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모셔온 소 선생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소경예와 사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이렇게 물었다는 것은 이미 의심을 하고 있다는 뜻임을 알기에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었다. 하물며 아들로서 오랫동안 훈육을 받아왔으니 아버지와 맞서 싸울 힘 자체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사필이 먼저 사실을 털어놓았다.
“소 형의…… 진짜 이름은 매장소입니다. 아버님께서도 아실 겁니다. 바로 천하제일의 대방파인 강좌맹(江左盟)의 종주 매장소 말입니다.”
사옥은 놀란 나머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쩐지 휘하의 호위무사마저 그렇게 뛰어나더라니…… 이제 보니 랑야방의 으뜸, 강좌매랑이었구나.”
랑야방의 으뜸, 강좌매랑(江左梅郞).
비록 사옥이 귀족 출신이고 녕국후라는 자리에 있지만, 이 이름 앞에서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득한 세상의 빙설 같은 모습, 그윽한 향기 아련한 음악 소리 강가에 울리네. 천하에 펼쳐진 영웅의 길을 모두 아노라니, 강좌의 매랑에게 고개를 숙이네.”
9년 전, 북방의 거장인 초룡방의 방주 속경천(束擎天)이 처음 매장소를 만났을 때 읊은 구절이었다.
당시 공손씨 가문은 화를 피해 강좌로 들어갔고, 속경천은 그들을 쫓아 강을 넘었다. 강좌맹 신임 종주 매장소가 친히 강가에 나와 그를 맞았다. 두 사람은 도검을 들지도 않고 무사 한 명 거느리지 않은 채 하령(賀嶺) 꼭대기에서 이틀 동안 밀담을 나눴다. 산을 내려온 후 속경천은 북방으로 물러났고 공손씨 전 가족은 목숨을 구했다. 이후 강좌맹의 이름은 강호에 크게 떨치기 시작했다. --- p.47~48
“그런데 태자와 예왕이 최근 끈질기게 선생을 끌어들이려고 유난스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랑야각이 새로이 발표한 평가 때문이오.”
“랑야각이 또 뭐라고 했습니까?”
매장소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태자 전하가 랑야각에 무거운 상을 내리며 치세에 능한 천하의 재사를 추천해 달라고 했소.”
예황 군주는 가엾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불행히도 선생이 추천되었소.”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매장소가 차갑게 말했다.
“치세는 황제 폐하의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서려고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설령 이 몸이 랑야각주의 좋은 평가대로 치세에 능한 재사라고 쳐도,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후에야 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설마 태자가 정말 치세에 능한 재사를 원한다고 생각하오? 사실 그가 당시에 뭐라고 물었는지는 이제 와서 따질 필요도 없소. 하지만 랑야각의 대답은 의미심장하오.”
예황군주가 유유히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그 대답은 이렇소. ‘강좌매랑, 기린지재, 그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기린(전설의 동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함-옮긴이)?”
매장소가 실소를 터뜨렸다.
“랑야각주가 분명 제게 원한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예황 군주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반쯤 몸을 돌려 난간에 기댔다. 눈동자에서 맑은 빛이 반짝였다.
“선생을 만나고 보니 오히려 랑야각주가 이번에도 제대로 맞혔다는 느낌이 드는군.” --- p.76~77
“어떻게 그걸 아시오? 당신은……대체 누구요?”
“태자와 예왕은 결코 제 친구가 아닙니다. 그들이 저를 끌어들이려는 것뿐이지요.”
매장소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조 섞인 웃음만 지었다.
“전하께서는 랑야각이 저를 어떻게 평했는지 아십니까? ‘기린지재, 그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여러 황자에게 일어난 큰 사건들조차 모른다면 어찌 기린지재라 불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일부러 이런 쪽의 비밀과 자료를 수집해서 훗날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모양이군.”
“맞습니다.”
매장소가 빠르게 대답했다.
“기린이 되는 것이 나쁠 것이 무엇입니까? 중요하게 쓰이고 공을 세우면 나중에 태묘(太廟)에 들어 길이길이 명성을 날릴지도 모를 일이지요.”
정왕의 눈빛이 깊어지며 으스스한 한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선생은 태자를 선택할 것이오, 아니면 예왕을 선택할 것이오?”
매장소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의 시선이 쓸쓸해 보이는 나뭇가지를 지나 짙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저는 당신을 선택하려 고합니다, 정왕 전하.”
“나를?”
정왕은 고개를 들고 껄껄 웃었지만 눈동자엔 슬픔이 떠올랐다. --- p.117
결국 이 논쟁은 사흘 만에 막을 내렸다. 월빈은 비록 복위했지만 제례에서 황제 및 황후와 같은 제단에 오를 수 없었고, 태자는 술을 따른 후 황제와 황후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예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로 진원성은 파면되었지만, 나이를 참작하여 사직하는 것으로 하고 죄를 추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자는 예왕이 조정의 많은 사람 앞에서 그가 서자라는 것을 재삼 강조하자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예왕의 따귀를 올려붙였고 그 자리에서 황제에게 호되게 질책을 당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오로지 정왕만이 차분하게 황자들 사이에서 차가운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평소처럼 눈앞의 이익이나 손해에 흔들리지 않는 그의 태도는, 평소 그를 신경 쓰지 않던 여러 대신에게 극히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호부의 수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예부 또한 뒤이어 수장이 바뀐 부서가 되었다. 진원성이 허연 머리칼을 떨며, 20년 가까이 써온 관모를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머리에서 벗길 때, 정왕은 마치 배후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창백한 손과 언제나 담담한 표정으로 결코 흥분할 것 같지 않은 하얀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건 배후에 점점 잊혀가는 소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 p.547~548
“선생은…… 선생은 대체 누구요? 어째서 적염군을 위해 이토록 큰 위험을 무릅쓰려는 거요?”
소철이 처음 경성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은 빨리도 나왔다. 소철은 바로 천하제일 대방파 강좌맹의 종주 매장소였다. 이 대답은 모든 사람을 크게 만족시켰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듯 더 이상 아무도 이렇게 추궁하지 않았다.
“그럼 매장소는 또 누구지?”
매장소는 이 질문을 던진 첫 번째 사람이 예황 군주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눈빛은 사람의 몸을 찌르는 검처럼 형형하게 그의 얼굴에 박혀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조차 놓치지 않으며 그가 직접 대답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 다물고 말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속일 것인가. 정말이지 어려운 선택이었다.
매장소의 미간에 피로가 떠올랐다. 그러나 피로보다 세상 풍파를 모두 겪어 잔뜩 지친 기색이 더욱 강했다. 그는 군주의 캐물음을 피하듯이 천천히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적염군의 옛사람입니다. 섭탁처럼, 그 사건 후에 살아남은 옛사람이지요.”
물처럼 반짝이는 예황의 눈동자는 여전히 그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적염군 사람이라면 어째서 내가 모르는 얼굴이오?”
“적염군에는 남자가 수없이 많은데 어떻게 모두 기억하시겠습니까?” --- p.562~563
예황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눈물이 그의 앞섶을 적셨다. 10여 년 동안 그녀는 줄곧 다른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고 다른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었다. 어린 아우와 옛 장수들, 남쪽의 병사와 백성들 앞에서 단 한 순간도 가녀린 허리를 굽힐 겨를이 없었다. 섭탁조차도 그녀가 완전히 긴장을 풀도록 해줄 수 없었다.
오직 이 사람만이, 이 품만이, 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로 그녀를 돌려보내줄 수 있었다. 실컷 눈물을 흘리고, 거리낌 없이 응석을 부리게 해줄 수 있었다. 열렬한 사랑도 없고, 밤낮으로 애태우며 그리는 마음도 없었다. 있다면, 겨울날 햇살처럼 따스하면서도 나른한 믿음이었다. 눈을 감으면 영원히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그의 등에 업혀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어린 소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서로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어른들이 정한 혼약을 벗어던져도, 임수 오라버니는 여전히 임수 오라버니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언젠가 각자의 사랑을 찾고 각자의 반려를 만나더라도, 그래서 훗날 자녀들이 줄줄이 태어나고, 머리가 새고 이가 빠져도, 임수 오라버니는 여전히 그녀의 임수오라버니였다.
--- p.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