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은 평판이 좋았다. 사무장은 순전히 재미로 갓 채용된 무주에게 누가 일을 잘하는 것 같으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무주는 대번에 이석을 지목했다. 이석은 근무 중 잠깐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같이 휴게실에 가자고 선뜻 말할 수 있는 선배였다. 고민이 있거나 업무상 곤란한 점이 생겼을 때 먼저 찾는 선배이기도 했다.
이석은 공고를 졸업하고 의무병으로 제대했다. 전투화 대신 구두를 신고 근무해서 의무병이 된 걸 좋아했는데, 그걸 의료에 흥미가 생긴 것으로 착각해 제대 후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러 간호조무사로 얼마간 근무했다. 남자 조무사가 흔치 않던 시절이어서 업무 외에도 해결할 잡무가 무척 많았다. 그러다 결원이 생긴 원무과 업무를 맡게 되어 착실하게 관리 부서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근무하는 동안 하루도 지각하거나 병가를 낸 적 없었다. 특별한 능력 없이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나이가 되어서 관리직이 된 사람과는 달랐다
--- p.9~10
“병원이 뭐가 그리 좋으세요?”
무주가 당돌하게 물어도 이석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좋지. 병원에 오면 다 아픈 사람인데 나는 아픈 데 없이 멀쩡하니까 좋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요.”
무주가 이석을 흉내 내서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건 이석이 고안한 농담이었다.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주로 썼다.
“돈을 주니까 좋지. 남들은 병원에 돈 쓰러 오는데 나는 돈 벌러 오잖아. 얼마나 좋아.”
“에이, 병원이 왜 좋으냐니까요.”
“가끔 빈 침대에서 낮잠도 잘 수 있고 아프면 공짜로 약도 주고…….”
“그러니까 왜 좋으냐고요.”
“병원이 좋은 게 아니고 집이 싫어.”
--- p.11~12
“의사는 절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믿겠어. 얼마 살지 못합니다, 다리를 쓸 수 없습니다, 눈이 안 보일 겁니다, 평생 오줌보를 차야 합니다…….”
이석은 언제나 의사에 대해 혹평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믿을 수 없는 건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만큼 악랄한 인간은 없어. 희망으로 병이 낫나. 절망에 빠진 사람한테 돈이나 계속 쏟아부으란 얘기지. 잘 들어둬. 그런 인간한테 속으면 안 돼.”
그쯤 되면 누구든지 차라리 이석이 농담이나 계속해줬으면 하는 심정이 되기 마련이었다. 어쨌거나 여긴 병원이었다. 모두들 의사의 헛된 장담이나 보호자의 간절함이 발생시킨 수익으로 월급을 받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못 믿을 건 포기하라는 의사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는 무능한 거야. 사람이 수학이야? 포기하게……. 무능한 의사보다는 악랄한 의사가 나아. 안 그래?”
--- p.15
이석의 월급을 생각했다. 경력은 많지만 학력과 직급이 낮은 걸 고려하면 대략의 액수를 짐작할 수 있는, 언제나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그 액수에 대해서. 그 돈으로 이석은 삶에 드는 온갖 비용을 지불해왔다. 아이의 병원비, 아이를 간병하느라 서울의 고시원에 머무는 아내의 생활비, 면송리에 사는 자신과 부모를 위한 얼마간의 부식비, 주유비, 각종 공과금과 세금, 과태료, 경조사 비용 같은 것을.
진작 팔아치운 주택으로 아이 수술비와 병원비를 댔는데,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그런 게 없다면 은행 대출로 초과 지출을 감당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여분의 돈이, 월급 말고 다른 식으로 통장에 들어와야 할 돈이, 매달 꾸준히 얼마라도 필요했을 것이다.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과 매월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오는 대출금 상환의 압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 p.28~29
아이를 보호하려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무주는 때 아닌 수치심을 느꼈다. 오래전 벌인 일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한때 무주는 태연히 불법을 저질러왔다. 다른 사람의 비리를 묵인했다. 들통났을 때는 부끄럽기보다 억울했다. 왜 자신만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화가 났다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들킨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자신이 살아갈 곳이라면 어떤 세계라도 견딜 수 있었다. 위험과 불안, 폭력과 거짓말, 비리와 관행, 변명과 회유에 사로잡힌 곳이어도 괜찮았다.
아이가 살아갈 곳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졌다. 아이가 자신을 닮아간다면, 자신 같은 어른이 된다면, 자신이 아이를 부끄럽게 만든다면, 참기 힘들었다. 아이만큼은 바르고 선량하고 착실하게 자라주었으면 했다.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인격으로. 그 순간 무주는 과거의 자신과 완전히 결별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인생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이제까지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 기분 때문에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같은 사람임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 p.52~53
“환자들은 병원에서 병이 낫기도 하고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도, 의사나 간호사가 늘 가까이 있어도 그렇게 됩니다.” (……) “가족들이 보기에는 비교적 멀쩡해서 입원했지만 점차로 의식을 잃어가다가 사망하기도 합니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게 다 여기가 병원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기가 휴양집니까?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쉬다가 얼굴 좋아져서 돌아가는 곳입니까? 병원이 그런 곳이에요?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곳, 그게 병원 아닙니까? 환자들이 죽었습니까? 그냥 쇼크를 일으킨 겁니다. 그것도 우리 의료진이 다 정상으로 돌려놨습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두 환자 모두 정상이 되었죠.” (……) “병원에서 이런 실수는 끔찍하게도 종종 일어나지 않습니까? 병원에서 사람이 아프고 의식을 잃고 죽을 뻔한 게 이상합니까?”
--- p.66~67
아내가 유산을 했다. 의사는 최근 들어 아이와 산모의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자주 경고했다. 아내는 그 얘기를 무주에게 하지 못했다. 무주는 이석의 일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고 집에 돌아가서도 숨기지 않았다. 집에 가면 오히려 더 생각났다. 연약한 아이를 보호하려고 매사 조심하는 아내를 보면, 언제나 한 손을 배에 대고 있는 아내를 보면 기쁘고 안심되기보다 이석의 죽은 아이가 떠올랐다. 죄책감이 들어 아내를 피했다.
--- p.89~90
무주는 그 모든 가능성을 지닌 아이를 잃었다. 질서와 명분을 잃었다. 선하고 바르려는 의지를 잃었다. 이석도 아이를 잃었다. 삶을 다 바쳐 살리려던 아이를 잃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병원은 차라리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가족을 잃게 되리라는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사무장 말이 맞았다. 병원에서는 누군가 죽기 마련이었다.
--- p.93
아내는 자주 무주를 묵묵히 바라보았는데, 무슨 말인가 건네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주와 눈이 마주치면 그래도 웃어주려 했다. 무주도 아내를 보고 웃었다. 그럴 때면 딱히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나눈 느낌이었다. 아내가 다정한 연민을 느낀다는 걸 침묵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 무주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무주는 밥을 먹으며 무심코 젓가락을 내려다보다가 기이한 불쾌감에 사로잡혔다. 아이 때문에 젓가락질을 바꿔보려던 게 떠올랐다. 그는 화들짝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고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었다. 시금치나물이나 무생채도 숟가락으로 펐다. 생선도 숟가락으로 발라 먹었다. 아내가 눈에 띄게 인상을 썼다.
무주는 기다렸다. 아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해주기를. 그렇다면 그만둘 작정이었다. 아내는 인상을 펴지 않았지만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머리통을 때리는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무주가 굶기를 선택한 것처럼, 아내는 무주와 함께 먹기를 관두고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 p.98~99
“병원이 거미줄이라고요?”
“거미줄 하나에 두 마리의 거미가 함께 있기는 힘들잖아.”
“그러면 한 마리는 죽죠.”
“잘 알고 있군.”
“그렇지만 거미줄이라고 해도 두 마리, 세 마리가 함께 있으면 안 됩니까? 왜 있잖아요, 공존. 여기서는 안 됩니까?”
“거미줄 하나에 거미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게 공존이 아니야. 그건 자연계를 무시한 처사지. 한 거미줄에 한 마리씩의 거미가 여러 개 늘어서 있는 것, 그게 공존이야. 다른 거미줄을 넘보지 않는 상태가 공존인 거라고.”
“넘보긴요, 누가…….”
--- p.133~134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무주는 그 순간 술이 깼다. 몽롱하던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도 흐트러진 자세를 유지했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이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병원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한 적 있지?”
이석이 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삼켰다.
“병원은 말이야. 불리한 건 절대 들춰내지 않아. 또 원하면 뭐든 감출 수 있어. 물론 들출 수도 있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야. 어때, 자네는 병원이 좋아졌나? 그런데 자네 취했군. 몸을 영 못 가누잖아. 그만 마시고 가자고. 난 이제 근무를 시작해야 해.”
--- p.140~141
“미안합니다.”
환자가 작은 소리로 무주에게 말했다. 그렇게밖에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환자가 다시 숨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빼앗길 게 분명한데도 이 사람은 왜 사과부터 할까. 뭐가 미안한 걸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남고 싶은 걸까. 이렇게 악착같이 구는 이유는 뭘까. 왜 어떤 삶은 굴욕과 함께 지켜내야 하는 걸까.
무주는 복도에 놓인 응급용 간이침대에 환자를 눕혔다. 보호자에게 이것은 사실상 퇴원 조치이며 다시 병실을 얻으려면 수납을 완료해야 한다고 성난 목소리로 통보했다. 보호자는 이제야 가난과 질병을 실감한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여러 차례 경고를 들어왔으므로 납득 못 할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랬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들은 무주가 환자의 물건이 담긴 쇼핑백을 간이침대 옆에 두고 가버리자 크게 숨을 내쉬었다.
복도가 유난히 길었다. 쫓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천천히 걸었다. 무주는 자신이 한 일을 놀라울 정도로 자각했다. 죄책감이 들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환자를 복도에 두고 돌아서는 순간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의 두려움과 달리 자신에게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고, 심지어 별 가책 없이, 위엄을 부리며 병상을 치웠다.
--- p.166~167
“확실히 예전 이인시보다 지금이 내겐 잘 어울려. 나는 배를 타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다 배 만드는 일을 했어. 배를 만들거나 배 만드는 사람에게 밥을 해주거나 술을 팔거나 그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줬지.”
“배가 없어질 줄 몰랐겠죠.”
“덩치가 클수록 없어진다는 걸 상상하기 힘드니까.”
“왜 배 만드는 일이 싫었습니까?”
“배를 타는 사람은 어디로든 가게 되지만 배를 만드는 사람은 평생 독에만 있을 테니까.”
“어디로 가고 싶으셨는데요?”
“나야 뻔하지.”
뻔하다는 답을 여러 가지로 상상했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아이한테 가야지.”
--- p.172
“당신, 괜찮아요?”
시간을 끌다가 아내가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내가 잠시 기다려줬다. 무주는 아내에게 여전히 날 사랑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원하지 않는 대답을 들을까봐 겁이 났다. 무주는 아내의 손이라도 되는 듯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
아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스스로를 비난해야 할 때 언제나 다른 사람을 비난해요. 지금도 그래요. 사과를 하고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되레 비아냥거리죠.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어요.”
--- p.214
무주는 내키는 대로 이면도로를 따라 걸었다. 다행히 이 동네에서는 어디로 가든 강가에 닿을 수 있었다.
무주는 자신에게 남은 것을 애써 생각했다. 태내 아이를 보호하려고 두 손을 복부에 포개고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던 아내가 떠올랐다. 의지가 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기대어 간절히 무슨 말인가 시작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부터 모두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그런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번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p.225~226