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코 씨가 관음상 포즈를 취하려면 관음보살의 백의(白衣)를 대신할 하얀 천이 필요하다고 해서 침대의 시트를 벗겨 주었어요. 미쓰코 씨는 옷장 뒤로 가서 허리를 여민 띠를 풀고 머리를 흩뜨린 다음 다시 예쁘게 손질하고, 벌거벗은 몸에 시트를 관음보살처럼 머리에서부터 느슨하게 걸쳤어요. “자, 봐. 이렇게 하니 가키우치 씨 그림하고는 많이 다르잖아?” 그렇게 말하며 미쓰코 씨는 옷장 문에 달린 거울 앞에 서서 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했어요. “아, 정말 아름다워.” 저는 이렇게 멋진 보물을 왜 지금까지 저한테 숨겼는지, 비난하는 마음이 되어 말했어요. --- p.32
약을 먹은 다음 날 오후, 오우메는 안채에 가 있고 남편은 자는 제 얼굴을 보면서 부채로 파리를 쫓고 있었는데, 미쓰코 씨가 잠에 취한 것처럼 “언니” 부르면서 저한테 다가오려 했대요. 저를 깨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남편이 우리 둘 사이에 들어가서 미쓰코 씨의 몸을 끌어안듯 떼어내고 베개를 다시 베어준 다음, 이불을 덮어줬는데…… --- p.165
노인은 젊은 아내가 말없이 자기 말에 동의하는 것을 제 얼굴의 감촉으로 느끼면서 한층 얼굴을 찰싹 붙이듯, 아예 두 손바닥으로 턱을 안아 올리듯 하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애무했다. 2, 3년 전까지는 그렇지 않던 노인이 요즘에는 점점 집요해지고, 한겨울 동안에는 매일 밤 아내 곁을 잠시도 떠나려 하지 않고 밤마다 약간의 틈도 생기지 않게 온몸을 딱 붙이고 자려 들었다. 게다가 좌대신이 호의를 보이면서부터는 그 감격에 겨워 과음까지 일삼고 술기운이 얼근해서 잠자리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는데, 더더욱 악착스럽게 손발을 온통 가만두지 않는다. --- p.216
시게모토는 다시 한 번 불렀다. 그는 맨땅 위에 꿇어앉아, 아래에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그녀의 무릎에 온몸을 내맡기듯 기댔다. 하얀 모자 속에 파묻힌 어머니의 얼굴은, 꽃무더기를 뚫고 내리비치는 달빛을 받아 뿌옇게 보였지만 여전히 귀엽고 자그마했으며 마치 원광(圓光)을 뒤에 달고 있는 듯했다. 40년 전의 어느 봄날, 휘장 그늘 속에서 그 품에 안겼을 적의 기억이 금세 영롱하게 되살아나고, 한순간에 시게모토는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만(卍)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제멋대로인 성격에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소노코는 고지식한 남편을 답답하게 여긴다. 기분 전환이 될 만한 일을 찾다가 동양화를 배우려고 여자기예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소노코는 그곳에서 센바 지역 부자 상인의 딸인 미쓰코를 만난다. 그런데 서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그 소문을 계기로 오히려 둘은 친해지게 된다. 소노코는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미쓰코를 모델 삼아 관음보살을 그리면서 점점 그녀의 얼굴과 육체에 빠지고, 남편을 속이면서 관계를 유지하던 중 미쓰코에게 와타누키라는 성불구자인 애인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미쓰코가 펼치는 교묘한 연출에 속아서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만남을 지속하는데……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여든에 가까운 구니쓰네는 스물 한두 살밖에 안 되는 부인을 얻어 아들도 하나 얻고,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여기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하루빨리 죽어 젊은 아내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품고 있다. 이렇게 사람 좋고 장수한 것 말고는 이렇다 내세울 게 없는 구니쓰네는, 조카이지만 자신과 격이 다른 좌대신 후지와라노 시헤이가 자신의 집을 방문해준 영광에 감읍한 나머지 보답할 것을 찾다가 아내를 내주고 만다. 시헤이는 진작부터 그녀의 미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계획적으로 구니쓰네에게 접근한 것이었기 때문에 백부가 아내를 바치자마자 그녀를 강탈해간다. 한편 그렇게 네 살 무렵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 시게모토는 늘 아름답고 성스러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낸다. 그러다 사십대가 된 어느 날, 깊은 산속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달빛에 어스름하게 윤곽이 번지는 귀엽고 작은 여승을 만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