이 ‘창발’될 것이라는 예측은 희망 섞인 추측에 불과하다. --- p.143
인공지능, 생명을 재정의하다
여기서 나는 조금 더 대담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이미 우리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확장된 분석 패턴들을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계산 기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계들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언젠가 특정 규칙을 나타내는 패턴을 인지하고 찾아내 이 패턴을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작성할 수 있는 기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물론 셔머가 종종 말하는 ‘5년 뒤’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지향성을 가진 기계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 p.168
우리는 모두 같은 신을 말하고 있는가?
이와 같이 신의 개념은 다양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인격신은 어떤 종교에서든 공통적으로 개인의 삶에 관여하고, 기적을 행하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자연신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 다소 덜하여, 혹 인간 세계에 관여하더라도 자신이 창조한 복잡한 자연법칙을 이용한다. 끝으로 이신론의 신은 인간세계에 간접적으로도 관여하지 않으며 단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대신 어떻게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현존하는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 p.186~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